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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의 또다른 이름 ‘펜디’

입력 2011-03-22 15:16:13 수정 2011032309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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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디’라는 단어로 연상되는 것은 무엇일까.

섹스앤더시티의 주인공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 분)가 들고 나와 품절 사태를 일으킨 'IT BAG' 바게트백(Baguette Bag)일까. 부드러운 가죽이 돋보이는 셀레리아백(Selleria Bag)일까.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펜디를 이야기 한다면 주로 가방을 많이 이야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펜디 애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펜디가 가지고 있는 불변의 등식은 ‘펜디=모피’라는 것이 그들의 말.

‘펜디=모피’를 떠올리지 못한 그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등식을 알고 있는 당신이라면 그 사람이 펜디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금방 눈치 챘을 것이다.

단, 당신이 ‘펜디의 시작은 핸드백과 모피 워크숍’이라는 사실과 ‘매해 겨울시즌, 펜디의 매출이 모피제품 덕분에 두 배 이상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 해당된다.


대부분 1925년 이태리 로마에서 에두아르도 펜디(Edoardo fendi)와 아델 펜디(Adele Fendi)가 ‘펜디(FENDI)’라는 상호로 가죽과 모피를 취급하는 상점을 열었을 때를 펜디의 시작으로 알고 있다.

그것 보다 앞선 1918년, 아델 카사그랑데(Adele casagrande, 아델 펜디의 결혼 전 이름)가 로마 중심가인 비아 델 플레비치토(Via del Plebiscito)에서 모피와 가죽을 파는 조그만 가게를 오픈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후 1930년대와 40년대 사이 펜디의 모피사업은 급속도로 확장했으며 펜디의 이름은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946년, 펜디의 다섯 딸들은 부모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펜디를 더욱 확장시켰다.

펜디의 모피가 새롭게 바뀐 시기는 1965년, 칼 라거펠트와 펜디가 만나면서부터 시작됐는데 그는 가볍고 부드러운 모피를 강조하며, 기존의 모피 이미지를 새롭게 변화시켰다. 끊임없는 연구가 계속되었으며 펜디의 더블 F 로고가 탄생한 시기도 바로 이때다.

1970년대 초반은 펜디의 가죽제품에 대한 변화로 부드러운 가죽과 여성의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 다양한 프린팅과 색상의 펜디백으로 펜디만의 스타일을 정립시킨 시기였다.


1997년, 펜디에게 운명적인 시간이 다가왔다.

안나 펜디의 딸이자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 실비아 벤츄리니는 역작 ‘펜디 바게트백’을 만들어낸다. 다양하고 독특한 소재로 600가지 이상의 버전으로 만들어진 펜디의 바게트백은 팔 밑에 끼고 다닐 수 있는 작은 가방으로 세계 곳곳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2004년, 펜디는 LVMH(Louis Vitton Moet Hennessy) 그룹이 대주주로 자리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게 된다.

2007년 10월 19일, 펜디는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행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최초로 만리장성을 무대로 한 패션쇼를 열었는데 중국인, 외국인 모델이 각각 44명씩 총 88명의 모델이 참여, 무대 길이 또한 88m에 달해 큰 이슈가 되었다.

이곳에는 베르나르 아르노(LVMH그룹 회장), 실비아 벤츄리니 펜디, 칼 라거펠트 등 펜디를 대표하는 인물과 탠디 뉴튼, 케이트 보스워스, 장쯔이, 전도연 등의 유명 배우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4년 후 2015년, 펜디는 90주년을 맞게 된다. 2005년 펜디는 80주년을 기념해 로마의 중심에 본사인 ‘팔라죠 펜디’를 오픈하면서 모피 아뜰리에, 세계에서 가장 큰 펜디 부티크를 선보였다.

‘펜디 90주년 기념행사’, 어떤 ‘명품 이벤트’를 선보일지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사진출처 : 펜디 홈페이지>

한경닷컴 키즈맘뉴스 김연정 기자 (kyj@kmomnews.com)

입력 2011-03-22 15:16:13 수정 20110323092904

#키즈맘 ,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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