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으로 소통되는 광범위적 소셜네트워킹이 긴밀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회적 어두운 단면은 잠식된 채, 음침한 사각지대의 그림자는 작아질 줄 모른다.
사각지대에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문제의식 없이 안일한 생각과 시선으로 일관했던 현시대 어른의 태도가 무소불위의 군림을 막아서지 못하고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른들이 져버린 도덕성
올해 초, 개봉한 영화 <더 킹>에서는 교내 체육 교사에게 강간당한 여고생 성폭행 사건은 사회의 부조리함을 꼬집는다. 노점상을 하며 간신히 생계를 꾸리는 지체장애인 엄마를 둔 피해자와 권력을 등에 실은 피의자, 역시나 달걀로 바위 치기인 것이었던 건가. 성폭행 사건으로 기소되지만 500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합의금에 곧장 무마된다. 이를 부당하게 여긴 검사는 재수사에 착수하지만 사건을 무마해달라는 청탁과 검찰 권력의 중추인 전략부 제의에 매수된 채, 결국 기소를 포기한다. 반성할 줄 모르는 피의자의 뻔뻔함과 기고만장함 보다 불편한 것은 어른들이 져버린 도덕성이 아이들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았다는 사실이다. 인권 사각지대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씨름하는 아이들의 단편적 모습은 어른으로서 지녀야 할 도덕적 책임감을 가중시킨다.
반면, 프로미식축구 스포츠 스타 마이클 오어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낸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는 오갈 곳 없는 한 아이를 식구로 받아들였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방치된 아이들을 향한 어른의 온당한 시선과 태도에 대해 재고하게 한다.
함축적 의미를 내포한 영화제목 ‘블라인드 사이드’는 미식축구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로 쿼터백이 보지 못하는 시야의 사각지대를 일컫는다. 사회적으로 배제된 아이들에게 어른의 관심과 시선이 닿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 흑인 소년 마이클 오어(퀸튼 아론)는 마약 중독자였던 어머니로부터 격리된 채 돌보아 줄 부모도 집도 없는 신세다. 비가 쏟아지던 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밤길을 걷던 마이클은 리 앤(샌드라 불럭)과 숀(팀 맥그로) 부부의 눈에 띈다. 리 앤은 주저 없이 갈 곳 없는 마이클을 차에 태워 집으로 곧장 데려가 하룻밤 재워준다. 리 앤 부부와 마이클의 인연의 시작이다.
스며든 고정관념, 문제의식을 가지고
미식축구 코치의 발탁으로 온통 백인뿐인 사립 고교로 전학을 가며 인생의 전환점을 마주한 마이클오어. 흑인 빈민가에서 나고 자라며 벗어날 수 없던 가난과 편견의 굴레. 사회에 철저히 배제된 채, 살아가는 소년에게는 소년이 지닌 잠재력과 가능성은 사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고착화된 편견이라는 견고한 장벽을 너머, 있는 그대로의 소년을 바라봤던 미식축구 코치는 그의 가능성을 믿어준다. 코치가 건넨 믿음은 사회가 소년에게 처음으로 베푼 공평한 기회이자 신뢰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축적된 개인의 경험은 정형화된 사고의 장벽을 형성해, 시야를 가리우고 마침내 올바른 가치판단을 어렵게 한다. 깊이 스며든 고정관념은 불의한 행동도 스스럼 없게 만든다. 문제의식 없이 생각하고 무심코 하는 행동이 누군가의 기회를 박탈하고 존중 받아야 할 인권을 짓밟으며 어느새 점차 사각지대를 넓혀가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뿌리 내린 시선을 거둘 때, 보이는 것
영화 막바지에 이르를 즈음, 아버지 없이 위탁 시설을 들락거리다 동네 갱단 싸움으로 목숨을 잃은 한 청년, 데이빗의 이야기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풋볼 선수로 거듭난 마이클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다. 내 아들 마이클이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래서 난 신께 감사드린다.”라는 리 앤의 독백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비단, 데이빗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닌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여전히 사회 도처에서 사회적 사각지대에 내몰린 아이들은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된 채, 어른의 외면을 견디고 사회적 차별과 인권유린을 당연하게 받아 드리며 부당함을 수긍한다. 어른의 무관심과 편협한 사고가 아이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회에 곪다 못해 또 다른 ‘데이빗’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른의 책임의식을 재고한다. 쉽사리 판단하고 낙인 찍는 어른의 무책임한 태도와 어그러진 시선에 대한 책임이 막다른 골목에 서있는 아이들을 마땅히 지켜낼 것.
범사회적 문제, 어른이 책임져야
대낮에 등불을 들고 사람이 많은 번화가에서 참사람을 찾아 헤맸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일화처럼 어른은 많아도 ‘참 어른’을 찾기 어려운 현시대의 모습과 닮았다. 뜻있는 ‘기부’라고 서로를 치켜세우고 누군가는 ‘선행’을 자랑삼아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권리를 철저히 외면하는 어른들의 모습 속에서 참 어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영화 속 리 앤은 이런 어른들을 향해 “shame on you(부끄러운 줄 알아)”라는 일침을 가한다. 어떤 도의적 책임감을 가지고 사각지대의 놓인 아이들의 권리를 어떻게 지켜야 나가야 할 지 오늘도 물음을 던진다.
오유정 키즈맘 기자 imou@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