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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소돔의 120일’, 21세기에 도서 검열이 웬 말?

입력 2012-09-19 16:53:07 수정 2012092009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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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소돔의 120일’을 우리나라에서는 읽을 수 없게 됐다.

18일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작가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되면서 동서출판사에서 지난 달 출간한 ‘소돔의 120일’을 청소년 유해간행물보다 한 단계 높은 제재인 유해간행물로 판정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판정은 배포를 중지하고 즉시 수거해 폐기하라는 결정이고, 사실상 판매 금지 처분이 내려진 것이다.

이유는 근친상간, 수간(獸姦), 시간(屍姦) 등에 대한 묘사의 음란성이 도를 넘어섰다고 심의위원 다수가 판단했기 때문인데, 문제는 이런 기준으로만 따지자면 지금 현재 출간돼 있는 출판물 중 유해간행물로 판정받을 작품이 한두 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논란에 대해 간행물윤리위원회 한 관계자는 격양된 목소리로 “책을 읽어봤느냐”며 “근친상간, 수간, 시간 등 어른들도 봐서는 안 되는 장면 묘사가 나와 심의위원분들이 다수결로 결정하신 것이고 그 밖의 다른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또 이와 같은 다른 소설은 왜 버젓이 출판되고 있는데 내버려 두느냐는 질문에는 “앞으로 해나갈 것”이라며 정확한 답변을 회피했다.

‘소돔의 120일’은 프랑스의 후작 사드가 쓴 작품으로, 심리학자 프로이트 등 문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 분야에서 연구되고 언급되고 있을 만큼 가치 있는 고전이다.

고통을 받으면서 성적 쾌감을 얻는 ‘마조히즘’의 대응되는 말인 ‘사디즘’이란 말도 사드에서 온 것이다.

현대시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악의 꽃>을 쓴 시인 보들레르나 프랑스 사실주의 사조의 효시로 평가받는 작품인 <마담 보바리>의 플로베르가 사드의 작품이 있었기에 자신들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제2의 성>을 쓴 여류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사드는 유죄인가’라는 글에서 “그(사드)는 우리에게 다른 여러 가지 형태로 요즘 시대에 얽혀 있는 본질적인 과제, 인간과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다시 문제 삼을 것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히며 사드와 그 작품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동서문화사는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작품을 표면적으로만 봐선 안 되고 시대적 배경 등에 근거해서 제대로 읽어야 한다”며 “사드는 이 책을 그냥 쓴 것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을 전후해서 기득권자들의 타락한 모습을 비판하려고 쓴 것”이라며 “200년 가까이 읽혀온 고전으로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대접은없었다”며 재판까지도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사태를 접한 사람들은 댓글을 통해 “온갖 음지에 깔린 방대한 성인물 차단하기 버거우니까 그나마 고전이라는 이름 달고 양지로 나온 출판물을 건드리는 것 같다”, “저거 하나만 치우면 일하는 것처럼 보일 거라는 문광부의 꼼수다”, “프랑스 유명한 포르노 문학 'O 이야기'도 얼마 전 출간됐던데 그것도 단속하려나”, “성범죄를 핑계로 예술탄압하려는 짓거리가 아니길”, “사드가 외설을 쓰려고 쓴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복잡다단한 사상을 묘사한 것이고 어느 나라에서도 사드의 책에 대해 이런 문제가 생긴 경우는 없다”며 탄식과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한편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의 판매량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교보문고는 하루 1~2권 나가던 책이 결정 이후 220권으로 판매량 늘었다고 밝혔고, 알라딘의 경우도 결정이 나고 일 평균 10권 미만으로 나가던 책이 20배 가량 판매량이 증가해 어제 하루 국내도서 일간 베스트 6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예스24도 평소 2~10권씩 팔리던 책이 어제만 180권, 19일 현재(오후 4시 기준) 250권이 팔리며 최대 125배의 판매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한경닷컴 키즈맘뉴스 박근희 기자 (bgh@kmo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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