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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들의 자녀교육 엿보기] (4) 좋은 스승과 친구를 가까이 두게 한 '다윈 가문'

입력 2015-06-05 19:15:00 수정 2015-06-05 1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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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따스한 배려와 사랑을 기반으로, 학문적 성과 이끌어내

- 좋은 스승과 친구를 통해 사고를 확장하고 삶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


황금 천 냥이 자식 교육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자녀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인물들조차 자녀교육만큼은 제 뜻대로 안 된다고 말할 만큼 자녀교육은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세계적인 과학자 집안이자 생물의 종으로부터 인간이 생성되고 또한 발전했다는 ‘진화론’을 제기해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자연관과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윈 가문은 달랐다. 진화론이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 다윈 때부터 제기된 문제이며, 이러한 학문적 관심이 후대에 계승돼 손자인 찰스로 인해 규명되고, 또한 당시 시대상에 따라 민감한 내용이 삭제된 채 발간된 찰스의 자서전이 그의 손녀 로라 발로의 의해서 온전히 출간됐다는 점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꼭 가업을 잇고 계승하는 삶이 성공되고 위대한 삶은 아니다. 하지만 선대 조상의 학업적 재능과 그 연구의 중요성을 후대의 후손이 중히 여기고, 또한 이를 계승하며 발전시켜 나갔다는 점은 자녀교육을 말함에 있어 주목할 요소임은 불명하다. 물론 찰스 집안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집안(세계적인 도자기 기업인 웨지우드 가문과 사돈관계임)이었기에 당시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기독교의 창조론을 뒤엎는 발칙한(?) 가설을 세상의 날 선 비판에도 불구하고 연구하고 이론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찰스 다윈이 그의 아버지 로버트 다윈과 함께 할아버지의 이론을 연구하고 또 그들의 연구가 손자와 손자의 손자에 거쳐 지속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윈 가문의 학문적 성과는 일종의 가풍이며 자녀교육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찰스 다윈은 훗날 회고록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학문으로서 대학교도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이다. 즉, 과학계를 대표하는 가문이자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가문으로 주저하지 않는 다윈 가문은 어떠한 교육기관의 힘이 아닌, 가족의 따스한 보살핌과 지원 아래에서 그들 스스로 자연과 생명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으며 이를 중대한 이론으로까지 발전시킨 것이다.


▷ 부모가 가장 중요한 멘토가 되어라

찰스 다윈은 런던에서 조금 떨어진 슈루즈버리라는 도시에서 2남 4녀 중 다섯째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린 찰스에게 자연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다정한 어머니가 비롯 그의 나이 여덟 살 때 세상을 떠났지만, 아버지 로버트는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내의 자리를 메우고자 노력했다. 이에 6남매는 자연을 벗하고 스스로 풀과 나무의 이름을 외우고 식물과 생물들을 가까이 하며 풍요로운 심신을 함양했고, 또한 생명의 소중함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윈 가문의 정원은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가 키우던 희귀종들이 가득했기에, 자연스럽게 찰스는 여러 생물체에 대한 관심과 관찰력을 키워갈 수 있었으며 그의 아버지 역시 정원의 꽃 이름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며 그의 발달을 이끌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다윈 가문이 학자가문으로서는 꽤 많은 부를 축적한 가문이었기에, 찰스의 아버지 로버트는 그의 자녀들이 이를 믿고 나태해지지 않을까를 늘 염려했다. 이에 한때 자신의 직업인 의사라는 직업을 찰스에게 권유하기도 했지만, 의학공부는 뒷전이고 자연학에 대해 심취한 아들을 보고 그의 뜻을 접는 용기까지 보인다. 하지만 로버트는 지속적으로 아들인 찰스의 관심사와 접목되는 직업을 찾고자 했고, 이에 향후 찰스가 자연과학자로서의 목표를 세우는 계기가 되는 케임브리지 대학 신학과로 인도하게 된다.

물론 로버트가 아들이 스스로의 길을 찾도록 지켜보기보다는 먼저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긴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아들의 삶과 함께 그의 관심사를 우선시 한 부분은 부모이자 인생의 멘토로서 가장 중요한 소양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아버지의 믿음이 있었기에 찰스는 향후 진화론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매진해 우리가 익히 알 듯, 위대한 성과를 내놓을 수 있었다. 그런 그였기에 찰스는 평생 자신의 멘토인 아버지에게 존경과 애정을 표했으며, 그 역시 열명의 자녀를 낳아 키우며 애정이 가득한 따스한 아버지이자 자녀들에게 험한 말을 내뱉기 보다 그들의 관심사를 존중하고 또한 지지하고자 노력했다.


▷ 바른 삶을 인도하되 아이의 재능을 우선시해라

앞서 언급했던 찰스의 아버지 로버트는 아들인 찰스가 자연과 자연생물체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또 이를 지속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그 스스로는 의사로 성공하며 많은 부를 축했고, 그로 인해 아들이 자신과 같이 의사의 길을 가기를 바랄 때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그의 아들의 관심사를 묵과하지 않았다. 또 그의 아들이 뜻이 굳건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는 무엇보다 찰스가 평생 돈에 연연하지 않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다.

