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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싸우지 않는 겨울방학 독서지도

입력 2014-02-14 09:32:06 수정 2014-02-14 09:3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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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싸우지 않고 독서록 쓰기

독서 교육에 있어서 ‘독서록 쓰기’는 뜨거운 감자다. 독서는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일체의 독후활동에 반대한다는 분들이 있고, 독서를 진정 완성하기 위해서는 독후활동이 필요하다는 분들도 있다. 나는 주로 전자에 동의하는 편이지만,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다 보면 후자의 주장에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독후활동이라면 더 발전적인 독서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은 독서록이라는 말만 나와도 낯빛이 변한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독서록 쓰기에 적절한 책을 골라라

독서록 쓰기에 적절한 책을 고르라는 말은 책을 골라 읽으라는 뜻이 아니다. 읽을 때는 자유롭게 읽되, 독서록을 쓸 때는 글쓰기에 적절한 책을 가지고 쓰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읽은 책에 따라 적절한 글쓰기 형식을 찾으라는 말이다. 한번은 책 읽기를 제법 좋아하고 학교 독서록도 모두 채운 어린이가 상담을 왔는데, 아이는 겉보기와 달리, 그리고 엄마의 기대와도 달리 독서록 쓰기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학교에서 만든 독서록이란 결국 주인공에게 편지 쓰기, 대본 만들기 등 몇 가지 정해진 양식을 반복하고 있다. 별로 흥미롭지 않을뿐더러 혼자서 하기엔 벅찬 것도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틀에 맞춰서 감상을 욱여넣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담 온 아이의 독서록에는 양식에 맞추느라 ‘작가 선생님에게 책 속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 보세요’라는 질문에 억지로 답한 대목이 있었다. 문제는 아이가 읽은 책이 초등학생이 쓴 글을 모아 낸 책이라는 것. 이래서야 글쓰기가 재미있을 리도, 창의적인 답이 나올 리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독후활동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면 안 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독서록 쓰기를 해야 한다면 무조건 채우기만 하지 말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아이가 읽은 책이 등장인물이 개성 있고 이야기가 구조가 뚜렷한 동화라면 인터뷰 형식이나 대본 쓰기가 적절하겠지만,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한 지식책을 읽었다면 신문 꾸미기나 광고 형식을 골라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정리해 보도록 한다. 동시집을 읽었으면 마인드맵으로 인상적인 단어를 적어 보는 것도 좋다. 책을 고를 때 그랬듯이 독서록 쓰기에서도 최소한 ‘선택’의 여지를 두도록 하자. 부모와 교사는 적절한 형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자.

