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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들의 자녀교육 엿보기] (3) 가족의 울타리 안에 서로의 발전을 독려했던 퀴리家

입력 2015-03-24 18:30:00 수정 2015-03-24 1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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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부모와 부모 등 본보기 교육을 통해 아이에게 바른 인성과 지식 전파

- 사랑과 지식을 후대로 이으며 세계 제일의 과학자 가문으로 우뚝서



매년 12월 10일이 되면 전세계인의 이목이 스웨덴으로 쏠린다. 바로 인류 문명의 발달에 공헌한 사람과 단체를 선정해 수상하는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날이기 때문. 이날이 되면 전세계의 언론이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모여들고, 수상자의 이력과 업적이 매스컴을 타고 세계 도처에 전해진다. 하지만 그 동안 감탄과 존경을 이끌 낸 수상자는 많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수상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퀴리가문. 퀴리가문의 수상자들은 그들의 빛나는 업적과 성과뿐 아니라, 이를 가능케 한 저변에 가족간의 사랑과 존경 그리고 서로의 특장점을 인정하고 이를 뒷받침한 가정교육이 있었음을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가장 큰 유산임을 증명해 낸 수상자였다.

퀴리가문은 1903년 퀴리부인이 물리학상과 1911년 화학상을 받아 노벨상 2관왕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그의 딸 이렌느 역시 1935년 화학상을 수상함으로써 2대에 걸쳐 노벨상을 수상한 대표적인 과학자 가문이다. 또한 퀴리가문은 부부가 함께하는 공동연구를 통해 부부가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퀴리부인이 2번째 받은 화학상을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수상했으며 그녀의 딸 이렌느 역시 화학상을 남편인 장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와 받아 높은 귀감을 샀다. 당시 퀴리부인이 살던 폴란드가 여자의 대학 입학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남녀차이가 극심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 가문의 업적은 실로 경탄할만하며 또한 그 안에 퀴리부인과 그의 딸 이렌드의 열정과 노력은 백년여의 시간이 거슬러 현재의 많은 여성들에게 귀감이 되기 충분하다.

오늘날 병원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방사능 물질인 라듐을 발견하고, 후대에 이어 인공 방사선을 연구하며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나간 퀴리가문. 현재에도 4대째 과학자를 배출하고 있는 이 가문은 앞서 언급했듯 부모에서 자식으로 그리고 나아가 조부모와 이웃 지인들에 이르기까지, 가족이라는 힘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격려했기에 자연과학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이뤄내고, 이를 후대에 좋은 귀감으로 전승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퀴리부인이 남편과 직접 만든 라듐이 큰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당시 100만 프랑이나 되는 큰 돈을 자식들이 아닌 자신이 평생 열정을 받쳐온 실험실에 기증한 점은 이들 가문이 가진 정신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후대들이 스스로의 삶을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삶과 발전시키고 또한 이 가문을 지속적으로 존경을 받는 위대한 가문으로 만들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 어렸을 때부터 책을 가까이 하게 하라

세계의 유명가문이나 위인들의 가정교육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독서교육이다. 이는 강조하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가정교육 중 하나로, 퀴리가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퀴리부인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고등학교 수학과 물리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과학 실험도구에 관심이 많았으며 다양한 학술서적과 전문서적을 읽기 좋아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와 향후 의학자가 된 아들 등 5남매를 위해 주말마다 아이들에게 고전문학을 읽어주고 자연과학에 대해 설명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인 피에르 또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의사인 그의 아버지 외젠 퀴리는 아이들을 위해 파리 외곽에 살면서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탐구심을 기르고 자유롭게 자연학습을 하도록 이끌었다. 또한 이를 통해 얻은 학습을 집안에 빼곡하게 비치된 다양한 문학과 역사, 그리고 과학 전문서적을 통해 확인하고 확장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이보다 앞서, 퀴리부인과 피에르 퀴리의 부모들이 우선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에 두었으며 이를 통해 사고와 지식을 함양한 데 주목해야 한다. 아이들이 자라나며 부모의 본을 받는다고, 부모 스스로가 책을 일상생활에 가까이 두었기에 그들의 자녀들이 자연스레 성장하며 책을 가까이 하였고 향후 과학연구에 있어 이러한 독서습관이 큰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는 퀴리부인 부부의 자녀들 역시 마찬가지로, 향후 부모님의 뒤를 이어 과학자가 되고 부부로써 노벨상 공동수상이라는 유사한 길을 걸은 이렌느 뿐만 아니라 그들의 둘째 딸인 에브 역시 작가로 성장하는데 독서교육은 많은 영향을 끼쳤다.


