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일과 육아 다 잘해보려고 결심했을 거예요. 일에 관한 열정만큼 아이에 대한 사랑도 깊으니까요. 그러다 괴로움과 좌절이 겹겹이 쌓여, 한쪽을 택하고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도 하고 있을 테고요. 키즈맘이 그런 고민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이 과정을 무사히, 치열하게 극복한 엄마들을 만나 동기부여를 받고 좋은 기운을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첫인상부터 인기 드라마 ‘대행사’ 속 고아인(이보영 분)이 단번에 겹쳐 보인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극중 고아인의 일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 우아하고 똑 부러지는 태도까지 판박이다.
빼곡한 경력으로 빛나는 궤적을 그리며 일과 육아를 모두 성공적으로 품은 전수경 디블렌트 컨텐츠마케팅본부 본부장 겸 음악감독을 만났다.
다음은 전수경 본부장과의 일문일답.
KIZMOM 워킹맘이 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전수경(이하 전) 저는 5월에 결혼하고 7월에 바로 임신했어요. 그리고 출산 후 3개월이 지나 바로 현장에 복귀했고요. 당시엔 수많은 작곡가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리가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 서둘러 회사로 돌아왔죠. 출산 후 ‘3개월 휴식’이 거의 기본이기도 했고요. 다행히 젊어서 출산을 한 덕분인지 컨디션 회복이 상대적으로 빨랐어요.
KIZMOM 다른 인터뷰에서 ‘(육아에 관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스토리들이 정말 많았다’고 하셨어요.
전아이가 태어나고 4~5살까지가 제일 힘들었어요. 대부분의 직장인이 주말을 보장받기가 쉽지 않지요. 게다가 저는 광고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CF 광고가 TV에 온에어하는 요일이 보통 월요일이라 더욱 주말 없이 새벽에도 일했고요.
그러다 보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에 가야 하는데 저는 회사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도와주시는 이모님이 계셔도 아이를 혼자 병원에 데려갈 수 없으니 시어머니, 친정엄마 모두 오시는데 정작 아이 엄마인 저는 못 가는 거예요.
KIZMOM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하시나요?
전아이와 같이 앉아 있는 게 중요해요. 애들은 절대 알아서 크지 않아요. 엄마와 아빠가 행동으로 보여주면 아이들은 말로 표현 안 해도 다 보고 배우거든요. 엄마가 옆에서 같이 엉덩이 붙이고 앉아 일을 하거나 책을 보면 그 분위기에 아이도 따라와요. 아이에게 시키는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하는 게 핵심이에요.
자녀를 잘 키우는 것도 인생의 중요한 과업이에요. 어떤 프로젝트보다도 중요하고 또 성공시켜야 하죠. 보면 성공한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준비 기간이 꽤 길어요.잠깐 1~2달 반짝 열심히 교육한다고 그게 좋은 습관으로 빠르게 굳어지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어렸을 때 진득하게 앉아 있는 습관을 만들어줘야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KIZMOM 워킹맘으로서 다른 워킹맘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요?
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엄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조금만 참으면 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1년 지나고 또 1년이 지나면 좀 더 괜찮아져. 확실히 지금보다는 나아져”
아이를 키우다 보면 누구나 진짜 힘든 순간이 있어요. 저 또한 같은 길을 조금 더 앞서 걸었고요. 그래서 경험자로서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KIZMOM 이번엔 개인적인 질문을 해볼게요. 패션 감각이 남다른데 스타일링 팁을 주세요.
전저는 제게 안 어울리는 스타일을 무리해서 시도하지 않아요. 그리고 착장을 미리 생각해 놓고요. 워낙 바빠서 다음 날 일정을 고려해 입을 옷을 전날 스타일링 해두는 편이에요. 출근해야 하는 아침에 입을 옷을 고르면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거든요. 그렇다고 또 그 착장이 항상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고요.
KIZMOM 자기관리 능력이 수준급인데 몸매관리의 비결을 공유해주세요.
전특별한 건 없지만 좋은 습관을 생활 속에 녹여내려고 해요. 일주일에 3번 유산소 운동을 하고, 제가 근무하는 6층까지 계단을 이용하려고 노력하고요. 식습관에 관해서는, 가공식품을 잘 안 먹어요.
KIZMOM 직장일에 자녀 교육, 자기 관리 게다가 요리까지 수준급인데 이걸 어떻게 다 하나요?
전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성향이 있어요. 잘 해내고 싶어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도 많이 줬고요. 그래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죠.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도 간 수치가 평균보다 몇 배나 높게 나와 대학병원의 유명한 교수님께 진료를 받았어요.
그러다 생각을 바꾸고 조금 내려놓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는데 거기에 저를 진료해주시는 병원 교수님이 계신 거예요. 알고 보니 교수님의 자녀도 같은 학원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때 교수님과 나눈 대화가 제게 정말 큰 힘이 됐어요.
그 교수님도 전에는 진료와 육아를 병행하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을 안 하셨대요. 그러다 당당하게 얘기를 하기로 결심하셨다는 거예요. 교수님 말씀으로는 저희가 선배로서 좋은 선례가 되어야 같은 상황인 후배들에게도 도움이 되어줄 수 있다고 하셨고요. 아이를 잘 키우려고 하는 거지 우리가 죄책감을 느낄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니지 않냐고 하시면서요.
그 이후로 저는 직장이나 부모님, 남편한테 어려운 점을 전보다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어요.
KIZMOM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무엇인가요?
전6~7년 전까지만 해도 계획을 묻는 질문에 항상 구체적으로 답했어요. 늘 목표가 있었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현재가 즐겁지 않으면 미래도 없는 거라고 생각하며 좀 더 편해지려고 해요.
요즘에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갈 때 ‘오늘 하루 열심히 했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그런 하루가 여러 날이 모여서 언젠가 자연스럽게 일궈내는 게 있더라고요.
대신 나의 아이덴티티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나는 이런 걸 좋아한다’, ‘내 취향은 이런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 되어야 해요.
우리나라는 사실 유행이 휩쓰는 나라인데 그 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탐구하는 여정이 필요해요. 그렇게 ‘나의 것’을 열심히 반복하다 보면 나의 아카이브가 생기고 나아가서는 그게 브랜드가 되는 거니까요.
KIZMOM 현재 전 세계적으로 저출산이 큰 이슈이지요. 여기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일단 육아와 일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게 아니라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매체에서 잘 보여주며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기획 현영희 편집장 / 김경림 키즈맘 기자 limkim@kizmom.com
입력 2023-06-15 12:00:58
수정 2023-06-16 09:3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