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을 읽어보고 상상을 해보자.
두 딸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고 머리를 빗겨준다. 영양을 생각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집안일을 하고 운동을 한 다음 책을 읽으며 자기 계발의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간식과 저녁밥을 챙겨주고 책을 읽어주거나 학습 지도를 한다.
자연스럽게 떠올린 장면 속 부모가 엄마라면 그 편견을 깨보자. 아빠 노승후 씨의 일상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사직서를 제출한 뒤 육아에 뛰어들기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노승후 씨가 걸어온 아빠와 남편으로서의 발자국을 일문일답으로 풀었다.
kizmom 육아를 위한 퇴사를 고려한다면 아내의 사회적 성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노승후(이하 노) 사실 저는 아내가 아이를 돌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두 번의 육아휴직 이후에도 곧장 사회로 복귀할 만큼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여자였고, 제가 보기에도 커리어우먼이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대로 당시의 저는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서로의 역할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고, 현재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고 자신합니다.
kizmom 그럼에도 퇴사 결심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노 육아를 하려고 사직서를 제출하니 이직을 위한 변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5년 전의 우리 사회에서는 낯선 결정이었죠. 다행히 가족들은 제 결정을 존중해줘 든든한 마음을 갖고 회사를 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회 인식이 많이 달라져 주변에서 육아휴직을 실제로 사용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아쉬운 것은 육아휴직 후 복귀했을 때 있을 불이익을 감수한다는 전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육아 휴직 문화가 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izmom 그렇게 육아하는 아빠로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노 초반에는 아이들이 어색해 하더군요. 특히 둘째는 제가 어린이집에 가는 걸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보였고요. 하지만 일상으로 자리 잡으니 아이들이 금방 적응했습니다. 첫째는 내성적이라 부모와 분리되는 상황에 불안정한 모습을 종종 보였는데 제가 육아를 하자 성격이 밝아지고 활기차졌어요. 지금은 두 아이 모두 제 껌딱지입니다(웃음).
kizmom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가 아빠 본인에게도 힘들었을 것 같다
노 우선 청일점인 상황이 낯설었습니다. 등원과 하원을 할 때 보면 아빠는 저 뿐이었거든요. '괜찮다, 괜찮다'며 스스로를 다독였어요. 이제 제법 내공이 쌓여서 엄마들이 모인 곳에 있어도 무덤덤합니다.
요리는 일주일 만에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아이가 맛없다는 반응을 보이니 정신이 번쩍 들었거든요. 제가 할 줄 아는 게 만두 튀기기, 냉동 볶음밥 만들기, 라면 끓이기가 전부였던 시절이었죠. 곧장 요리학원에 등록해 세 달 동안 재료 손질부터 차근차근 배웠고 이제는 요리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수준입니다.
집안일도 전적으로 제가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이전에는 대충했던 태도가 달라지더군요. 관련 도서를 사서 공부하고 궁금한 점은 인터넷에서 검색해 메모했습니다. 환경이 변화하니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아내의 애로사항도 이해할 수 있었고요. 그래도 퇴근한 아내가 방전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가끔 얄밉기도 합니다(웃음).
kizmom 육아나 살림 관련 책을 고를 때 선정 기준은?
노 아빠 육아서로는 같은 입장인 만큼 공감대를 많이 느꼈어요. 그런데 아빠 육아를 한다고 해서 아빠가 쓴 것만 읽기 보다는 다양한 육아 노하우가 있는 엄마 저자의 육아서, 살림서를 추천합니다. 저는 오히려 교육서를 더 많이 읽었어요. 가르치기도 해야 하는 입장이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엄마 커뮤니티에는 잘 들어가지 못하니 책을 통해 정보를 얻었죠.
kizmom 실제 아빠 육아를 경험하니 추천할만한가
노 여건이 어렵다면 단기적으로라도 경험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아빠가 아이들과 소중한 추억을 쌓는 것은 아빠 개인의 인생으로 봤을 때도 가장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업무에만 최선을 다하면 아이들 누구도 아빠의 편이 되지 않습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가정이 원하는 건 아빠의 경제력만은 아닙니다. 따뜻한 말 한 마디, 진심 어린 관심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kizmom 마지막으로 아빠가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꿀팁을 공유해달라
노 아이가 이야기를 하면 중간에 끊지 말고 계속 맞장구를 쳐주며 잘 들어줘야 합니다.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어색해 하는 아이라면 마음의 문을 열도록 스킨십을 해주세요. 수시로 간지럼을 태우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는 등 몸으로 먼저 친해지세요. 아이들과 놀 때는 아빠도 잠시 철없는 캐릭터가 되길 추천합니다.
<아빠, 퇴사하고 육아해요!> 노승후 저, 새움
맞벌이 부부의 삶을 겪은 뒤 더 큰 행복을 찾아 과감하게 퇴사하고 아빠 육아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두 딸과 아내와 함께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자신하고 있는 아빠 육아 전도사로 활동 중이다.
김경림 키즈맘 기자 limkim@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