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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 사생활] 출산 후 퇴원까지…엄마가 된다는건 굴욕의 연속

입력 2015-11-09 10:33:01 수정 2015-11-09 10: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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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작은 도전들이 쌓여 역사가 된다.

수술 후 병실로 옮겨지는 순간부터 새로운 도전은 또 시작되었다.

첫 번째 위대한 도전은 ‘이동침대에서 병실 침대로 몸 옮기기’.

몇 번인가 전신마취를 요하는 수술을 해보았지만 언제나 이것은 처음 마주하는 격정적인 도전이다. 내가 지금 지렛대 찾는 아르키메데스도 아니고 내 몸뚱아리 하나 옮기기가 지구를 옮기는 것보다 괴롭다.

겨우겨우 침대로 몸을 옮기고 좀 쉬려니 간호사가 들어와 두 번째 미션을 주어준다.

이번엔 ‘모로 눕기’.

‘지금 생살을 째고 자궁을 한번 들었다 놨는데 모로 돌아누구라구욧?!’

하고 마음 깊이 외쳤지만 그래야 장이 유착이 안된다는 말에 두 번 수술하게 될까 무서워 안간힘을 써 미션을 수행했다. 그런데 이번엔 30분마다 반대로 돌아누우란다. 마음으로는 죄없는 간호사에게 온갖 원망을 담아 한마디 건네고 싶건만 지금 내가 그럴 정신이 아니다. 안 돌아누웠다가는 장이 들러붙는다는 협박에 내가 지금 복통핑계를 댈 수가 없다.

하라면 해야지. 애를 낳은 엄마에게 선택권이란 임신한 순간부터 없는 것이었다.

이럴 때 30분은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가는지. 진통제를 맞아가며 남편 얼굴 좀 바라보고 있자면 시계는 금새 30분을 또 정각을 가르키고 있었다.

내 몸뚱이 하나가 이리도 가누기 힘들어서야. 반대로 몸을 굴릴 때마다 다음 회차엔 더 나아질거란 생각으로 몸을 굴렸다.

그런데 그렇게 참아온 나에게 뭐? 내일 아침엔 일어나 앉아보라고?! 심지어 걸어보라고?!!!

‘하, 일어나라면 일어나야지.’

애 처음 낳아본 여자는 그저 간호사님이 까라면 까는거다. 다음날 나는 진짜로 새벽 혼자 일어나 앉아 있었다. 세상이 핑- 돌았다. 때마침 상태를 확인하려 들어온 수간호사님의 눈이 땡그래졌다.

“어머, 진짜로 앉아있네요?”

‘아, 앉으라면서요.’

지금이라면 아줌마의 주접으로 한마디 했겠지만 그때는 너무 어지럽고 경황이 없어서 그런 말할 정신도 없었다. 간호사님은 나에게 아주 잘하고 있다며 그대로 나가셨다. 몇 시간 후 혼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때마침 수액을 갈러 들어온 다른 간호사님의 눈이 땡그래졌다.

“어머, 일어서셨네요?”

'일어서라면서요.'

난 그날 오후 소변줄을 꽂은 채 인류의 위대한 진화의 첫걸음, 직립보행을 몸소 해냈다. 그리고 며칠 간 소변줄을 달고 병원복도를 이리저리 서성이며 회복을 기다리는 좀비 한 마리(나)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좀비 손에는 모유촉진차도 한 잔씩 들려있었다고 한다.

임신과 출산을 겪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처녀 적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다채롭게 일어난다.

제대로 몸을 못 가누는 날 위해 남편은 세 시간마다 오로가 넘쳐흐르는 패드를 갈아줘야했고 소변주머니를 비워냈으며 빨대를 꼽아 물을 먹여주고 수건에 물을 적셔 내 몸을 닦아주며 열을 내려주었다. 그렇게 딸을 가지고 싶어하더니 자기만한 딸이 생긴 기분이라고 했다.

‘사실 몸무게는 내가 더 나가’ 라고 마음 속으로만 말했다.

다리를 벌리고 패드를 갈고 있는 남편을 내려보자니 진짜 부부가 된 기분이었다. 20년을 넘게 살아온 친정아빠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을 고작 1년반 알아온 이 남자에게는 보여줄 수 있는 아이러니라니. 부부의 인연이란 참으로 신기하다.

나는 아래 피부가 예민한 편이라 평소에도 면생리대를 애용하는데 계속 나오는 오로 때문에 일회용 패드를 두 장이나 이어붙여서 하루종일 대고 있자니 아래가 짓무르고 쓰라려 남편이 틈이 나면 패드를 아래 깔아놓고 부채질을 해주었다.

역시나 그 때도 패드를 갈던 중이었다.

