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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의 워킹 맘&대디 스토리] (8) 가깝고도 먼 시어머니란 존재

입력 2013-04-08 10:55:40 수정 2013-04-08 10: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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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있어서 참으로 부담스러운 존재다.

아무리 잘해도 며느리가 딸이 될 수 없듯, 시어머니 역시 며느리에게 친정 엄마같이 편안한 사람은 될 수 없다.

내 시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시어머니를 아직도 “엄마~”라고 부를 만큼 (물론 다른 가족들은 없을 때 말이다!) 참 좋아하지만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지난 달, 일이 몰려 매일매일 밤샘 작업을 하느라 몰골도 집도 엉망일 때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게 됐다.

자식들 힘들게 하는 것을 끔찍히 싫어하시는 시어머니인지라 놀러 오시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려도 안 오시더니만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는 의사의 말이 무서웠는지 두말않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어머니가 오시는 것 자체는 좋은데 하필 제일 바쁠 때라니….

가득이나 작업할 시간도 부족한데 집까지 치울 생각을 하니 눈앞에 캄캄했다.

남편이 서운해 할 걸 뻔히 알면서도 볼멘소리를 해 살짝 다툼이 일기도 했다.

어찌어찌해서 눈에 보이는 곳만 겨우 치운 뒤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왔다.

어머니는 고춧가루, 도라지, 상추, 시금치 등 이것저것 보따리 가득 챙겨오심으로써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셨다.

평일이라 여전히 난 바빴고, 어머니는 처음으로 우리 가족의 일상을 오롯이 공유하셨다.

9년 동안 시어머니에게 있어 난 그저 철없고 못 미더운 막내 며느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전에는 제사 음식을 만들어 본 적도 없을뿐더러 살림도 안 해 봐서 많이 서툴렀고, 무슨 일 하는지 모르시기에 간간이 방송 출연한 이야기 외에는 일 이야기는 해 본적도 없을 뿐더러 아이들 챙기느라 늘 화장기 없고 부스스한 모습에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도 당연했다.

그렇다보니 한 번씩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들썩들썩 밖에 나가려고 하지 말고 집에서 애들이나 잘 키우라“ 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늘 막내며느리를 시원찮게 생각하셨던 어머니가 우리 가족 특히 내 일상을 보시고는 싹 달라지셨다.

한 마디로 '우리 시어머니가 달라졌어요'였다.

일이 많아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는 모습, 남편 출근시키고, 아들 둘 준비시켜 유치원 보내는 모습, 바쁜 시간 쪼개서 화장하고 정장입고 일하러 가는 모습 등을 보신 어머니는 일하는 며느리의 삶이 그 동안 어떠했는지를 비로소 아시게 됐다.

2박 3일 동안 계시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알게 된 어머니는 며느리에 대한 안쓰러움과 고마움을 내비치셨다.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더욱더 잘해드리고 싶었는데 애석하게도 일하는 며느리다 보니 쉽지가 않았다.

가시는 날, 기차 안에서 연신 손을 흔드는 어머니를 보는데 어찌나 가슴이 뭉클하던지….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과 집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나중에 오시길 바랬던 일들이 생각나 후회가 밀려왔다.

그 뒤로 어머니는 9년 만에 처음으로 막내며느리 휴대폰으로 여러 차례 전화를 거셨고 “너를 생각하면 내 가슴이 아리다”며 며느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셨다.

‘어머니와 나’, 이번 일상 공유를 계기로 확실히 관계가 깊어졌다.

휴대폰에 어머니의 전화가 뜸해질 무렵이면 또다시 어머니를 내 일상에 초대해야겠다.

그 때는 미리 집을 치워 좀 더 편안하게 모셔야지.

물론 청소를 몰아서 하는 성격인지라 쉽지 않은 공약이긴 하지만, 이번에 모시기 전처럼 마음이 심난하지는 않을 것 같다.

드디어 흉이 흉처럼 보이지 않는 진정한 가족임과 동시에 멋지게 일하는 며느리로서의 삶을 당당히 인정받았으니 말이다.

이수연 < 한국워킹맘연구소 소장 kworkingmom@naver.com >
입력 2013-04-08 10:55:40 수정 2013-04-08 10:53:53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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