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1906-새와 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윌리를 찾아라'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라면 이번 주말 나들이로 이 전시를 추천한다. 갤러리 H 전관(서울시 종로구)에서 열리고 있는 이은호 홍익대학교 교수의 개인전 '순환-시간'이다.
앞서 '윌리'를 언급한 이유는 이은호 교수도 자신의 작품 속에 시계, 숫자, 이국적 풍경들, 아이, 건물, 자연 등의 요소들을 넣어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듯 관람하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유명 미대 교수의 어려운 작품이 아닌 아이와 함께해도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관람객들에게 다가가는 것. 한국화에 대해 아직은 생소할 아이들이 입문하기에 좋은 기회다.
이번 개인전의 주제인 '순환-시간'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혈연들의 사별을 겪으며 생성과 소멸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 중 얻은 작가의 통찰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간의 심리, 내면의 갈등 등 현실에 근거한 사적인 자기표현을 위주로 작업했던 이은호 교수는 최근 들어 근원적 물음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없음’을 깨달았고 발상에 관한 확장과 자유로움을 얻었다.
이러한 작가의 탐구 여정이 기록된 작품들은 갤러리 H 전관 4개 층의 곳곳을 꼼꼼하게 채우고 있다. 대부분이 100호 채색화 대작으로 한지 바탕 위에 은은한 색채의 번짐과 석채, 금·은박 기법을 이용함으로써 부드러움과 강렬함이 동반된 한국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림에 '순환적 시간과 유한한 시간'을 담은 작가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다양한 개체들로 유한함을 표현하고 원(圓)이나 복(福)이라는 글씨로 순환을 상징화했다.
시서화로 자신만의 개성적 화풍을 보여주는 것도 특징이다. 실제로 전시된 작품 중 다수에서 활달한 필치로 쓴 붓글씨가 화면의 오브제로 등장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은호 교수는 이를 위해 평소 애송하는 시와 기도문을 기록해 놓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에 그의 작품에는 동양적 자연관과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문인화 정신이 깃들어 있다.
순환1901-밤
미술평론가 김이순은 "이은호의 조형세계는 지속적으로 변화해왔지만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일관되게 지속된 것은 여성작가로서 삶에 대한 깊은 사유다. 또한 채색화라는 독특한 전통회화 양식을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자신만의 화풍으로 구현하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은호 작가는 결혼한 여성이 겪어야 할 막막한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그림을 그렸고, 그 결과 자신만의 독자적인 미술세계를 일구었다. 그는 지금도 날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중이다"라고 평가했다.
해당 전시는 오는 19일 종료된다.
김경림 키즈맘 기자 limkim@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