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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석 교수의 '두뇌창고를 넓혀라'] (5) 주의력 결핍 아이에게 책 읽어줬더니…

입력 2013-03-04 11:17:12 수정 2013030411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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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대학 동창 그리고 미국에서 온 한 선배와 오랜만에 차를 마시는 중 느닷없이 “헌석이 이놈아는 머리가 비상한 녀석이예요”라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기분이 좋다기보다 별안간 자갈 같은 우박이라도 얻어맞은 듯 화들짝 놀랐다. 난생 처음 듣는 소리여서다.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사실이었다.

말한 당사자는 명문고 출신으로 프라이드가 강한 친구이었고 학생 때는 눈높이깨나 높아 감히 상대하기도 버거웠던 친구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대체로 서울대학 출신들은 여간해서 다른 사람의 머리가 비상하다든가 수재 또는 천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화 중 가장 듣기 어려운 말이 “너는 비상하구나” 이다. 그러니 깡촌에서 자란 실업고 출신의 어벙한 친구를 보고 비상하다는 표현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던 것이다.

그후 두뇌에 관해 공부를 하면서 독서를 좀 했더니 그간 나의 두뇌창고가 확장되긴 되었구나 싶었다. 정년한 지금도 연간 거의 100권에 이르는 독서가 나의 시냅스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었으리라고 확신한다. 감가상각이 끝났음에도 아직은 뇌세포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썩 좋지 않은 두뇌DNA를 지니고 태어났다고 기억한다. 설상가상, 8남매 중 막내인 선친이나 어머님은 7남매의 장남인 나를 알뜰살뜰 돌 볼 겨를이 없는 환경이라 어수룩한 아이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혀짧은 발음을 한다고 놀림당하기 일쑤이었고 왕따 깨나 당해 주눅들며 자랐다. 요즘 받침 발음이 서툰 어린 손자가 “아이 깜짝이야”를 “아이, 까짜기야”라고 말할 때 재미있어 하노라면 문득 ‘어릴 적 나의 모습’이 연상되곤 한다.

자연적으로 외로움과 부끄러움에 숨을 곳은 서당을 운영하시는 중백부님댁이었다. 양위분은 모두 장애인이시라 자녀를 둘 수 없는 처지…내가 입양 영순위이었기에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고 하루 종일 머물러도 편하기만 했다. 시골 서당이라 책이 많진 않았으나 다소 있었고 한글로 된 책자도 꽤 있어서 심심풀이로 다 읽곤 했던 것이 일찍 독서에 눈을 뜬 계기가 되었나 보다.

참으로 책을 엄청나게 읽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주위에서 눈에 띄는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후엔 도서관과 애서가들을 찾아다니며 책을 구해 읽었는데 세계문학전집은 당연, 삼국지만 해도 나관중, 정비석, 박종화, 이문열 삼국지에다 최근엔 고우영 만화 삼국지도 읽었다. 로마인 이야기, 특히 야마오카 쇼이치가 무려 17년이나 신문에 연재했다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대망도 두 번씩 읽었다. 나아가 대망의 적손인 ‘도꾸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다 읽었다. 물론 왕비열전도 고려시대부터 이조에 이르기까지 완독했고 극작가 신봉승의 ‘조선왕조 5백년’도 읽었다. 전호에서 강변호사가 읽고 있는 조정래의 대작은 '한강'을 포함해 '태백산맥' 같은 건 2회나 독파했다. 그외 최명희의 '혼불'이나 황석영의 '장길산'과 같은 대하소설도 읽었다. 심지어는 해리포터도 읽으려 했으니…

그야말로 게걸스럽게 읽은 터에선 천재가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워낙 태생적인 IQ가 낮았으니 도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에서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독서 덕분임을 확신한다. 시골이라 책이 귀해서 늦게 읽었지만 좀 더 일찍이 초중등 시절에 그 많은 독서를 해댔다면 보다 뛰어난 인물이 되었으리라고 단언할 만큼…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아들도 독서로 살아났다. 부모 욕심으로 아이의 두뇌를 좋게 하고자 바둑을 가르쳐봤다. 아이의 머리가 그게 아니다 싶었고 왕실망, 그만 중도 포기했다. 때는 논문을 쓰랴 주야간 강의를 담당하랴 눈코 뜰 새 없는 조교수 시절이라 아이에게 곰살궂게 대할 처지가 못 됐다. 한편 약국을 경영하는 아내 역시 아이를 돌볼 틈이 없다보니 이른바, '주의력결핍증' 환자가 되다시피 아들은 가망없는 천덕꾸러기로 자리매김했다.

마누라 자랑은 칠푼이 취급받는다지만, 당시 아내는 운영하던 약국문을 과감히 닫고 월급쟁이 관리약사로 출퇴근하면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기 시작했다. 눈물겨운 아들 살리기가 3년여, 나중엔 아들 스스로 동화책이나 읽기 쉬운 책을 엄청나게 읽었다고 고백할 만큼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그 결과 꼴찌를 달리고 책상에 앉으라면 5분을 못 견디며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던 아이가 명문대에 들어갔으니 아내의 용기와 모성애는 설명력이 부족하다. 난 지금도 아내에게 무척 고마워한다.

모름지기 두뇌를 발달시키려면 독서가 최고의 명약임은 두 말해야 잔소리다. 현재 코칭하고 있는 재수생도 전국 3% 이내 수준일 정도로 우수한 학생인데 엄청난 독서가 뒷받침된 듯 아는 게 많았다. 그러기에 나는 특강할 때마다 “책을 100권 읽었는데도 두뇌가 움쩍도 안 한다면 나한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걸라”고 호언하기도 한다.

정헌석 < 전인코칭연구소장·전 성신여대 교수 >
입력 2013-03-04 11:17:12 수정 20130304111712

#키즈맘 , #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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