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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갑자기 찾아온 둘째 출산, 그 생생한 후기 (3)

입력 2016-11-01 11:16:45 수정 2016-11-01 11: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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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당일의 가장 괴로운 밤이 지나갔다. 첫째를 낳았을 때는 30분마다 몸을 돌아 뉘여야 하는 것이 마치 지구를 돌리는 것처럼 괴로웠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에 비하면 한결 수월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지구는 아니고 위성 정도 옮기는 괴로움이었달까. 당시에 유도분만을 해서 체력소모가 컸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두려워했던 과정 중 하나가 생각보다 덜 괴롭게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에는 처음으로 일어나 자리에 앉아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내 스스로 몸을 일으킨 게 아니라, 병실 침대의 각도를 조정해 주는 리모콘을 누른 손가락에 내 몸을 맡겼다. 머리가 핑하고 돌았다. 수술 후에 처음 먹는 미음이 나왔다. 자꾸만 신물이 넘어와서 무슨 정신인지 모른 채로 따뜻한 미음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핸드폰에는 출산을 축하하는 카톡이 쏟아졌지만 어지러워서 답장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약간 누운 듯이 기대 앉은 채로 한 시간 가량 있었다. 이제는 직립보행을 시작할 시간이다. 수술 후에 많이 움직여 줘야 장기와 피가 유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지럽고 괴로워도 복도를 계속 걸어다녀야 한다. 그런 이유로 병실 복도에는 갓 출산을 마친 좀비들이 여럿 서성인다. 나 역시 친정엄마의 부축을 받으며 좀비 대열에 합류했다. 자꾸만 신물이 넘어와 멈춰 섰다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그 날 오후에는 소변줄을 뺐고 다음 날 오후에는 수액을 맞고 있던 주삿바늘을 뽑았다. 한결 움직임이 편해졌다. 밤에는 척추에 꽂고 있던 무통 주사바늘도 제거했다. 그리고 수유가 시작됐다. 첫째 때 워낙 젖양이 많아서 13개월을 먹이고 단유하는 순간까지도 한시도 젖몸살의 위협에서 벗어났던 적이 없었기에 둘째를 낳는 데에 있어 수술 다음으로 무서웠던 것이 모유 수유였다. 어쩌면 수술은 며칠간의 고통이라면 수유는 적어도 1년 이상 지속할 고통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더 괴로운 것이었다. 양이 너무 많아서 쉽게 끊을 수도 없어서 절절하게 이어왔던 기억이 목을 조르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신생아에게 다시 젖을 물릴 수 있다는 기쁨에 수유 순간이 기다려지는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회복실에서 잠깐 안아본 뒤 수유할 때가 돼서야 샤인이를 제대로 안아볼 수 있었다. 아직은 빨갛고 쭈글쭈글한 피부마저 사랑스러웠다. 복실하게 자라난 머리카락 아래로 자잘한 솜털이 양 볼까지 돋아나 있었다. 속싸개를 끌어 헤친 아래로 나온 발이 너무 자그마해서 손안에 쏙 감기었다. 이 작은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서 눈을 마주치고 웃고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함께 추억을 쌓아갈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그 날 밤엔 젖이 돌기 시작해 가슴 전체가 간질간질거렸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복병이 있었다. 바로 ‘훗배앓이’. 뿅갹이를 낳았을 때는 수유할 때 한 번씩 미간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아랫배가 싸하게 아팠는데 이번엔 정말 누군가 뱃속을 콱하고 쥐어짜는 것처럼 배가 아팠다. 둘째 이후로는 출산했을 때 자궁이 더 급격하게 수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군가가 전에 첫째 때는 몰랐는데 둘째 때 훗배앓이가 너무 아팠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이래서 뭐든지 직접 겪어봐야 그 위력을 깨닫는 모양이다. 수유할 때마다 이리 쥐어짜고 저리 쥐어짜는 아픔에 표정 깨나 찌그러트려야 했다.

모유 수유실에 들어서면 나와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은 엄마들이 모여 앉아 수유하고 있다. 처음에는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몇 번 드나들다보면 ‘무지개색 수면양말을 신은 엄마’, ‘아이가 유독 머리숱이 많은 엄마’ 등등 서로 이름은 몰라도 눈에 익은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중에는 서로 눈인사도 나누게 된다. 그렇게 눈에 익었던 동그란 뿔테를 낀 엄마가 나를 향해 물었다.

"혹시 첫째 아이에요?"

"아니요, 둘째에요."

"어쩐지.. 애 다루는 손길이 능숙하시더라고요."

아이에게 젖물리는 것부터 우는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할지 몰라 어쩔 줄 몰라하던 엄마였다. 나 역시 3년 전에는 저런 모습이었으리라. 뿅갹이가 울던 밤 젖을 물리다가 젖꼭지가 너무 아파서 옷도 못 걸치고 약을 바른 채, 그 위에 아이스팩을 올려놓고 아이를 붙잡고 울었었다. 누구에게나 있는 시행착오인 것이다.

그렇게 병원에서의 5박 6일이 지나갔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입력 2016-11-01 11:16:45 수정 2016-11-01 11: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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