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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맘' 김경아의 육아 24시] 천재에 대한 일말의 미련

입력 2014-09-20 10:02:00 수정 2014-09-20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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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흉흉하다.
흉흉하다 못해 흉악하기까지 한 이 세상에 나는 대책 없이 다음 세대를 생산해버렸다.
지금은 하는 모든 짓이 사랑스럽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나의 꿈, 나의 희망이지만 감히 상상이나 해봤는가. 알토란 같았던 내 아들이 어느샌가 목소리가 두꺼워지며 털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하더니 밤새 게임을 하다 참다못한 엄마는 컴퓨터를 깨부수고 아들은 ‘엄마가 뭔데!!’ 하며 집을 나가버릴 수도 있다는 충분히 있을법한 미래를...

오 생각만으로도 머리털이 쭈뼛 선다.
내 아이에게 기대를 하지 말라는 말처럼 어려운 말이 없다.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은 병원에서 손가락 발가락 열개 있는거 확인한 후 이미 먼나라로 여행을 떠나고 그 때부터 조금씩 고개를 들이미는 내 아이에 대한 바람은 천재, 영재 ... 백번 양보해서 비상한 재주 하나쯤은 반드시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비교가 되는 또래아이들보다 떠받들어주는 개그우먼 이모들만 득실거리는 육아환경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오는 ‘내 아이는 천재’라는 거만함과 싸워야했다.

선율이가 처음 열을 센날 난 우리 애는 ‘수학천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음 날 13까지 세어내는 영특함을 보고 난 우리 애는 ‘십진법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이상의 수체계를 스스로 터득한 꼬마천재’라 명명하며 영재학원을 알아봐야하나 고민했다.

영재학원을 다니면 곧 그만둬야할 동네 어린이집을 등원시키다 같은반 친구가 계단을 올라가며 ‘78,79,80...‘을 세는 것을 보고 난 누가 손가락질이라도 한 듯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얼굴이 빨개지고 그만두면 될 일인데 13씩이나 셀 수 있는 영재였던 내 아이가 순식간에 13밖에 못 세는 둔재가 되버렸다는 것이다.

어제 밤까지만 해도 어쩜 이리 똑똑하냐며 엉덩이를 토닥토닥해주었던 엄마가 오늘은 갑자기 사과 다섯 개에 세 개를 더하면 몇 개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더니 그걸 왜 모르냐고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오는 시추에이션에 선율인 사과를 먹자며 깨춤을 출 뿐이었다.

그 후로도 선율인 영어천재, 미술천재, 음악천재를 전전하다 지금은 그냥 막춤천재로 살고 있다. 선율이도 언젠간 등수가 새겨지는 성적표를 받아오겠지. 어쩌면 1등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꼴찌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꼴찌가 나으려나? 어중간한 등수를 받아와서 ‘넌 머리가 똑똑해서 조금만 노력하면 1등할 수 있어.’라는 그 유명한 대사가 내 입에서 나오는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 세상이 흉흉한 뉴스를 접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는 진리가 있다. 이 흉흉한 세상속에서 내 아이가 안전하게 자라만 준다면.. 훈훈한 뉴스의 주인공이 아니라면 그 어떤 뉴스에도 나오지않는 평범한 청년으로 자라주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 아닌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노상 하시던 말씀이 있다.
생각해보니 진리중에 진리이면서 참 지키기 어려운 말인 것 같다.
‘그저 남한테 피해 안주고 몸 건강히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다’

그래, 그러면 되는거다.
백점 맞지 않아도 당황하지 않고 남들한테 피해안주고 몸 건강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면... 끝!!

글 : 김경아
동아방송대학 방송극작과 졸업
KBS 21기 공채 개그맨
개그맨 동기 권재관과 3년여간의 열애 끝에 2010년 5월 결혼에 골인
2011년 4월 든든한 아들 선율 군 출산.
입력 2014-09-20 10:02:00 수정 2014-09-20 10:02:00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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