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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라도 괜찮아" 민지 할머니의 소원 <매거진 키즈맘>

입력 2015-03-31 09:52:01 수정 2015-04-01 09: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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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나는 세 가족, 민지, 진우, 그리고 할머니


서울 동작구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한 보, 한 보 따라 걷다 보면 진우, 민지(가명) 남매의 집이 보인다. ‘똑똑’ 하고 노크를 하니 회색 철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린다.

빼꼼히 얼굴을 내민 진우와 민지는 인사도 채 나누기 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요구르트를 내민다. 이들이 세상에 고마움을 전하는 방식이다.

글 김예랑

집이라는 단어에는 왜인지 모를 따뜻함이 묻어난다. 그곳에는 가족이 있고, 어머니의 따뜻한 밥이 있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올해 열한 살, 일곱 살이 된 진우와 민지는 하늘 아래 우리 집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마운 아이들이다.

함께 살고 있는 외할머니는 “집도 집이지만 사람이 감사하다”라고 말한다. 여느 또래 아이들보다 곰살맞은 진우는 타인의 방문에도 버선발로 마중을 나온다. 진우와의 인사가 끝나고 나서야 동생 민지가 고개를 내민다. 민지는 오빠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는다. 진우, 민지, 그리고 할머니는 1년여 전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서울가정위탁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새 보금자리를 얻게 됐다.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이 가족은 3평도 되지 않는 시멘트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동네의 빈 가게에서 생활했기에 발 뻗고 편히 누울 자리도 없었다. 난방 시설은 전무하고 늘 습기가 차서 맨 바닥 위에 전기장판을 놓고 살아야 했다. 세수라도 할라치면 골목에 있는 수도를 이용했다. 세 사람이 몸을 부대끼며 살기도 비좁아 생활 용품이나 옷가지들은 바닥에, 천장에 아무렇게나 두었다.

외할머니는 이 가정의 유일한 가장이다. 진우, 민지 남매의 아빠는 일찍이 연락이 끊기고 엄마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원래부터 넉넉지는 않았지만 할머니는 두 아이들을 맡으면서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했다.

형편이 더 기운 것은 할머니가 일을 하다 다리를 다치면서다. 인근 빌딩 청소를 하며 근근이 살아왔지만 갑작스런 다리 부상으로 ‘월급’ 받기가 힘들어졌다. 또 민지가 어린 탓에 고정적으로 출근해야 하는 ‘회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나 혼자서는 안 입고, 안 쓸 수 있죠. 그런데 아이들이 있으면 덜 먹고 덜 쓰고, 덜 입는 것이 불가능해요. 발버둥 칠수록 비참해졌죠.”

생활고에 시달리다 인근 동사무소에 찾아가 “어떻게 좀 살게 해달라”고 사정하길 여러 번. 어느 날 꿈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민지네 가족 사연을 알게 된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서울가정위탁지원센터가 이들을 지원하게 된 것. 강나현 선생님(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도움으로 민지네는 가정위탁아동 전세자금대출을 받고 현재의 집으로 이사하게 됐다.

이사한 집은 참 따뜻하다. 내부에 화장실도 구비돼 있다. 무엇보다 널찍한 민지, 진우의 방이 있다. 따뜻한 햇살이 가득히 흐르는 방에서 두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한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민지의 작품들이 벽 곳곳에 걸려 있다. 옷가지들은 빈 페트병에 예쁘게 접혀 차곡차곡 쌓여 있다. 할머니의 깔끔한 면모가 돋보이는 부분.

그런데 유일하게 책상만 정리되지 않은 채다. “일부러 책상은 치우지 않아요.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게 그냥 두죠. 진우가 구구단을 못 외웠었는데 벽에 구구단을 붙여 놓으니 어느새 줄줄 외우고 있더라고요.”

할머니의 교육관은 올곧다. 아이들은 누가 시켜도 관심이 없으면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고 여겨 최대한 흥미를 유발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이끈다는 것. 할머니는 스스로 ‘못 배웠’지만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려 애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는 진우의 지난 학기 성적표를 펼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사실 점수는 좋지 않죠? 여기 보세요. 진우가 이렇게 착하다니까요. 뭐 꼴찌 해도 괜찮아요, 마음이 바로 선 사람이 돼야 하죠.” 할머니가 가리킨 성적표에는 담임선생님의 한 마디가 써있었다. ‘학급에 소외된 친구들에게도 먼저 말을 걸어주는 착한 마음을 지님’이라고.

할머니는 재단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다.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살게 됐어요. 더 이상 배고프지 않고 따뜻합니다. 참 감사하죠. 더 열심히 살아야지, 더 잘 가르쳐야지, 하고 매일 생각해요. 진우, 민지도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고 컸으니 남에게 베풀 줄 아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키즈맘은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에서 제정한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준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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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31 09:52:01 수정 2015-04-01 09: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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