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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아이'는 부모가 결정한다

입력 2017-11-29 16:48:56 수정 2017-11-29 16: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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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닌가보 다. 아이를 키울 때, 새삼 실감하는 말이라며 공감하는 이 씨(44)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있는 아이를 볼 때면 다른 친구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든다고 말했다.

부모는 내 아이를 평균 기준으로 다른 아이가 내 아이보다 더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구별 짓는다. 따라서 내 아이보다 어떤 측면에서든지 더 잘 한다고 느끼는 아이에게 이목이 쏠리기 마련. 잘하는 아이를 기준 삼아 내 아이를 보면 언제나 내 아이는 뒤처져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다.

비교의 근간에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가 심겨 있다. 내가 가져본 적 없는 것이기에 갖고 싶은 마음과 같다. 아이의 경우, 동적인 아이라면 정적인 면이 분화되었으면 하고 정적인 아이라면 동적인 면이 분화되기를 열망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의 부족함때문이 아닌 아이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비교는 NO! 아이가 아이답게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속,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른 이와 비교하고 몰아세우며 성장한 탓일까. ‘아이에게는 비교하지 말아야지하면서도 어느새 움터 있는 비교의식. 아이를 비교한다는 것은 내 아이가 지니고 있는 진짜 가치를 빛바래게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쉽사리 거두어지지 않는다. 눈 가리고 귀 막으며 모른 척 살 수 없기에 사회가 원하고 지향하는 아이로 자라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지만 종양과 같은 비교의식은 진짜 아이의 본 모습을 병들게 해버린다. 부모의 의식 속에 스며든 비교는 의식하지 못한 채, 아이한테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억지로 만들어내려고 하고 강요한다. 그리고 어느새 부모가 규격화한 틀 안에 아이를 넣어 더 뛰어나지도 더 못나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아이로 만들어 버린다.

아이를 비교하지 않고 키운다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을 도전하는 부모의 태도는 용기 있고 박수받아 마땅하다. 날마다 스며드는 비교의 마음을 경계하고 주의할 때, 우리의 아이는 이 아이답게 클 수 있다.


'문제'라고 쓰고 '강점'이라 읽는다
부모가 원하든 원하지 않는 성격이든 내 아이만이 지닌 고유의 성격은 지켜져야만 한다. 부모가 그 성격에 대해 동의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을 터.
그러나 부모가 생각한 틀에서 벗어난 아이는 부모의 근심거리기 마련이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은 다른 이와의 다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특별하길 바라면서도 평범했으면 하는 모순은 평균 보다 넘치면 넘쳤지 모자라지 않았으면 하는 부모의 바램이 서려 있다. 매사에 실수도 실패도 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은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수와 실패를 맞닥뜨리고 문제를 해결해본 아이는 실패해도 일어날 수 있음을 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부모가 생각한 아이의 문제점이 실상 이 아이가 가진 큰 장점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점이라고만 생각하던 부분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유심히 들여다보자. 뜻밖에 아이의 강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가능성을 열어두다
사회는 쉽게 단정 짓고 낙인찍는다. 그렇다면 부모는 다를까? 부모 역시 자녀에 대해 쉽게 꼬리표를 붙여버린다. 예를 들면 얘는 원래 그래와 같은 표현으로 말이다.’원래 그렇다는 의미를 언뜻 살펴보면 있는 그대로 아이의 모습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너는 원래 그런 아이야라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 아이가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한하고 단엄함으로써 아이를 포기한 것.
부모는 아이에게 쉽게 내뱉는 표현 중에 이런 표현은 없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꼬리표라는 게 붙일 때는 쉬워도 떼어낼 때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부모가 자녀에게 붙인 꼬리표는 낙인과도 같아서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 내내 따라다니면서 괴롭힌다.
이런 라벨링은 부모의 생각도 가로막는다. 말에는 힘이 있어서 말을 내뱉는 순간 우리 머리는 확신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번 아이에게 한 번 라벨을 붙이고 나면 그 아이는 항상 그렇다고 확신하는 경향을 띔으로 꼬리표는 결국 부모와 아동 모두에게 거침돌이 되버리고 만다.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단언하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라벨링은 붙인다면 아이는 세 뼘만큼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도 아이는 부모가 예측한 한 뼘만큼만 밖에는 자라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부모는 옆에서 그저 아이의 가능성을 응원해줄 뿐이다.


아이를 향한 부모의 믿음···
부모가 예측할 수 없기에 아이의 가능성은 기대된다. 부모가 정해진 한계선에 맞춰 부모가 생각한 딱 그만큼 커나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잠재력이 내 아이에게 있다는 것. 다른 이들은 내 아이의 드러나는 탁월함만 바라보지만 부모는 아이의 잠재적인 가능성과 유능함을 바라봐주고 믿어주는 것이 아닐까? 부모가 믿어줄 때, 아이는 비로소 유능해진다.

참고도서 <4세에서 7세 사이, 내 아이의 미래가 바뀐다>(부즈펌)

오유정 키즈맘 기자 imou@kizmom.com
입력 2017-11-29 16:48:56 수정 2017-11-29 16: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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