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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석 교수의 '두뇌창고를 넓혀라'] (11) 선행학습의 부작용

입력 2013-05-29 15:40:41 수정 2013-05-29 15: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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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선행학습금지법이 논의될 때 문득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100m 경기에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100m 금메달리스트인 ‘우사인 볼트’의 실격이 떠올라 화들짝 놀랐다. 그는 총성이 울리기 전 출발이 문제됐었다. 이걸 선행 출발이라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나 부정이었다.

선행학습은 진도에 앞서 미리 공부하는 것이다.

가령 중2짜리가 고1 수준의 수학을 공부했다고 떠벌리는 게 선행학습이다. 앞으로 배울 부분을 미리 공부하는 것은 선행이 아니다. 예습이다. 만약 아이 스스로 진도를 빨리 해 공부한다면 선행이나 후행이나 논의꺼리가 안 된다. 문제는 사교육이 학교보다 앞서 나가므로 공교육이 무너질 수 있단 사실이다. 실정법이야 어떻든 우사인 볼트의 부정마냥 참교육의 측면에선 부정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오늘 배운 것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저녁에는 학원에 가 먼 앞날 배울 내용까지 공부하련다는 의도는 한참 뛰놀아야 할 아이에게 자칫 ‘공부혐오증’만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수차례 반복 학습을 해도 제대로 알둥말둥인데 수박 겉핥기로 진도만 나가면 머리속엔 무엇이 남을까. 내용도 속속들이 모르는 아이가 앞만 보고 달리면 짐짓 다 아는 양 착각하게 만들다 시험만 망치기 딱 알맞다.

앎의 정확도가 떨어져 상위권에의 진입은 절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심도있는 공부도 포기해야 하는 부작용이 따른다. 대학 때 물리화학에서 기체의 상태방정식을 설명한 부분이 거의 한 권에 달할 정도로 엄청나 꽤나 놀란 기억이 새롭다. 선행학습으로 버린 머리로는 이런 공부, 나아가 엄청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문제에 이르러선 맥을 못춘다. 정보와 시대는 깊이 있는 학습, 미시적인 것도 깊이 알아야 하고, 거시적으로 우주의 원리까지 동시에 내다볼 수 있는 두뇌를 요구한다. 이제 단답식 또는 간단한 지식이나 정보는 스마트폰이 해결하기 때문에 웬간한 인간의 머리는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다.

여행의 진미는 자전거라 한다. 스티븐스 전 미국대사(한국명 심은경)씨는 자전거로 한국을 누볐다는 놀라운 소식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한국말은 물론 음식, 각 지방의 풍광이나 경치를 속속들이 잘 알게 됐다. 만일 빨리 간답시고 같은 길을 KTX, 아니 관광버스로 달려본다면 어떨까. 구경하나마나 소비된 돈에 비해 남는 별로 없는 그저 수박꼭지핱기의 기억만 몇 개 아롱거릴 터다.

선행학습도 이와 비슷한 논리다. 남은 한 권도 채 읽지 못한 마당에 수십 권을 읽었노라고 자랑하는 바나 흡사하다. 대체로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은 선행보다 배운 것을 완전히 소화하느라 애썼다고 말한다. 유명한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인 장하석 교수는 중학교 2학년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좋아했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영어 원서로만 11독을 했다. 11독이라면 글자 하나하나까지 외워졌을 정독이 아니런가. 그것도 모자라 한국어 번역판으로 12독 했다. 그런 배경이 미국 마운트 허몬고등학교에 입학했고, 1학년 마치고 월반해 2년만에 수석으로 졸업했다. 학교의 106년 역사상 동양인 수석은 처음이었다. 그런 공부가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로 성공하기에 이른 것이리라. 만일 한국식으로 선행학습만 매달렸더라면 어땠을까.

서울대생의 84%가 복습을 더 중시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주위의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복습주의자이었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나와 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및 노무사의 4대 고시를 합격한 진짜 ‘공부의 신’ 유재원씨야말로 복습 예찬론자다. 그는 서울대생을 조사해 [복습:예습]의 비율이 [90:10]의 학생은 37%, [80:20]의 학생은 24%이고 [70:30]의 비율은 23%임을 밝히기도 했다. 분명히 서울대는 선행이 아닌 복습주의자들이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학원을 다닌 건 비상경계 출신으로 경영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부기(회계원리)를 배우기 위해, 두 번째는 박사과정 제2외국어 대비 불어를 배우기 위해 세 번째는 주역을 배우기 위해서이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제대로 따라간 적이 없어 시간과 돈만 낭비했다. 결국 어려운 건 남에게 물어가며 모든 걸 독학으로 해결했었다.

대학 입시 준비 때는 장하석 교수식으로 적어도 3회 어느 경우는 4회라도 반드시 달달달 외워 공부한 책 어디에서 나오든, 설사 응용문제가 출제되더라도 95점 이상을 맞을 자신이 있도록 철저히 했더니 대학입학자격국가고시가 너무 쉬워 깔보기조차 했다. 다음부터 한 권을 완전히 씹어먹을 작정으로 공부하니 생소한 문제도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풀 수 있을만큼 두뇌가 훈련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대체로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 성공한 사람들은 이와 비슷하다는 결론이다

키즈맘 이미나 기자 helper@hankyung.com
입력 2013-05-29 15:40:41 수정 2013-05-29 15:40:41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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