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남편에게도 이혼이 허용된 첫 사례가 나왔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항소1부(재판장 민유숙)는 내연녀와 사실상 '이중 결혼' 생활을 해온 남편 A(75)씨가 부인 B(65)씨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에서 A씨의 청구를 기각한 1심을 깨고 이들의 이혼을 허용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A씨와 B씨는 45년 전 결혼한 이후 잦은 다툼 끝에 1980년 협의 이혼했다. 이후 이들은 3년 뒤 다시 혼인 신고를 했지만, A씨는 다른 여성과 동거를 시작했고, 혼외자까지 낳았다. 동거녀의 출산 직후 A씨는 이혼 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그때부터 25년간 사실상 중혼 상태로 지낸 A씨는 장남 결혼식 때 한 차례 만났을 뿐 B씨와 어떠한 교류도 하지 않고 지냈다. 2013년 A씨는 다시 법원에 이혼 소송을 냈지만, 1심은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A씨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23일 2심 재판부는 '혼인생활 파탄의 책임이 이혼 청구를 기각할 정도로 남지 않았으면 예외적으로 이혼을 허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 "부부로서의 혼인생활이 이미 파탄에 이른 만큼 두 사람은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25년간 별거하면서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사라졌고, 남편의 혼인파탄 책임도 이젠 경중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희미해졌다고 판단했다. 또 남편이 그간 자녀들에게 수 억원의 경제적 지원을 해왔으며, 부인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 이혼을 허용해도 축출이혼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앞서 지난 9월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현재의 유책주의를 유지했다. 다만 혼인파탄의 책임을 상쇄할 만큼 상대방과 자녀에게 보호·배려를 한 경우와 세월이 흘러 파탄 책임을 엄밀히 따지는 게 무의미한 경우에는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키즈맘 노유진 기자 genie8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