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예의지국의 몰락인가, 야누스의 두 얼굴인가. 후안무치한 ‘을’을 향한 ‘갑’들의 무자비한 횡포.
제자를 고문하고 인분을 먹인 교수, 백화점 주차 요원의 무릎을 꿇리고 폭언을 퍼부은 고객 모녀, 아파트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 택배 차량 진입을 통제하는 신도시 아파트 입주민,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 뿌리고 욕설을 내뱉은 항공사 임원 등. 외신에도 잇따라 보도되는 한국의 '갑질 문화'는 고질적인 사회적 병폐로 떠올랐다.
티브이 속, 연일 보도되는 안하무인인 재벌의 횡포와 갑질에 혀를 내두르다가도 어디 재벌뿐이랴. 도처에 존재하는 무수한 '갑'과 '을'. 갑과 을이 되기를 반복하는 우리 내 이치. 갑인 동시에 을인 사람들, 을인과 동시에 갑인 사람들.
갑과 을이 되기를 반복하면서도 자그마한 권한과 힘이 실리면 휘두르고 싶은 마음을 숨길 수 없기에, 이내 생각을 여민다.
'네가 생각하는 것이 답이야’, ‘정답은 네 안에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곧 '기준'이 되고, '옳은 것'이 되는 시대 한복판에서 어쩌면 이전부터 예견됐을지 모를 갑질 파문.
아는 것이 곧 힘이고 실력만이 자랑이 되던 지난날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거짓말도 선택이니 존중해줘야 하나요?
아직은 작지만 다음 세대에 큰 사람이 될 아이들이 기성세대의 과오를 되풀이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저 요행을 바라는 것일까. 가르쳐 주지 않고 그저 알아서 알기 바라는 어른들의 이기심.
실력이 인성이 되던 시대를 넘어 사실보다 느낌에 이끌려 사는 시대의 도래. 바야흐로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탈진실’을 지향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생각하는 대로, 느끼는 대로 살아가는 시대의 큰 흐름 가운데, 거짓말마저 타당하게 여기는 사회의 기조는 마침내 아이들을 옳은 것과 그른 것 사이 표류하게 한다.
얼마 전, 초등학교에서 열린 학교 폭력 근절 및 예방 대책회의 학교폭력위원회를 다녀온 지인 한 분을 뵀다. 가벼워진 선생님의 권위만큼 선생님의 입지는 좁아졌고 학부모의 목소리는 어느덧 학교 담장을 넘을 만큼 커진 학교풍경이 격세지감을 실감케한다고 했다.
더욱이 학부모의 생각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운을 뗐다. 아이를 존중한 나머지 아이의 거짓말도 존중돼야 한다는 것. 거짓말 역시 아이의 선택인 까닭에 부모는 채근하기보다는 이를 눈감아 주고 아이의 선택을 마땅히 존중해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는 것이다. 덧붙여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자신감 있게 살기 위해 부모는 거짓말일지라도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오래도록 듣다보니 마치 자신은 구식인 부모인 것 같다던 지인의 이야기.
아이의 건강한 자존감을 위해 거짓말은 용인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 드넓은 사회에서 선생님도 아니오, 부모도 아니오, 오롯한 아이의 생각과 선택이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인 듯했다.
칼을 다룰 줄 모르는 아이에게 무턱대고 칼자루만 쥐여주는 어른들. 아이가 칼을 아무렇게 휘둘러도 통제할 수 없는 통제력을 상실한 시대는 단연코 그 어느때 보다 더 큰 불안과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내 생각과 감정이 진실처럼 공유되며 기준이 허물어진 시대, '자유'라는 명목하에 아이에게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고 마땅히 알려줘야 할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되짚어봐야 할 때다.
마땅히 가르침
옛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어릴 때의 버릇과 형성된 사고는 늙어서도 고치기 어렵다. 어렸을 적 형성된 생활 습관과 생활양식은 성인이 돼서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영유아 시기의 습관을 강조한다. 아이들의 바른 생활양식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아이가 자라남에 따라 저절로 바른 생활양식을 익혀가는 것을 아닐 터. 부모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먹기 싫어하는 음식도 먹여가며 편식을 줄여가고 양치 하지 않는 아이가 양치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모든 것이 아이에게 재밌고 신나는 일은 아니다. 불편하고 귀찮으며 싫다. 그러나 아이가 싫다고 해서 안 먹이고 이가 썪도록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훈육은 어떨까? 부모의 올바른 가르침은 아이의 내적인 균형을 이루고 건강한 성장발달을 위해 중요하다. 아이는 부모의 가르침에 따라 도덕적 행동을 판단하고 연습하면서 성숙하게 옳은 가치 판단을 세워나가기 때문이다. 이 과정 역시 아이에게 불편하고 유쾌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올바른 기준'이 바로 설 때, 아이는 더욱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마땅히 행할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아이를 향한 부모의 바른 '말'이 사라지고 아이의 분별 없는 '말'이 진리가 되는 요즘, 아이를 향한 부모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더불어 가르침에도 때가 있다. 그 때를 놓쳐 후회하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마땅히 행해야할 바를 알려줘야 하지는 않을까.
부모의 가르침이 없다면, 내 아이도 잠재적 '갑'일지도. 사회적 약자를 향한 괄시와 횡포가 더 이상 도돌이표처럼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랄뿐이다.
오유정 키즈맘 기자 imou@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