이러한 그의 기질은 아들인 찰스에게도 이어졌는데, 그의 고손녀인 루스 페이덜에 의하면 찰스는 자식에게는 다정한 아버지이자 아내에게는 둘도 없는 남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설명한다.

그런 그였기에 자식문제에 있어서도 늘 자연을 탐구하듯 아이들의 특성을 살폈으며, 또한 개개인의 재능과 목표들을 실천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특히 기숙학교를 주로 다녔던 남자아이들에게는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내며, 어떻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지 또한 어떠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계속 살폈다. 반면 당시 상류층 가정들이 대부분 그러했든 찰스의 여자아이들은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 학습을 했는데 찰스는 부인과 함께 다정하고 또한 아이들의 소소한 일에도 관심이 갖고 이를 북돋았다.

아들 조지에게 찰스가 보낸 편지에 따르면 “세상에, 내 아들들 좀 봐라. 다들 정말 훌륭하구나”라고 주저 없이 표현할 만큼 찰스는 아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했고 또한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그의 열명의 자녀들은 비롯 모두가 과학에 종사하지는 않았지만, 차남인 조지는 천문학을 공부해 케임브리지 대학교수가 되었으며 또 다른 아들 프랜시스는 식물학자로써 추후 나이트 작위를 받는 영광을 얻는다. 호레이스 역시 과학용 기구를 만들다 캠브리지의 시장을 지냈으며, 월리엄은 은행가, 또 다른 자녀들은 왕실공병연대의 군인과 작가 등으로 모두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 계획의 중요성을 일깨워줘라

다윈 가문은 또한 시간관리를 철저히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찰스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는 과학자이자 의사였고 또한 발명가이며 시인이었다. 그는 불치병 환자를 구해 명의로서 이름을 떨치는데, 당시 영국왕 조지 3세가 왕의 주치의가 될 것을 제안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는 의사활동 이외에도 당대의 과학자와 자연주의 철학자들의 사교클럽을 만들 만큼(이 클럽에는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된 토마스 제퍼슨과 벤자민 프랭클린 등도 포함돼 있었다) 식물뿐만 아니라 자연의 전 생태에 대해 관심이 높았으며 또한 이를 이론화 시켜나갔다. 그의 수 많은 타이틀이 보여주듯 그는 이처럼 많은 일들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조금도 헛되이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동하는 마차를 서재와 같이 꾸며 거리이동에 따른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서적을 읽고 연구하며 또 글을 쓸 정도였다.

그의 손자인 찰스 역시 일과표를 철저히 세워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의 일과표는 시간단위로 세밀하게 계획이 세워져 있었는데, 찰스 본인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었으며 새롭게 분석할 표본들과 이에 대한 질문과 생각들이 가득했기에 철저한 계획은 무엇보다 그에게 중차대한 일이었다.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그는 수 많은 자연과 생물들의 표본을 정리하고 기록해 연구할 수 있었으며, 진화론이라는 생물진화론을 정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그의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모습들을 보고 자랐기에 그의 아이들 역시, 시간을 쉬이 낭비하지 않고자 노력했음은 물론이고 말이다.


▷ 좋은 스승과 친구를 가까이 두게 하라

찰스 다윈은 목사가 되기 위해 진학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이 대학의 교수이자 식물학자인 존스티븐슨 헨슬로와 지질학자 애덤 세지윅을 만나면서다. 이 두 교수는 모두 찰스를 특별한 학생으로 여겼고 그들의 지식들을 전해주는 것은 물론, 좋은 스승이자 또한 친구로 그의 연구를 지지해준다.

특히 헨슬로는 찰스의 진화론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비글호의 탑승을 돕고 학문적인 파트너로서 서로의 발전을 독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그로 인해 학계의 많은 공격을 받기도 하였으나, 왕립 광산 학교의 교수와 왕립협회 회장 등을 지내며 다윈의 학설을 널리 알리는 등 찰스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지지자 역할을 한다.

또한 그의 생애 전반에는 그의 꿈을 존중하고 아낌없이 지원해준 아버지, 외삼촌, 그리고 아내 등 그의 가족들이 그에게 더 없이 좋은 인생의 스승이자 친구가 되어 주었다.

찰스 다윈의 남긴 말 중 “최후까지 살아남는 사람들은 가장 힘이 센 사람이나 영리한 사람들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종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한 말이었겠으나,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그의 말은 고스란히 대입이 된다.

자녀교육의 핵심은, 부모가 자녀에게 전해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가치와 사랑은 어떠한 지식과 물질적인 혜택이 아니라 어쩌면 아이들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이고 또한 그들의 작은 변화에도 관심을 갖고 이를 아낌없이 믿고 지원해주는 마음이 아닐까. 그것이야 말로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을 가치이자 진리가 아닐까 싶다.

김은경 칼럼리스트
입력 2015-06-05 19:15:00 수정 2015-06-05 19:15:00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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