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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가스라이팅 하지 마세요"…그게 뭔데?

입력 2022-09-05 14:51:47 수정 2022-09-05 15: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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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딸을 둔 A씨는 딸로부터 낯선 말을 들었다. 후줄근하지만 편한 옷을 입고 나가려는 딸에게 "옷 좀 예쁘게 입고 다녀라. 20대 아가씨가 좀 꾸미고 다녀야지?"라고 말하자 딸은 "엄마, '가스라이팅' 하지 마세요"라며 장난 섞인 어조로 답했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팅이 뭐지?' A씨는 그 때부터 가스라이팅의 개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스라이팅이 일종의 정신적 폭력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가스라이팅의 정확한 의미는 '타인의 심리상태에 조작을 가해 자신을 불신하고 가해자에게 의존케 하는 심리적 학대'다. 한 마디로 상대방을 내 입맛대로 조종하는 것이다.

이 용어는 영화 '가스등'에서 유래했다. 영화에는 여자의 재산을 목적으로 결혼한 남편이 등장하는데, 그는 집 2층에 있는 보석을 찾아 훔치기 위해 아내 몰래 가스등을 켠다. 그 때마다 연결된 다른 쪽 가스등의 불빛은 약해진다.

아내는 2층에서 자꾸 소리가 나고 가스등 불빛이 흐려진다고 말하며 불안해하지만 남편은 아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당신이 상상해낸 것이다. 그런 일은 없다"며 아내의 감정과 상황을 지속적으로 왜곡시킨다. 결국 아내는 점차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고 신경은 쇠약해진다.

이처럼 가스라이팅은 일종의 정신적 폭력이다. 하지만 다른 폭력과의 차이점은 가까운 애착관계에 놓인 사람이 그 대상이 된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연인, 부모와 자녀, 직장 상사와 동료 등 간의 관계가 그렇다.

가스라이팅의 순서는 이렇다. 가해자들은 먼저 사적인 대화로 깊은 관계를 만들고 친밀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하지만 곧 상대가 작은 실수를 저지르면 "왜 맨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지속적인 비난과 지적에 의해 결국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하는 행동의 옳고 그름을 가해자가 판단하도록 의존해버린다.

가스라이팅의 또다른 특징은 피해자의 모든 대인관계가 끊어진다는 점이다. 가해자는 피해자와 관련된 사람들 사이에서 이간질을 하며 피해자를 고립시킨다. 주변인의 조언을 듣고 고민하는 상대방에게 "나만큼 널 잘 아는 사람은 없어", "저 사람들이 너에 대해 뭘 알아? 저들은 너를 싫어해" 등의 말로 혼란을 준다.



몇 년전부터 가스라이팅은 사회적 문제로까지 떠올랐다. 이 생소한 개념이 공중파,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급속도로 알려지면서 가스라이팅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요즘은 나의 주관과 취향 등에 개입해 나의 생각을 바꾸려 드는 행위도 '가스라이팅'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가스라이팅'을 검색하면 10-20대로 추정되는 이들이 자신의 불만족스러운 현실은 부모의 지속적인 '가스라이팅'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원망하는 글도 적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A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모든 부모-자식 간 갈등이 무조건 가스라이팅은 아니다.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의존적이고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가벼운 지적과 비판까지 무조건 가스라이팅이라고 보긴 어렵다.

특히 인터넷에서 가스라이팅의 특징을 검색하다보면 '가해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문장들'이라며 정리된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상대로 그런 말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 특정적인 말을 자주 한다고 해서 반드시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스라이팅이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만큼, 우리 스스로를 한번 더 되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모는 자식을 향한 간섭과 조종이 세심한 관심과 애정이라고 착각할 수 있으므로, 자녀가 자신이 내뱉는 특정 단어, 문장 때문에 힘들단 표현을 하지 않았는지, 이로 인해 대인기피증 등 심리적 문제를 겪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또, 부모의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면 최대한 빨리 전문가를 찾아 상담과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 가스라이팅이란 개념이 인기 아닌 인기를 얻으면서, 잡다한 내용과 잘못된 지식이 난무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따라서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주미 키즈맘 기자 mikim@kizmom.com
입력 2022-09-05 14:51:47 수정 2022-09-05 15: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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