불쑥 들어온 그 얼굴은 병원에서 나누어 준 팜플렛에서 본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그 이름도 휘황찬란한 ‘모유수유전문가’. 그 어떤 모유수유에 대한 고민도 해결해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의 그녀는 그렇게 불쑥 우리의 병실을 찾았다.

당황한 남편은 “저 지금 패드 교체 중이라 조금 후에 들어오시면 안될까요?” 라고 물었지만 “아이 뭐, 가슴도 만질건데” 라며 그녀는 쿨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내 앞섬을 풀고 유륜을 쭈물쭈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쯤이야 수백번, 수천번도 보아왔을 그녀에게 남편의 당황한 기색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수유할 준비를 하고 있네요. 아직 유륜이 딱딱하니까 세 시간마다 3분씩 마사지를 해줘요.”

쿨한 조언을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질 동안 남편은 내 발 아래에서 여전히 패드를 교체중인 채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녀가 떠나고 우리는 눈을 마주쳤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르고 이해한다는 그의 눈빛에 나는 한마디 보탰다.

“여보, 엄마가 된다는 건 참 처녀 적엔 상상도 못할 굴욕적인 일들의 연속 같아.”

웃음이 났지만 아랫배가 너무 땡겨 겨우 참았다.

그런 나를 남편은 꼭 안아주었다.

물론 세 시간마다 3분씩 유륜을 마사지 해주었음은 물론이다.

아기를 낳아보기 전까지 내 유륜을 그렇게 성실하게 만져본 적이 있던가 싶었다. 엄마들은 다 알겠지만 그 이후에 본격적인 수유를 시작하면서 내 유두는 더 상상도 못할 고통을 겪었지만 말이다.

병실에서 모유수유를 하러 오라는 호출을 받으면 어깨에 거대한 수유쿠션을 걸치고 병실 밖으로 나선다. 그 모양새가 꼭 구조대원이 어깨에 튜브를 걸치고 늠름하게 걸어가는 모습같다. 물론 엄마들은 차라리 좀비에 더 가까운 몰골로 엉거주춤하게 걸어가는 건 좀 다르지만 말이다.

모유수유실에 들어서서 내가 왔음을 알리면 내 자식이라는 발찌를 찬 아이가 내 품에 온다. 그 곳에서 나는 신생아도 저마다 다른 생김새가 있고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엄마들은 자궁이 수축되는 아픔에 “아야, 아야.”소리를 내가며 자신의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유두보호기같은 전문적인 장비를 꺼내는 엄마도 있고 대부분 수유쿠션을 무릎 위에 깔고 수유를 시작한다. 젖이 잘 안 나오는 걸 미안해하는 엄마 옆에서 나도 미안해해야하나 싶었지만 내가 젖이 적은지 많은지도 모르는 터에 무턱대고 사과부터 할 필요는 없을 것같아서 일단 가만히 있었다.

어떤 엄마는 오늘 태어난 아이에게 무슨 구연동화강사같은 전문적인 톤으로 노래를 불러주며 수유를 했다. 나는 원체 그런걸 해본 적이 없던 사람이가 조용히 아이에게 말했다.

“넌 저걸 잘 들어.”

물론 나도 내 아이를 사랑하고 지금이라면 더 닭살돋게 해줄 수도 있겠지만 그 땐 정말 아이를 처음 다뤄보는터라 그 모든게 너무 어색하고 낯설었다. 둘째 가진 엄마들은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기에 해탈한 표정으로 수유를 하고 떠나지만 첫째를 이제 막 낳은 엄마들은 오히려 내 애를 어쩔 줄 몰라하며 간호사님들에게 얼른 맡기곤 했다.

모유수유실에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젖양이 적어서 고민이라고 말하는 엄마들은 보고 나도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입원할 때 챙겨온 스틸티(모유촉진차)를 연거푸 마셨는데 정확히 사흘 째 되던 날 젖몸살이 찾아왔다. 가슴이 불어나서 자꾸만 딱딱해지고 너무 아파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고 찬수건으로 가슴에 대고 조금 짜내어도 보았지만 도통 편안해지질 않았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이 고통이 13개월 단유하는 그 순간까지도 수시로 나를 괴롭힐 줄은.. 이 모든게 스틸티 때문은 아닐 것이고 내가 원래 젖이 많을 체질이었겠지만 아이허브 장바구니에 스틸티를 담으려 클릭하던 그 때의 내 손목가지를 매우 치고 싶다.

