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에서 흔히 쓰이는 말 중에 ‘장남병’이란 단어가 있다. 이는 ‘장남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부인에게 과도한 효도를 요구하며 시댁 집안일의 대소사를 책임지려는 남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장남병’에 걸린 남편을 둔 아내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상승하고 있다.
결혼 2년 차인 A씨는 이번 추석 연휴 때 주말 근무를 하게 됐다. 다른 직장인들은 대체 휴일 포함 5일을 쉬지만, A씨는 3일 밖에 쉬지 못하게 된 것. 현재 A씨 부부가 사는 곳은 경남, 시댁은 전북, 친정은 서울이기 때문에 꽤 빠듯하게 오고 가야 하는 상황이다.
명절을 2주 가량 앞두고 선물을 포장하고 있던 A씨에게 남편이 다가와 물었다.
“이번 추석 어쩔 거야?”
“뭘 어째?”
“아니, 명절이 짧잖아.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이때부터 뭔가 직감한 A씨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고 묻자 남편은 “3가지 중 골라봐라. 따로 가거나, 둘이서 같이 왔다 갔다 하거나, 처가댁을 포기하거나” 라는 선택 사항을 제시했다.
이에 A씨가 “이번에 처가댁 포기하면 다음 설에 시댁 포기할 거냐”라고 묻자 남편은 “말이 되는 소릴 하라”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답답한 A씨가 왜 화를 내냐고 따져 묻자 남편은 “넌 내 입장은 생각 안 하냐, 나는 장남이고 장손이야”라며 계속해서 화를 냈고, 결국 명절 때 각자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는 말로 대화는 끝이 났다.
A씨의 사연에 누리꾼들은 “왜 3가지 선택사항 중에 시댁을 안 간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냐”,“그쯤이면 ‘장남병’ 말기 환자다”,“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헛소리를 하는 남편이 있냐”는 등의 의견을 달았다.
최근 결혼과 가족에 대한 기존의 가치관이 빠르게 붕괴되면서, 가부장제가 요구해 온 며느리의 역할에도 작은 바람이 불고 있다. 기혼녀의 부당한 현실을 꼬집은 콘텐츠가 계속해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역시 이를 방증하는 셈. 일례로 웹툰 <며느라기> 와 같은 작품들은 새로운 며느리 상을 요구하는 젊은 여성 세대들의 가치관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하지만 세대를 답습하며 견고하게 이어져 온 전통 문화가 단숨에 바뀌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올 초 사람인이 진행한 설문조사 자료에 따르면 ‘시댁 먼저 가고 처가를 가는 관행’에 대해 '불합리하다'라고 답한 여성은 55%였지만 남성은14%에 불과했다.
결혼 4개월 차 신혼인 B씨도 명절을 앞두고 결혼은 현실임을 절감하고 있다. 추석당일 시댁에서 아침을 보내고 남편은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아버지는 B씨더러 "며느리는 혼자 남아 제사를 지내고 가라"고 통보 했다는 것.
B씨는 “내 부모님한테도 인사드리러 가야하는데 시댁에 남편도 없이 혼자 남아서 제사를 지내고 와야 하느냐"며 "너무 싫고 스트레스 받는다. 남편한테 불평해도 자기 아버지 고집은 못 꺾는다며 회피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남편이 아버지 고집을 못 꺾는게 아니라 귀찮아서 모르는 척 하는 거겠죠.”,“남편이 나 몰라라 하면 그냥 멋대로 하세요. 제 남편도 우유부단해서 부모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었는데, 그냥 미친 척하고 멋대로 했더니 일이 더 커져서 지금은 열심히 중재하려고 노력해요.”,“모든 선택은 부부 둘이서 하는 거지, 시아버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게 아니에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이진경 키즈맘 기자 ljk-8090@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