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모순일까. 유례없는 풍족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어느 때 보다 마음이 가난한 아이들. 부모도 예외는 아니다. 육아 지식이 넘쳐나면 날수록 부모의 양육 불안과 양육 스트레스는 높아지고 양육 효능감은 저하된다.
육아 지식을 알아가면 알수록 명쾌해지는 것이 아니라 혼란스럽다는 더러의 부모. 아는 것이 힘이라지만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모양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여전히 힘들고 조심스러운 시대다.
오늘날 부모는 아이의 문제를 얼마나 자신의 문제로 느끼고 있을까?
부모-아동 상호작용 치료를 진행하던 당시, 상담소를 찾은 대다수 부모는 아이들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부모는 왜 아이의 문제가 본인으로부터 비롯됐다고 굳게 믿고 있던 걸까.
아이의 문제를 본인 자신의 문제로 여기는 부모는 평소 양육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대개 한두 번쯤은 육아서적 내지는 부모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고 높은 수준의 육아 지식을 자랑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육아 지식이 양육 효능감을 저하시키는 등 오히려 해가 됐다. 부모 양육의 중요성의 강조는 '아이 문제가 곧 부모의 문제'라는 무조건적인 책임론으로 변질되며 오해가 잘못된 죄책감을 낳았다. 어느새 부모는 오히려 가중된 책임감 안에 묶여 있던 것.
사회는 아이의 문제행동을 결국 '문제는 아이보다 부모에게 있었다’라고 간단하게 부모의 책임으로 귀결 짓는다. 그러나 아이의 문제가 부모의 100% 책임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것은 부모는 아이의 성격, 습관 등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환경적 요인이지만 아이 문제의 원인일 수는 없는 것.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부모로부터 기인됐다고 하던데 아닌가요?'라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부모의 행동이 아동의 문제 행동을 고착화하고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타고난 기질 혹은 내적 요인 없이 오롯이 부모의 잘못된 양육으로 문제 행동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요소가 자극과 결합 됐을 때 마침내 촉발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오로지 부모의 잘못된 양육이 아이의 문제를 만드는 원재료는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나무가 있고 불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나무가 불에 타게 되는 것은 불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나무가 불에 타게 된 것은 불이 아니라 나무가 가지고 있는 성질인 가연성이 불과 만났을 때 마침내 탈 수 있게 된 것.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가 기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향이 부모의 양육이라는 외부적 환경 요인가 결합했을 때 문제 행동으로 촉발될 수 있지만, 그 모든 원인의 까닭이 부모에게 있지 않은 것. 같은 양육 환경에서 자란 아이의 성향이 다르고 자라나는 모습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구체적으로 소아우울증을 살펴보자. 소아우울증의 여러 가지 원인으로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부모의 부족한 상호작용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부차적인 차원의 두 번째 원인이지 근본적 원인이 될 수 없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기준을 예로 들었을 때 각 사람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기준이 다 다르다. 따라서 똑같이 두 사람에게 한 시간의 분량의 숙제를 내준다고 가정했을 때, 스트레스에 취약한 기준이 1인 사람보다 5인 사람이 받는 학업적 스트레스와 부담을 더 클 수 있다. 물론 과제를 이해하는 정도, 흥미 등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즉,아이가 기본적으로 가지곤 있는 우울한 기질, 스트레스 취약 등 여러 가지 내적 요인 없이 부모의 학업 지시만으로 소아우울증이 촉발될 수는 없는 것.
‘문제는 아이보다 부모에게 있었다’라는 말에 동의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까닭이다.
부모는 아이의 작은 흠과 변화에 흠칫 놀란다. 아이에게 적절한 놀이 자극을 주지 않아 아이의 발달이 느려지지는 않았는 지, 아이를 다룰지 몰라서 아이가 산만한 것은 아닌지, 아이를 제한하다 보니 아이가 내성적으로 변한 것 같아 여러 가지 고민을 한다. 그러나 과도한 자기반성과 불필요한 자책은 부모의 스트레스 지수와 우울감을 높일뿐이다. '모든 게 내 탓이오' 하는 동안 본인이 아이에게 어떤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놓치고 정작 본인이 얼마나 좋은 부모인지 모르고 지나친다.
되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점검하고 잘못된 점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하는데 중요한 태도이지만 오히려 부정적 생각에 매몰돼 있다보면 아이와 관계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과도한 자기 반성과 인색한 칭찬 대신 스스로를 격려해보는 것을 어떨까. 스스로를 격려했을 때, 반성보다 더 큰 깨달음과 예상치 못하게 아이를 대하는 양육의 질이 높아진다.
오늘도 불필요한 자책을 하고 있었다면 생각을 내려놓고 본인이 얼마나 좋은 부모인지 들여다보자. 자신이 생각했던것 보다 꽤 좋은 부모를 발견할 것.
오유정 키즈맘 기자 imou@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