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 베스트셀러를 석권한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언어가 지니고 있는 온도는 때에 따라서 따뜻할 수도 차가울 수도 있으며 때로는 적당한 온기를 품고 있을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적당한 온도를 넘은 뜨거운 언어에는 용광로처럼 감정이 잔뜩 실리기 마련이라 듣는 사람이 정서적 화상(火傷)을 입을 수도 있으며,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현은 상대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하기 때문에 언어에도 적당한 온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작가는 언어라는 것이 정보 전달의 기능뿐 아니라 정서적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점을 정확히 짚으며 함부로 휘둘려지는 순간 무기가 되는 말의 위험성 역시 경고한다.
인간은 관계와 관계 속에서 무수한 말들을 주고받는다. 하루에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많은 말들을 쏟아 내지만 말을 ‘잘’ 하고 있는 걸까? 질문을 바꿔 말하면, 말을 ‘잘’ 다루고 있는 걸까?
말을 하는 것보다 말을 어떻게 하는지 다루는 방법이 중요한 말은 예민한 성격 탓에 소리의 고조, 속도와 같은 반언어적 표현과 몸짓과 눈짓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에도 영향을 받아 본의 아니게 다른 의미로 전달돼 오해를 불러오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번거로움과 수고스러움이 뒤따르더라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며 말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이유다.
부모-자녀 간에도 말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자녀와 부모를 잇는 연결고리이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주요 수단으로 관계 향상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양육과 교육에 대한 이해수준이 높아지면서 자녀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도 분명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자녀에 대한 비판과 비난에 대한 말 대신 되도록 격려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와의 놀이시간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며 끊임없이 아동에 대한 해바라기 같은 관심을 표하지만 자녀의 반응은 무덤덤. 차라리 무덤덤하면 다행이것만 부모와의 애착 문제 이상 증세를 보인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애탈 노릇이다.
또래 보다 많은 놀이 시간과 부모의 적극적인 질문 공세에도 아동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부모-자녀 간 대화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혹시 무수한 말들 속, 진정어린 대화가 아닌 말 뿐인 말을 으레 아이에게 던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neutral talk(뉴트럴 톡)’은 ‘중립적, 감정을 자제하는’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neutral(뉴트럴)과 대화라는 의미의 ’talk(톡)’의 합성어로 감정을 자제하는 대화 혹은 중립적인 대화로 통용한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적인 뉴트럴 톡은 합리적이고 이상적이다. 그러나 부모-자녀 간 대화에서도 이상적일까?
뉴트럴 톡의 오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의례껏 자녀와 주고받는 말은 비난과 같이 아이 마음에 상처를 내지 않지만 자녀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 한다. 안전하지만 최선은 아니다.
◆차선책처럼 사용되는 뉴트럴 톡
방에서 아동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이 방에 들어가자 아동을 본 엄마는 ‘스케치북이 있구나’ 말하고 뒤이어 들어온 아빠는 아동을 보고 ‘스케치북을 꺼내서 그림을 그리고 있구나’라고 말했다.
전자와 후자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전자는 사물에 대한 표현이고 후자는 그림을 그리는 주체에 대한 묘사다. 즉, 엄마는 아동 주변에 있는 물건에 관해 이야기 했고 아빠는 아동이 그림을 그리는 것에 관해 이야기 했다.
엄마, 아빠 모두 아이에게 말을 건넸지만 아이가 느끼는 온도차는 다르다. 아이에게 상처를 내지 않은 소위 안전한 중립적인 언어 뉴트럴 톡은 부모의 관심 대상처럼 여겨지지는 않는다. 반면, 열렬한 칭찬과 격려가 없던 아동, 대상에 대한 묘사를 한 아빠의 말은 부모가 나에게 관심을 쏟는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사실관계에 대한 성의 없는 답변, 아이와 의도와 상관없이 쉽게 예측하는 것 모두 뉴트럴 톡에 해당한다.
뉴트럴 톡이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것에 대한 부정 혹은 불필요함을 말하지 않는다. 뉴트럴 톡은 자주 사용되고 나눌 수 있는 표현 중 하나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향한 마음을 전하기에는 적절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을 뿐이다
아이에게 부모의 진심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고 싶다면 진심어린 말 한마디 주의 기울여 오늘 밤 전해보자.
오유정 키즈맘 기자 imou@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