뿅갹이가 태어나고 8개월쯤 되었을 때 남편은 잦은 회식으로 늘 기운이 없었고 나는 나대로 가사와 육아에 지쳐있었다. 잠시도 나와 떨어지지 않아 주는 뿅갹이 덕분에 남편은 그때까지도 오롯이 아이를 혼자 돌본 일이 없었다.
너무 화가 났던 어느 날은 남편과 아이와 핸드폰을 모두 두고 현관문을 세게 걷어찬 뒤 집을 나가 버렸다. 울 테면 울라지. 너도 애 좀 보느라 기진맥진해보란 말이다.
막상 집을 나왔지만, 너무 오랜만의 홀몸 외출이라 무엇을 할지 막막했다. 그동안 남편이 좋아하는 액션 영화나 히어로 물만 봤는데 오늘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길로 영화관에 가서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어바웃 타임>을 봤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랑에 남편 놈을 용서해볼까도 생각해봤지만 괘씸한 생각에 모유가 차올라 욱신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엔딩크레딧까지 보고 나왔다. 집에 돌아오니 울다 지쳐 잠든 뿅갹이와 달래다 지쳐 잠든 남편이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었다.
화장실이라도 좀 편하게 다녀오려고 남편에게 애를 잠깐 보라고 하면 남자들은 그냥 애를 정말 ‘보고’ 있다. 아니 그나마도 애를 보는 게 아니라 핸드폰을 보고 있다. 아이의 발달을 생각해서 눈을 마주쳐주거나 창밖의 햇살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의성어를 써가며 설명해주기는커녕 아이의 생명에 지장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을 기세다.
그러다 아이가 울기라도 하면 애가 엄마 찾는다며 얼른 건네주기 바쁘다. 이런 남편에게 뭘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을까. 엄마들은 못 미더운 아빠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느니 차라리 힘들어도 내가 하거나 말이 잘 통하는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부터 부부 공동육아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빠들에게도 아빠로서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다. 엄마들도 처음 엄마가 됐을 때 기저귀조차 제대로 갈 줄 몰라서 애가 똥만 싸도 사색이 되었던 초보 시절이 있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해결해줄 수 없기에 기를 쓰고 아이를 살려내기 시작하면서 훌륭한 기술을 갖춘 프로육아러가 되는 것이다. 많은 남자들은 육아에 있어 주인의식이 부족하고 여자들은 주인의식이 강하다. 아빠들은 언제까지나 육아의 서브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심했던 뿅갹아빠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가 11개월쯤 됐을 무렵 내 몸 하나 추스리기 힘든 지독한 감기몸살에 시달리고 있었다. 약을 먹고 방에 누워있고 싶었지만 아이는 문이라도 닫을라치면 방문에 기대어서 나를 찾으며 대성통곡을 했다.
이런 상황을 딱하게 여긴 남편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올 테니 조금이라도 쉬라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어떻게 나 없이 외출이 가능하냐며 피곤해도 따라나섰겠지만 그 날은 도저히 그럴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 남편은 아이와 집을 나섰고 바로 약을 먹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실로 오랜만에 고요한 집에서 내 의지로 눈을 떴다. 핸드폰을 서둘러 확인했지만, 부재중 전화도 와있지 않았다. 혹시 전화 너머로 내 목소리를 듣고 아이가 자지러지진 않을까 걱정되어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내보았다.
우려와 달리 남편과 아이는 식당에서 밥도 먹고 까페에서 주스도 한잔하고 있다는 여유 있는 답변과 함께 웃고 있는 셀카까지 보내왔다. 나는 그저 찬사와 감탄을 건넸을 뿐 돌도 안 된 아이에게 왜 우동과 돈까스를 먹였는지 남편에게 채근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자신감이 붙은 남편은 내가 주말에 일하게 되면 아이와 둘이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이 익숙한 집을 떠나 한강 공원이나 키즈까페와 같이 의지할 사람이라곤 아빠밖에 없는 곳으로 향했다.
남편이 아이에게 어떤 옷을 입히고 어떤 것을 먹이고 어떻게 놀아주는지에 대해 조금도 간섭하지 않았다. 둘 만의 교감이 이루어지길 바랐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뿅갹이는 아빠와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고 마침내 나 없이도 일주일쯤은 끄떡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인간관계에는 맥락이 있다. 이는 부모와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아빠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사이는 서먹해지게 마련이고 그렇게 자란 아이가 아빠를 남처럼 여기고 어색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어릴 때부터 살을 부비고 맛있는 것을 나누어 먹고 취미를 공유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서로가 익숙하고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이가 되는 것이다. 비록 아빠가 놀아준다면서 기껏하는 게 발가락에 빨대를 꽂는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행동일지라도 아빠와 아이 사이에 둘 만의 맥락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주자.
아빠들은 육아에 있어 주인의식을 가지고 나서며 엄마들은 공동주인으로서 아빠가 주인으로 설 자리를 내어주자. 여전히 피곤한 주말이지만 이번 휴일엔 아빠와 아이가 함께 외출을 해보는 건 어떨까.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前 EMSM 카피라이터
現 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