▷ 부부는 물론 바른 가족관계를 되물림해라

사실 노벨상을 후대에 이어 받은 이들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퀴리가문이 주목 받는 이유는 부부가 함께 연구를 해 공동수상을 했기 때문이고, 이에 선대에 그치지 않고 후대까지도 잇는 영예를 누렸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퀴리부인이 살았을 당시, 남녀차별이 곳곳에 만연했고 이에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제한된 시대였다. 심지어 여성의 대학입학조차 금지되어 있었는데, 퀴리부인은 이러한 시대적 한계에 굴복하지 않고 조국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와 자신이 원하는 학업을 계속해 나간다. 사실 우리나라 역시 근대화 초기에 많은 여성인재들이 꿈을 채 펴보지도 못하고 남녀차별이라는 시대적 제약에 굴복하기도 했지만, 몇몇은 선구자 역할을 하며 일본 등지에서 수학을 했기에 이 사실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퀴리부인이 1895년 피에르와 결혼을 한 이후, 퀴리 부부는 공동연구를 통해 서로의 연구를 격려하고 부족한 점을 보안하는 등 당시 흔치 않은 반려자이자 동등한 파트너의 모습을 보여 준다. 물론 이들 역시 두 아이를 낳아 양육을 하며 위기(?)의 순간도 겪지만 피에르는 퀴리부인이 양육으로 인해 연구를 그만두지 않기를 바라고 이를 도왔으며, 향후 나란히 소르본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고 또한 결혼생활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서로의 학문적 재능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자란 아이들이었기에 그녀의 큰딸인 이렌느가 어머니의 조수였던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와 결혼을 하고도 연구를 손에 놓거나 게을리하지 않고 공동연구를 통해 향후 부모와 같은 노벨상 부부 공동수상이라는 영애를 얻게 된 것 아니었을까.

만약 퀴리부인이 본인의 뛰어난 학업적 재능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문제에 굴복해 연구를 중도에 포기했다면, 그녀의 딸 이렌느 역시 그녀와 비슷한 삶을 이끌어가기는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또한 이들 부부의 사위인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 역시 장인, 장모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또한 존경을 했기에, 그들의 딸 이렌느와 결혼한 이후 이들의 모습처럼 살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지 않지 않았을까. 즉, 바른 양성관계를 부부사이에서 확립했고 이를 가정의 기본으로 삼고 서로의 발전을 도왔기에 그의 자녀들도 이를 본보기 삼아 바른 가족관계를 가풍으로 이으며 성장해온 것이다.


▷ 격대교육과 품앗이교육, 공동육아를 중심으로 삼아라

퀴리가문이 남성과 여성의 균등한 발전과 성장을 해온 가문인 만큼, 그들의 가정교육이 특히 양육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들이 많다. 우선 퀴리부인은 결혼 2년 만에 첫 아이인 이렌느를 낳고 양육문제로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시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게 된 시아버지 외젠 퀴리가 퀴리 부부와 함께 살게 되며 양육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외젠 퀴리는 의사로 활동하였지만, 자연과학자를 꿈꿨었고 또한 문학서적을 가까이 한 사람이었다. 이에 외젠 퀴리는 과학자로 활동하는 아들내외를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었으며, 그의 손녀가 향후 과학자가 되는 데 큰 소양을 길러주게 된다. 또한 그의 아들 둘이 그랬듯이 그의 손녀들 역시 할아버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연과학을 접하고 관심을 확장시켜 나갔으며, 다양한 문학서적을 접하고 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즉, 양육에 대한 부담을 은퇴한 조부모가 도움으로써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고, 또한 바른 인성과 예 그리고 조부모가 가진 지식까지도 전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격대교육은 퀴리부인을 위대한 과학자로 만든 큰 조력자이자, 그의 후손들에게 학문적인 영향을 미친 퀴리가문의 중요한 가정교육 방침이 됐다.

