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로나 디즈니 캐릭터들이 나오는 화면 속으로 내 아이를 맡겨버리기엔 왠지 죄책감이 든다. 욕조에 물 받아서 앉혀 놓는 것도 잠깐이다. 아이는 자꾸 놀아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모른다면 긴 여름날은 더 길게만 느껴지게 된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몇 가지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감성 교육놀이를 제안한다.
◆ 욕실 벽에 벽화 그리기
목욕 놀이가 지겨워질 때쯤, 아이에게 큰 붓과 물감을 주면 아이는 피카소로 변신한다.
단지, 엄마가 저 창작 작품들을 깨끗이 닦아야 한다는 수고스러움이 있다는 게 단점. 하지만, 그 기회에 화장실 청소도 하는 거다. 너무 저렴한 물감으로 했다가 잘 안 지워져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한번만 시도하고 말거라면 집에 있는 물감으로, 아이가 벽에 핸드 페인팅 하는 걸 좋아하니까 자주 해 줄 생각이라면, 무독성이고 잘 지워진다는 녹말성분의 물감으로 시도하길.
★ 준비물-큰 붓, 물감, 물감 짜서 놓을 플라스틱 접시나 쟁반. 앞치마(안 해도 무관)
◆ 비닐우산에 그림 그리기
비닐우산 그림은 샤워기로 물을 뿌리면 잘 지워지는 편이다. 투명우산은 인터넷에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찢어질 때까지 쓸 수 있으니, 한 번에 여러 개 사 두었다가 심심할 때 꺼내서 쓰면 재미있는 스케치북 대용품이 될 수 있다. 우리 아이는 자기가 색칠해 둔 우산들을 거실에 여러 개 펼쳐놓고 우산 텐트 놀이에 심취하기도 했다.
★ 준비물-투명비닐우산, 물감, 붓, 물감 짜서 놓을 플라스틱 접시나 쟁반.
◆ 먹물 그림 그리기
알록달록한 색깔 물감은 문화센터나 미술학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아이템.
하지만, 까만 먹물은 사실 엄마도 부담스러운 재료이긴 하다.
상대적으로 옷이 얇은 여름에 시도할 수 있는 미술 놀이 중 하나다. 솔직히, 놀이라고 하기엔 좀 단순하다. 아이들에겐 새로운 미술 재료만으로 ‘놀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
하얀 화선지에 까만 먹물이 번지는 느낌을 맛보면 아이들은 의외의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화선지를 사는 게 귀찮다면, 신문지도 괜찮다. 일단, 아이의 손에 붓과 먹물이 있으니 한 시간은 끄떡없다. 난 이런 놀이를 할 때는 항상 어울리는 국악 동요나 클래식을 틀어주었다. 아이들이 의외로 “엄마, 내가 지금 이 음악에 어울리는 선을 그려볼게” 하고는 지휘하듯이 붓을 움직이는 시늉을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내 아이가 천재인줄 알고....
(감성 충만해서 벽지나 주위의 물건에도 먹물 작품을 남길 가능성이 있는 꼬마 피카소를 둔 집이라면, 인내심이 필요할 수 있다.)
★ 준비물-문구점에서 파는 먹물 한 통, 붓 몇 개, 화선지 몇 장, 신문지, 헌 옷이나 방수 앞치마
◆ 핸드페인팅 놀이
문구점에서 큰 종이를 여러 장 사서 발코니나 벽에 여러 장 붙여주고, 물감만 짜서 주면 놀이 준비 끝. 손 모양을 찍는 것만으로도 멋진 나비가 되고, 독수리도 만들 수 있다. 이때도 배경음악으로 신나는 동요를 틀어주면 아이들은 더 흥겨워진다. 비싼 퍼포먼스 미술학원이 우리 집으로 옮겨지는 순간!
★ 준비물-전지 몇 장, 물감, 헌 옷이나 앞치마.
