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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 사생활] Solitude maketh mom - 고독이 행복한 엄마를 만든다

입력 2015-12-14 09:51:00 수정 2015-12-14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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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셋째 아이가 출산 후 백일을 갓 넘긴 친한 언니는 자신의 SNS에 이렇게 썼다.

‘삘받으면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첫째 덕분에 귀에서는 피가 날 것 같고 에너지가 넘쳐서 움직이면 사고만 치는 둘째 덕에 소리지르느라 목에서 피가 날 것 같다.’

대학생 시절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누구라도 만날까 싶어서 지인이 불러 준 술자리에 동석했다가 처음 보는 별로인 남자에게 여자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익과 같다며 너도 이제 곧 꺽일 것이라는 어이없는 소리를 듣고 돌아온 적이 있다. '내가 앞으로 아무리 외로워도 차라리 클럽에 가서 몸을 흔들지언정 이런 소모적인 만남을 하나봐라'하며 다짐했었다.

맞벌이 부모님 사이에서 외동으로 자라온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었다. 친구를 좋아하고 사람만나기를 즐겼다. 어딜가서도 누굴만나도 쉽게 친해지고 친구를 잘 만들 것같다는 말을 어제도 들었다. 남자친구가 없으면 허전하고 누구하고라도 만나고 싶어했던 20대의 어느날 나는 스스로가 관계중독인가 싶어서 되돌아 본 적이 있다. 관계중독이란 사람과의 관계 감정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행동과 상태를 말한다. 이런 증상은 내가 더 좋아하는 나쁜 남자를 만날 때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모든 건 고시준비 탓이라고 돌리며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결심한 후에 내 마음에는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 혼자 서점에 가서 책을 보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길을 걷고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며 나 자신을 더 돌아보고 나를 알아가게 됐다.

관계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들을 가르켜 보들레르는 이렇게 썼다.

나는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데, 그 장광설의 토로가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침묵과 명상에서 끌어내는 것과 맞먹는 쾌락을 안겨주고 있음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그들을 경멸한다. <파리의 우울>

나는 내가 비슷한 증상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경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에게 고독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유해보고 싶다.

고독의 시간이 가장 절실한 것은 어찌보면 엄마들이다. 하루종일 울어대는 작은 아이와 끊임없이 요구사항을 늘어놓는 큰 아이로부터 벗어나 편하게 변이라도 볼 수 있는 진정한 고독의 시간말이다. 하루에 5분이어도 좋고 가끔은 한두시간에 육박하는 호사라도 누려야한다.



뿅갹이를 낳고 친정에서 몸조리를 하던 때에 수유쿠션을 두르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밖을 내다 보았다. 창 밖으로 펼쳐진 별거 없을 아파트 단지의 산책로가 그렇게 반짝거려보였다.

“으, 엄마! 나도 저 밖에 있는 산책로를 좀 힘차게 걸어보고 싶어요!”

나도 나의 엄마에게 응석을 좀 부려보았다. 결국 참지못하고 출산한지 채 한달도 안되서 꽁꽁 싸매고 집 주변을 걷기도 했다. 내리쬐는 햇빛과 길가의 나무들마저 새삼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나 싶었다. 산후조리가 끝난 후에도 아이 때문에 외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나는 남편에게 명동같은 번화한 곳에 가서 어깨치이며 좀 걸어보고 싶다고 볼 멘 소리를 해댔다. 관광객만 그득해서 옛정취는 이미 사라졌다고 폄하했던 명동의 거리조차 아줌마에게는 이생에선 갈 수 없을 별천지로 느껴졌다. 아니 사실 어디라도 좋았다. 그 때의 나는 내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 곳이 화장실 변기 위여도 행복했다. 잠도 못자고 뇌를 갉아먹히는 육아를 지속하면서 나는 조용히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아이와 떨어질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날 때마다 적어나갔다.

-카페에 가서 다리꼬고 패션잡지를 들여다 보기

-번화가에서 어깨 치이며 걷기

-한껏 예쁘게 차려입고 친구들과 만나기

-SPA 옷가게에 들어가서 옷구경하기

-아기 의자따위 없는 허름한 맛집에 가서 맛을 음미하며 먹기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집에서 내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깨기

-전세계 어디라도 좋으니 혼자 여행가기


대충 이런 것들을 적어놓고 아이를 품에 안고 눈을 감은채 버킷리스트에 있는 일들을 하고 있는 상상을 했다. 아이가 없는 누군가에게는 매일 겪는 일상일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이 핏덩이를 두고 나가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수유를 하고 친정아빠에게 뿅갹이를 부탁한 채 쪽잠을 자거나 잠깐 나가서 네일샵에 가봤던 적이 있다. 물론 얼마 안되서 아이가 울고 불고 난리라는 전화가 와서 황급히 복귀했지만 말이다. 한 생명이 나를 이토록 온전히 사랑하고 의지한다는 것은 왜 이토록 고달픈 일이란 말인가.