또한 격대교육뿐만 아니라 퀴리 부부는 주변의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최근 주목 받고 있는 공동육아 즉 품앗이교육을 실행했다. 두 딸이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을 즘, 퀴리부인은 학교 교육으로는 부족하다 느꼈고 이에 소르본 대학에 있는 다른 교수들과 의견을 모아 품앗이교육을 시작하게 된다. 퀴리 부인이 기초 물리학을 가르치고 다른 교수들도 자신의 전공분야인 수학과 역사, 그림을 가르치는 등의 방식이었는데 아이들은 이 품앗이교육을 통해 더 폭넓은 지식과 사고를 함양할 수 있었다. 즉, 퀴리 부부는 학교라는 제도권의 교육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자녀의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또한 앞장서 실천할 정도로 자녀교육에 열정적이고 또한 주변의 다양한 인적, 물적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 사랑은 물론, 독립성과 자주성을 기르게 하라

과학자이자 대학교수로 바쁜 나날을 보낸 퀴리 부부지만, 퀴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퀴리 인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틈이 아이들을 돌보고자 노력했으며, 아이들과의 사소한 대화와 일상을 즐겼다. 또한 자녀의 교육을 위해 앞서 언급했듯 품앗이 교육까지 기획하고 진행한 그녀였지만, 그렇다고 자녀들에게 어떠한 사람이 되라는 틀을 제시하거나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그리 하였듯이, 두 딸이 독립성과 자주성을 지닌 여성으로 자라나기를 바랬고 이에 열 살이 넘어서부터 혼자 여행을 하도록 하는 등 아이들이 강한 인성과 독립심을 갖도록 했다. 이에 퀴리가문의 아이들은 일찍이 자신의 앞날을 고민하고 개척하고자 노력했으며, 부모의 명성과 재력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갖추고자 매진했다.

심지어 퀴리 부인은 남편 피에르의 사후, 그들이 발견해 만든 라듐이 큰 돈이 되는 것을 알고도 해당 소유권을 연구소에 기증한다. 즉, 증여로 인해 자식들의 당장 편하게 사는 길이 아닌 지금까지 그래왔듯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 이끌어 가도록 위험요소를 차단시킨 것이다. 또한 그녀가 자녀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듯 그녀 스스로도 해당 라듐이 향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연구와 과학기술 개발에 쓰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그녀였지만 그녀의 외손녀인 랑주뱅졸리오 핵물리학 박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외할머니인 퀴리 부인을 이렇게 기억한다. 부모님과 라듐연구소 근처 공원에 놀던 기억, 할머니가 연구를 하다가도 뛰어나와 외손녀인 자신과 함께 보낸 시간과 따뜻한 미소. 그리고 그녀가 고사리 같은 자신의 손에 쥐어줬던 초콜릿과 사탕에 담긴 사랑을 말이다.

부부, 그리고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설정이 어딘가 어색하게 틀어져 버린 요즘. 평등한 부부관계를 형성하고 일생의 동료로 좋은 파트너쉽을 유지한 퀴리 부부, 그리고 세대를 이으며 서로의 삶과 연구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퀴리 가문의 인물들. 그들의 삶과 업적은 물론이요 소위 맞벌이를 하면서도 자녀의 성장과 발전에 좋은 본보기이자 멘토가 되었던 그들의 교육방식은 백여년이 지나 수천만리에 떨어져 사는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경쟁이라는 틀에 스스로를 가두고, 어쩜 우리는 가족이 가진 무한한 힘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자녀의 교육을 소위 좋은 교육교재와 교구 그리고 기관 등에만 내맡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녀를 바르고 성공적으로 키우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가정 안에 있는데 말이다.

김은경 <칼럼리스트>
입력 2015-03-24 18:30:00 수정 2015-03-24 18:30:00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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