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범죄에서 인출책으로 사용됐던 계좌라고 하더라도 명의자가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면 잔액을 모두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7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A씨가 금융감독원장을 상대로 낸 소멸채권 환급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재작년 1월 통장 거래실적을 요구하는 보이스피싱에 속아 본인 명의의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A씨의 해당 계좌에 피해자 B씨의 3000만원을 입금했다.
이후 A씨는 계약금과 중도금 2500만원을 같은 계좌에 입금했다. 이후 2500만원 중에 2000만원은 자신의 다른 계좌로 송금했다. 500만원은 계좌에 남아있는 상태였다.
보이스피싱을 알게 된 B씨가 은행에 A씨 계좌에 대한 지급정지와 피해구제를 신청하자, 은행은 A씨 계좌 전체를 지급정지하고 금감원에 예금채권 소멸절차 개시를 요청했다.
아울러 다른 계좌까지 채권소멸절차가 시작되자 A씨는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은행은 '보이스피싱 피해자금 3000만원과 A씨의 돈이 섞여 객관적인 자료로 소명되지 않았다'고 반려했다.
그러는 사이 A씨의 또다른 계좌 속 2009만여원은 B씨에게 환급됐다. 이에 A씨는 "돈을 환급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A씨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A씨가 사기범이 실제 은행 직원인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사기범들에게 주민등록번호 등을 알려준 과실이 인정되지만, 이를 고의에 가까운 정도의 중대한 과실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사기범들에게 체크카드를 주고 비밀번호를 알려줘 사기범들이 언제든 계좌에서 A씨 예금을 인출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나머지 500만원은 계좌에 남겨뒀다"며 "해당 계좌가 범행에 이용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경림 키즈맘 기자 limkim@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