활동에 연연하지 말고 표현에 집중하라
아이가 어려서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경우 엄마들은 다른 독후활동을 유도한다. 주로 그리기와 만들기다.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미술로 감상을 표현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아이가 책을 읽고 ‘이런 걸 해 보고 싶다’고 느껴 스스로 하는 활동은 얼마든지 지지해주자. 다만 책을 읽는 것과 큰 상관없는 미술 활동을 억지로 책과 연관 지어 하게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다. 아이가 그리기와 만들기를 좋아해서 당장 활동 자체에는 거부감이 없다 해도, ‘책을 읽으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나 추천하는 독후활동은 바로 ‘대화’다. 알다시피 고대 철학자들도 대화로 수업을 했다. 책을 읽으면, 특히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저절로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마련이다. 글쓰기나 미술 활동 전에 아이가 말을 하게 하자. 재밌는 대목을 설명하거나 반대로 지루했던 부분을 말하게 해도 된다. 예전에 읽은 책과 비슷한 부분을 찾는 것도 좋다. 글로 쓰자면 부담스러워 잘 나오지 않는 표현도 말로는 훨씬 쉽게 나올 수 있다. 아이가 하는 말을 경청하고 메모하자. 때로는 엄마가 그대로 받아 적어 주는 것도 좋다. ‘말하고 싶은 것을 글로 쓰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자. 어떤 활동을 하느냐보다 어떤 표현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감상을 중심으로 하되 핵심 문장을 정하라
독후활동으로 글쓰기를 하는 아이들의 관심사는 주로 한 가지, “몇 줄 써요?”다. 요령을 피워 두세 줄 쓰고 끝내려고 하면 엄마들은 다섯 줄 써라, 열 줄 써라 하고 더 큰 과제를 준다. 아이들의 전략은 둘로 나뉜다. 글자를 크게 쓰거나, 줄거리를 늘여 쓰거나. 독서록을 쓰면서 엄마와 아이가 가장 크게 싸우는 대목, 분량은 어떻게 정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량은 정하지 않는 게 제일 좋다. 정해진 분량에 꼭 맞게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작가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여담이지만 작품을 더 좋게 하려는 욕심이 생길 때, 편집자는 작가에게 분량을 줄여 보자고 권한다. 덜 중요한 문장을 빼다 보면 글이 좋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때로 아이들에게 “오늘은 독후감을 꼭 두 줄만 써야 돼. 덜 써도, 더 써도 안 돼.” 하고 제한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지루하게 줄거리 정리할 틈 없이 꼭 하고 싶은 말을 고른다. 이렇게 고농축 문장을 써본 경험은 금방 다른 글쓰기로도 이어진다. 한두 문장을 쓰더라도 자기 감상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길게 쓰는 훈련이 필요하다면 무작정 ‘몇 줄’ 쓰게 하지 말고, 인상적인 한 부분을 설명하듯 자세히 써 보거나, 책을 읽은 느낌에 덧붙여 그런 느낌이 든 이유를 찾아 적게 하는 식으로 가이드를 주자.

수준에 맞는 글쓰기를 유도하자
글쓰기는 어렵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더욱 어렵다. 재미와 감동이 넘치는 책을 읽었을 때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아이가 독후감을 쓸 때 부모도 똑같이 공책에 연필로, 그러나 아이 수준이 아닌 어른 수준으로 글을 쓴다고 상상해보자. 나도 모르게 미간에 힘이 들어갈 것이다. 독서록을 쓸 때 아이 마음이 바로 그렇다. 그런데 글쓰기는 사실 즐거운 것이다. 앞서 말했듯 자기 생각이나 느낌에 딱 맞는 표현을 찾아 문장으로 쓰는 것은 말을 처음 배울 때와는 차원이 다른 기쁨을 준다. 소설가 김연수는 “즐겁지 않은 글쓰기란 인상을 쓰면서 뛰어논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했다. 즐겁지 않은 글쓰기는 없다는 뜻이다.

어떻게 하면 즐거운 글쓰기가 될까? 그 답은 간단하지 않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독서가 그랬듯 수준에 맞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 글쓰기는 어려운 것이므로 수준을 너무 높여 잡으면 안 되겠지만, 원래 자기 수준보다 살짝 높은 것에 도전해야 성취감을 얻게 마련이다. 쉬운 글쓰기가 어느 정도 됐다 싶을 때는 적절하게 수준을 올려주자. 독서록을 쓴답시고 날마다 주인공에게 편지쓰기를 하고 있어서는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는다. 똑같이 동화책을 읽고서도 상황을 설명하는 글을 쓸 수도, 주인공의 행동을 비판하는 글을 쓸 수도 있다. 주인공이 아닌 등장인물 입장에서 하루치 일기를 쓰는 것으로 ‘시점’에 대한 것을 배울 수도 있다. 독서록에 매달리지 말고 아이가 원하는 글쓰기를 하게 해 주자. 물론 그렇게 하려면, 부모도 같이 읽어야 한다. 다른 길은 없으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오늘부터 읽자. 늘 하는 얘기지만 다행히도 어린이책은 재미가 있다.


글 / 김소영 선생님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한 뒤 시공주니어, 창비에서 그림책과 동화책을 만들었다. 어린이책 전문 편집자로 일하며 <김소영 독서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연감 동화분과 기획편집위원.

기획/ 강은진 객원기자
입력 2014-02-14 09:32:06 수정 2014-02-14 09:3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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