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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이재원의 좌충우돌 육아] (7) 학습지를 왜 하나요?

입력 2014-02-13 19:53:06 수정 2014-02-13 19: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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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아이를 낳고 꿈에 그리던 산후조리원이란 곳에 입소를 했다. 쾌적한 환경, 깔끔한 디자인과 친절한 선생님들. 체계화된 식단과 운동 시스템, 그리고 맛사지 서비스까지. 사랑하는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처음으로 맞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는 기대와, 뭐랄까, 2주일간 호텔에서 살아보는 것처럼 꿈에 부풀기까지 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1주일 정도 지난 뒤, "일찍 퇴소해도 되겠냐"는 원장 선생님의 제안에 나는 "나머지 차액을 돌려주느냐"고 묻고 바로 친정으로 돌아갔다. 원장 선생님이 나에게 그런 권유를 한 것은 내가 불량고객이기 때문은 아니다. 보통 출산예정일을 가늠해 입소 날짜들을 정하는데, 아이가 예정된 날짜에 정확히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은 터라, 예상치 못하게 산모들이 몰리곤 하기 때문에 방이 모자랐던 것이다.

내가 두말않고 기꺼이 조리원에서 나온 이유는, 첫째, 지나치게 높은 조리원의 실내온도가 갑갑하게 느껴졌고, 둘째, 난생 처음 만나는 내 몸의 변화도 당황스러운데 모르는 산모들과 친구가 되어야 했고, 셋째, 무엇보다 산모와 아이에 온전히 맞춘 서비스가 아니라 온갖 협찬이 느껴졌던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조리원이나 조리원을 이용하는 산모를 평가절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나의 허황된 기대만큼 개개인에 맞춘 서비스를 해 주려면, 아마도 연예인들이 간다는 천만원대의 호텔식 조리원 정도를 택해야 했을 것이다. 조리원도 하나의 사업체인 만큼, 수익도 나와야 할 것이고, 협찬도 받아야 할 것이다. 지나친 기대를 한 내가 순진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조리원과 나의 어긋남은, 어쩌면 나 혼자의 어긋남이었지만, 모빌 만들기에서 비롯됐다. 아이를 위한 모빌 만들기 시간에 참가할 때 나는 순진하기 그지 없었던 것 같다. 모빌을 만든 뒤, 모빌을 가르쳐준,(알고보니) 학습지 선생님이 제품을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삼류 조리원을 간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지능이 어떻고, 머리만 좋게 하는게 아니라 정서를 포함한 다양한 측면을 개발해준다는 설명을 어색하게 듣고 있었다. 둘째 정도를 낳았거나, 첫 출산이더라도 공부를 열심히 한 산모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 같았으나,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분야였다. 가격은 꽤 비쌌지만, 재빨리 머릿 속으로 계산해보니, 출산하고 다시 일을 하며 월급을 받고 아이를 직접 못 보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못 쓸 금액도 아니었다. 더구나, 매주 선생님이 집에 방문하여 친절히 아이를 교육한다는 것이다.

평소의 나라면 꿈쩍도 안 했겠지만, 이상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기자의 본능이 어디로 가나. 질문을 해 대기 시작했다.

"이 제품을 사지 않고, 만약 제가 따로 얻어서 갖고 있다면, 매주 선생님만 와 주실 수 있나요? 그럴 경우 비용이 어떻게 되나요?"

학습지 선생님과 산모들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어쨌든 그 세트를 사야지만 교육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장사라고 해도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에 고민이 됐다.

일단 결정을 보류하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마침 친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길래 물었다. '저 제품은 무엇이며, 살 만한 것이냐'는 요지의 질문을 퍼부었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너, 그 엄마들 나중에 만날 것 같지? 하나도 안 만나게 된다. 몸조리 하러 들어갔으면 잠이나 자라."

학습지=한경 DB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저 엄마들의 대화에서 불안해하고,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 수도 없는 물건을, 그것도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며 사기 시작한다면. 나는 아마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 트랙에서 내려올 수 없으리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숱한 어린이 마케팅의 덫에 빨려들 것만 같았다.

엄마들간의 은근한 경쟁 레이스에 들어간다? 시작하는 순간 미친 듯이 달릴까봐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다.

애초부터 시작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여겨졌다. 어린시절, 나의 부모님은 한 번도 전집을 사 준 적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누런 서류봉투에 전래동화 한 권을 생일 선물이라고 주시면, 읽고, 또 읽고. 그런 뒤에야 다른 책을 사주셨다. 그런 기억은 나에게 결핍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지 않은가. 그 기다림의 설렘. 반복해 읽으며 매번 달라지던 글의 맛. 머리가 아닌 마음 속에 남던 동화의 메시지들.

열심히 아이 교육을 위해서 애쓰는 어머니들이나 교재들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 또한, 전업주부인 내 동생이 엄선한 교재들과 장난감들을 물려 받아 큰 효과를 보곤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때, 내 마음의 고삐를 잡아쥔 것을 나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내 친구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니가 아직 몰라서 그래. 니 애가 학교 가 보면 알거야. 우리 때랑은 다르다구!"

이재원 < 텐아시아 편집장 >
입력 2014-02-13 19:53:06 수정 2014-02-13 19:53:06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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