다행히 남편이 육아에 적응이 되고 뿅갹이도 아빠를 잘 따르게 되면서 나에게도 기적은 찾아왔고 나는 버킷리스트에 있던 모든 일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더니 뜬구름 잡는다고만 했던 그 소리가 완전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었나보다.

특히 남편이 아이와 시댁에 가고 나는 3박 5일 방콕으로 떠났을 때, 몇 번 가봐서 익숙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흥분되는 방콕행은 처음이었다. 물론 뒤에서 '난 너같은 며느리라면 딱 별로야'라며 힐난을 아끼지 않은 친정엄마의 말도 흘려듣고 휴대폰 전원끄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는 누가 물어본대도 지난 2년동안 그럴 가치가 있을 만큼 충분히 고생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으니까. 때로는 얼굴이 좀 두꺼워야 내가 편한 순간이 있다. 오히려 그 후에 남편과 아이 사이는 더 돈독해졌고 남편의 육아자신감은 올라갔으며 며느리 눈치 안보고 손자를 자신의 방식대로 4박5일을 즐기신 시부모님도 즐거워하셨음은 물론이다. 나를 어떤 며느리라고 평가하셨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고독의 시간동안 아이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반추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아이는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여행 이후 육아의 질이 자연스럽게 올라갔음은 물론이다.

아이와 하루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다보면 마더테레사나 보살님, 아니 예수님이라도 화가 날 것이다. 나 역시 이유식을 안먹고 계속 뱉어내면서 숟가락을 쥐고 흔드는 뿅갹이에게 머리끝까지 화가나 쥐고 있던 숟가락을 뺐어 벽으로 던져버린 적이 있다. “그냥 먹지마!!!!”라는 고함도 함께.

그러고 나면 또 안쓰러운 마음에 씩씩거리던 마음을 진정하고 아이에게 미안하다면 꼭 안아주는 일을 반복하곤 하는 것이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육아의 딜레마다. 그토록 사랑스러운 아이도 휴식이 없이 돌보다 보면 사랑을 퍼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엄마는 이내 지치고 본인의 밑바닥을 드러낸 채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엄마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당신이 유독 육아의 인내심이 모자라거나 나쁜 엄마여서가 아니라 당신에게는 단지 휴식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 사이토 다카시는 ‘주변사람들과 잘 사귀면서도 혼자일 때 나 자신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른이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고독의 상태’라고 했다. 엄마도 어른이기에 다시 사랑을 채워넣을 수 있는 온전한 나 자신과의 데이트가 필요하다.

한 육아관련 케이블 방송에서 그룹 주얼리 출신의 이지현 씨가 애 둘 독박육아에 찌들어 있다가 잠심 자유시간이 주어지자 그렇게 바라왔던 자유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운전석에 앉아 아이들 걱정으로 안절부절 못한 적이 있다.

노명우는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의 특징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엄마들은 타의에 의해서 고독을 즐기는 훈련을 박탈당했고 결국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에 대한 것조차 잊어버린 채 육아기계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엄마들에게는 고독의 시간이 절실하다. 아이의 울음소리로부터 떨어져 혼자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산책을 해야 한다. 나 자신을 찾아야 자존감이 올라가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껴야 아이에게도 그 기운을 전해줄 수 있다.

친정부모님에게 혹은 시부모님에게 가끔은, 쓸모없어 보이는 남편의 활용처를 일깨우는 용도로라도 염치 불구하고 애를 내맡기고 반나절이라도 온전히 나를 위해 써보는 시간을 꼭 가져보자. 혼자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도저히 무얼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너무 절망하지 말 것. 그건 당신 탓이 아니다. 멋이 없어서도 아니다. 고독을 즐기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데 당신은 육아로 인해 그 훈련의 기회가 오랫동안 없었을 뿐이다. 아이없이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떠는 것부터 시작해서 집주변을 산책해보고 공원을 다녀보고 영화를 보면서 그 훈련을 시작하자. 특별한 것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 다 필요없고 그냥 잠을 자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에 기대어 휴식하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지친 영혼은 상당한 위로를 받을 것이다.

좋은 엄마는 고독의 시간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심효진 <육아 칼럼니스트>
남편과 아들,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살림과 꽃꽂이를 좋아하고 기록을 할 때 정신이 가지런해진다고 믿는 5년차 주부. 글쓰는게 제일 꾸준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틈틈이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있다.
입력 2015-12-14 09:51:00 수정 2015-12-14 09:51:00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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