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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석 교수의 '두뇌창고를 넓혀라'] (13) 성공하려면 두뇌를 괴롭혀라

입력 2013-06-25 11:14:28 수정 2013-06-25 11: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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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치라서인지 노래 가사를 잘 못 외운다. 이른바 18번이라고 노래방에 갈 때마다 매번 부르는 노래조차 2절 이상은 가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가사는 노래방 모니터에 너무 잘 뜨니 박자만 맞추면 충분하니까. 심지어 23명의 가수가 번갈아 부른 ‘눈물 젖은 두만강’이란 CD는 1시간 내내 같은 노래만 앵무새처럼 들려주는 데도 가사를 고작 1절만 제대로 외우는 실력이 되어버렸다.

머리가 나쁜 것일까. 그게 아니었다. 노래방 기기에 익숙한 뇌세포는 도통 외울 필요를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보를 저장하는 능력조차 약화되었다. 마치 인도양의 모리셔스섬에서 날지 못해 멸종된 도도새처럼.... 모리셔스는 인도양의 낙원이라는 섬인데 먹을 것이 워낙 풍부하다 보니 먹이사냥을 위해 하늘로 날아오를 필요가 전혀 없었던 도도새는 네덜랜드인이 유배차 대거 유입되자 문제가 생겨났다. 퍼득거리만 할 뿐 날지 못하는 도도새를 사냥하기란 ‘식은 죽 먹기’로 배고픈 유배자에겐 초일류의 식량, 그 결과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져갔던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새의 본질인 날아갈 능력을 상실한 탓이었다.

두뇌 역시 노래방 기기만 믿다 기억 능력을 상실하게 됐다. 뇌세포도 훈련을 시키지 않으면 퇴화해 도도새꼴이 돼 간단한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예전엔 으레 2절, 웬만한 것은 4절까지 거뜬히 기억해냈다. 그런 걸 기계가 두뇌대신 워낙 잘 해주는 바람에 기억할 의지가 소멸되어버렸던 것이다.

한 술 더해 이젠 생각날 때마다 꾹 누르기만 하면 스마트폰이 금방 알려주니까 기억 담당의 해마는 더더욱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다. 결과적으로 기억 기능이 퇴화된 인간의 두뇌는 영장류가 아닌 한낱 포유동물 또는 파충류나 비슷한 동물로 전락할까 두렵다.

그렇지않아도 두뇌는 어떤 정보나 사실을 기억하려면 짜증나는데 마우스만 대면 척척 답이 나오는 세상에 무엇이 아쉽다고 아등바등 해마가 움직여줄까. 노래는 물론 웬만한 건 다 마우스만 건드리면 컴퓨터에서 척척 알려주는 마당에 두뇌가 구태여 움직이겠나. 온통 마우스학습으로 두뇌는 도도새의 날개쭉지처럼 유명무실에 이르렀다. 그래도 괜찮을까.

엊그제 일이었다. 집안에 스캔하는 프린터기가 있지만 항상 함께 거주하는 딸이 해주니까 스캔에 관한 한 걱정이 없었다. “얘야, 나 스캔 좀 해줄래”하면 척척이었다. 그러다 딸이 간부가 된 후부터는 얼굴보기가 쉽지 않으니 무슨 부탁인들 엄두가 안 났다. 도리없이 스캔하는 요령을 배웠다. 어느 날 서류를 스캔해 급히 9시 이전에 보내려는데 그만 저장하는 요령을 까먹어 낭패였다. 죽을 상으로 출근하는 아이보고 물으니 기관총을 갈겨대는 듯한 빠른 말투로 몇 마디하곤 내빼버린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니 마냥 답답....궁하면 통하는가 애면글면,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거의 30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스캔문서 저장하는 방법을 찾아냈고, 제 시간에 파일을 보낼 수가 있었다. 짜증깨나 내느라 힘차게 솟구쳤던 아들레날린도 뚝... 대신에 도파민 깨나 분비되는지 두뇌는 좋아서 껑충껑충 신났다. 이렇게 힘들여 기억한 건 여간해 잊혀지지 않는다. 해마가 VIP를 모시듯 특별히 다룬다.

학원이 워낙 많다보니 천차만별이겠지만 일류 학원일수록 마우스학습에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뛰어난 실력가들, 쟁쟁한 강사들이 어렵다는 문제일수록 손바닥 뒤집기로 술술 잘 풀어내니 마우스학습이나 다름없단다. 아이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더라도 학원이 있는 한 ‘염려 뚝’ 이다. 자연적으로 마우스학습에 길들인 아이의 공부는 만사휴의다.

편리한 게 오히려 망조다. 인간이 할 일이라곤 오직 버튼 누르거나 마우스를 굴리는 손재주뿐이어야 하는 세상이다. 창조나 창의력 및 상상력도 마우스가 해낼 것인가. 공부를 잘 하려거나 남다른 아이디어로 성공하려거든 '모름지기 두뇌를 괴롭혀라!‘ 이다. 가령 내가 스캔 하나로 끙끙댄 것처럼....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해마에 간직한 정보는 여간해 잊혀지지 않는다. 막말로 시험장에 가서도 방금 드려다 본 게 나온 듯 자연스럽게 답지를 채워간다. 반대로 공부할 때 척척으로 습관화된 마우스학습은 시험지만 받아들면 “그게 뭐더라”이다. 공부는 잘 하는데 시험 운이 나쁘단 아이가 바로 그렇다. 결국 학습의 성공은 마우스학습을 얼마나 탈피하느냐가 관건일 터다.

정헌석 < 전인코칭연구소장·전 성신여대 교수 >
입력 2013-06-25 11:14:28 수정 2013-06-25 11:14:28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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