◆ 케이크 꾸미기 놀이
아이 간식을 사면서 슈퍼마켓이나 근처 빵집에서 파는 카스테라, 생크림만 준비하면 된다. 생크림은 제과점에서 작은 용기에 덜어서 조금씩 판다. 생크림 사는 게 번거로우면, 집에 있는 떠먹는 요구르트도 괜찮다. 단, 좀 쉽게 흐르는 걸 감수해야 한다. 놀아주는 데 준비물이 복잡하면 잘 해주지 않게 되니까 집에 있는 재료로 놀아주는 게 제일 좋다.
케이크 위에 얹을 토핑은 알록달록 초콜릿도 좋고, 아이들이 먹는 동물 모양 젤리나 영양제도 괜찮다. 우유에 타먹는 다양한 씨리얼도 괜찮다. 아니면, 먹다가 묶어 놓은 과자도 나쁘지 않다. 카스테라 위에 생크림이나 요구르트를 바르는 것부터 아이를 시키면 된다. 숟가락으로 얹어주고 잘 펴 바르고, 그 위에 여러 가지 토핑으로 꾸미기 놀이를 하면 비싼 요리 교실이 필요없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소근육이 발달하게 되고, 미적(?) 감각도 키울 수 있는 거다.
케이크의 생명은 촛불 끄기. 아이 나이에 맞는 숫자 초가 있으면 더 근사하지만 생일 때 사용했던 초도 상관없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촛불 끄고, 케이크 자르기도 시켜본다.
이 때 은근히 수학 놀이 들어가도 괜찮다. 우리 몇 조각으로 잘라볼까? 와, 젤리랑 초콜릿이 모두 몇 개나 있나 세어볼까? 하나, 둘, 셋.....
★ 준비물-카스테라, 생크림 조금(떠먹는 요구르트도 가능), 쉽게 구하는 토핑(초콜릿, 젤리, 씨리얼 등)
◆ 메뉴판 놀이
엄마가 읽던 잡지책에서 아이가 원하는 음식 사진들을 가위로 맘껏 오리게 한다. 아이들은 일단 먹는 사진들을 좋아한다. 엄마가 체력이 좀 된다면, 음식 사진을 보면서 재료에 대해서 잠깐 얘기 나누면 더 효과적이다. 오린 사진들을 스케치북에 붙이고, 크레파스로 꾸며주고 글씨를 쓸 줄 알면 메뉴 이름도 적어주면 멋진 메뉴판이 완성된다. 잡지가 없다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마트 전단지에서 수박이나 과일 이미지 컷을 잘라서 오려서 스케치북에 커다란 카트를 그리게 하고, 이미지를 붙이는 마트 놀이를 하는 것도 재미있다.
★ 준비물-잡지책, 마트 전단지, 가위, 풀, 크레파스나 색연필
◆ 실내 사방치기
여자 아이들에 비해, 남자 아이들은 앉아서 꾸미고 붙이는 것보다 뛰고 움직이고 싶어 한다. 이런 아이들과 집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놀이는 우리 어릴 때 했던 사방치기. 가장 좋은 건, 넓은 운동장이나 공터에서 하는 거지만 마땅한 장소도 없고 날씨도 적당하지 않다.
‘사방치기’를 해보고 싶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마트나 문구점에서 ‘마스킹 테이프’를 사서 적당한 사방치기 판을 거실바닥에 붙여서 만들어주었더니 엄청 즐거워했다. 단지, 층간 소음이 우려된다면 아이들 놀이방 매트위에 진한 색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서 만들면 된다. 쉽게 붙고, 쉽게 떨어진다.
★ 준비물-마스킹 테이프, 놀이매트.
쉽게 얻어지는 행복은 없는 것 같다. 가끔씩은 엄마의 부지런함과 수고스러움이 내 아이의 감성지수를 높이고, 지루한 집안을 신나는 교육 놀이 환경으로 변신시켜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엄마도 아이도 즐거운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지원 < 교육 칼럼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