뿅갹이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퇴원하던 날 우리는 어느 때보다 긴장해있었다. 남편은 전 날 단단히 장착시킨 신생아용 카시트에 뿅갹이를 앉히고 조심스레 시동을 걸었다. 신생아실에서 남처럼 잠깐씩만 뿅갹이의 얼굴을 볼 수밖에 없었던 남편에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뿅갹이의 안전이 모두 달려 있는 것이다. 남편도 아이도 지금까지 얼굴 본 시간 합쳐봐야 10분도 안 되는 남남이다. 물론 남남이지만 남남이어서는 안 되는 아빠와 자식이기에 남편의 운전대를 잡은 손은 그 어느 때보다 떨렸다.

“뿅..뿅갹이 뒤에 타고 있어..?”

긴장한 남편의 떨림이 뒷좌석까지 전해왔다.

“뿅갹이 뒤에 태우고 운전하려니까 엄청 떨리지?”

“으.. 보닛에 계란 올리고 운전하는 기분이야.”

“그래, 지금 마인드 좋네. 보닛 위에 계란을 올렸다 생각하고 출발해. 계란이 떨어지면 너도 죽는 거야.”

이럴 때만큼은 만난 지 5분 된 아들보다 낯선 아내지만 어쨌거나 나의 협박과 함께 친정으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순조로이 올림픽대로에 진입했고 도로에서 늘상 마주하는 비매너 운전자를 향해 낮게 읊조렸다.

“81oㅇ 너 지금 내가 뿅갹이만 안태웠어도 넌.. 아오. 나중에 뿅갹이 없을 때 거리에서 다시 한 번 만나자. 내가 너 외웠어. 81oo..”

그렇게 엉금엉금 친정집에 도착했다.

지금의 나라면 임신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산후조리원 투어부터 다니고 마사지까지 추가결제해서 등록했을 터이지만 그땐 왜 그랬는지 굳이 산후조리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바로 친정으로 가서 몸조리를 했다.

산후조리원을 안 가기로 한 나는 사촌언니-무통주사의 진리를 설파하셨던 바로 그 선각자 님-의 강력한 조언으로 집으로 오시는 산후도우미를 신청했는데 그냥 친정엄마랑 둘이 어떻게 한 번 해보겠다던 용감했던 때와 달리 막상 예약하고 보니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안정될 수가 없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 분이 없이 그냥 친정엄마만 믿었다가는 우는 뿅갹이를 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집단멘붕에 빠져 나는 친정엄마에게 으르렁대는 천하의 못된 딸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초특급 VVIP이신 그 분은 오늘이 아닌 내일부터 오신다.

젠장, 이 순간이 올 거란 걸 왜 예약했을 땐 생각을 못했던 거지. 젠장, 젠장! 미처 그 날짜 계산까지 생각하지 못한 내 자신한테 욕이 절로 나왔다.

이제 겨우 태어난 지 5박6일 된 핏덩이와 나. 우리 둘은 이 밤을 온전히 보내야한다. 덩그러니 남겨진 초보엄마와 태지가 덕지덕지 붙은 팔뚝만한 생명체가 이 밤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도 내가 이 아이를 죽이지 않고 내일 아침 조리사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제왕절개 수술 후의 첫걸음보다 더 살 떨리는 일이었다.

최고로 긴장했던 그 밤은 1분 1분 매우 더디고 피곤하게 지나갔다. 몇 번인가 선잠을 자고 깨기를 반복하고 우는 아이를 안고 되는대로 기저귀를 갈고 젖을 물렸다. 어쨌거나 죽이지만 말고 이 밤을 버텨내자는 생각뿐이었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그 콧구멍에 내 손가락을 갖다 대어 숨은 쉬고 있는지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달밤에 자꾸만 육아 책이나 뉴스에서 접했던 영아돌연사이야기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먼동이 트고 서서히 아침이 밝아왔다. 세상을 볼 수 있는 3일이 주어진다면 밤이 낮으로 바뀌는 기적을 보겠다던 헬렌 켈러가 말하던 기적을 나는 보았다. 지금도 밤중수유를 끊지못한 혹은 잠에 무척 예민한 아이를 둔 엄마들은 그 기적이 늘 일상일 것이다. 오히려 밤에 쭉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일상이 그들에겐 기적일 것이다.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아침은 오듯 어김없이 아침은 밝아왔고 낯선 내 아이는 아직 살아있었다.

아침이 오고 그녀의 첫 출근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나를 구원해줄 산후조리사님과의 첫 인사는 일상적인 ‘안녕하세요?’도 대기실에서 지겹도록 듣던 ‘아파요?’도 아닌 깨달음 담긴 그 것이었다.

“그래도 오늘의 해는 뜨는군요.”

조리사님을 처음 마주한 내 입 꼬리가 가늘게 떨렸다.




< 글 심효진 >
31개월 남아와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주부입니다.
육아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를 에세이로 담고자 합니다.
입력 2015-11-09 10:33:01 수정 2015-11-09 10:33:01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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