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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 사생활] 오지랖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입력 2015-12-21 09:44:01 수정 2015-12-21 09: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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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큼 오지랖이 심하고 또 그에 관대한 나라가 있을까.

결혼은 언제하냐고 성화더니 결혼하고 나니 애는 언제 가지냐는 질문이 시작된다. 결혼한지 몇년이 지나도 애가 안생기면 혹시 난임은 아니냐며 알아서 먼저 동정의 눈빛을 보내온다.

애 낳았다고 끝이 아니다. 하나 낳고 나면 얼른 둘째 가지라고 키울 때 같이 키워야 편하다며 한국의 소셜클락은 쉴새없이 째깍이며 우리의 목을 조여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절에 친척들이 만나면 묻는 근황질문 때문에 명절 스트레스가 넘치고는 하니까 말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유명한 짤 중에는 명절에 만난 친척 어른의 공격에 대처하는 법이 나와있을 정도다.

친척이 20대에게 “너 학점은 잘 나오니? 취업은 할 수 있겠니? 애인은 있고?” 하고 선제 공격을 하거든 “노후대비는 되어 있으시고요? 집값은 좀 오르셨어요? 아, 아직 전세셨나?” 하고 대처하라고 말이다. 오지랖에는 오지랖으로 대응하는 것만이 최선인 것인가.

이 오지랖에선 애엄마도 예외일 수 없다.

나 역시 첫째를 낳고 낯선 육아생활과 모유수유에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을 무렵 명절에 만난 친척어른에게 둘째 얼른 낳으라는 소리에 하마터면 내 속에 있던 못된 말이 튀어 나올 뻔 했다.

'저희 애 한 시간이라도 봐준 적 있으세요?'

꼭 별 도움도 안 주는 사람들이 남의 소리는 더 쉽게 한다. 이제는 아이가 30개월을 훌쩍 넘기고 잘 걷고 말귀를 알아들으니 한결 마음이 유해져 그런 말을 들어도 웃어 넘길 수 있지만 그 때의 나는 신생아 육아라는 깊은 동굴 속에 홀로 던져져 있었고 둘째 계획을 타인에게서 종용받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입덧이 유독 심해서 입덧 기간에 매일 쓸개즙까지 토해내던 친구는 둘째도 아들을 낳았다. 자기가 혹시 셋째가 가지고 싶다고 하거든 뺨을 때려달라던 친구였다. 이 친구에게 사람들은 아들만 둘이니 이제 딸 얼른 낳아야겠다고 말한다고 한다. 오지랖의 대상이 되어야 할 곳은 당신의 자궁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오지랖이 침범하지 않는 영역이란 진정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요즘 젊은 세대에게 아이 낳기란 정말 큰 결심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지인은 셋 다 어린이집을 보내고 그 외에 아무런 과외활동을 하지 않음에도 아이의 어린이집 추가비용으로만 한달에 딱 백만원이 들어간다고 했다. 거기에 아이들 식비에 옷 사입히고 가끔 놀러가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이들의 기본적인 의식주에만 들어가는 것이다. 88만원 세대가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있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장하고 또 장하다.

오지랖의 일화는 넘쳐난다. 언젠가 길에서 마주친 할머니는 내게 어디가냐고 묻더니 배를 들여다 보며 둘째를 가졌냐고 물었다.

“아니요, 지금 운동가는 길이에요.”

“응, 좀 빼야겠네.”

아니 세상에, 이름도 모르는 할머니에게 체지방까지 관리받아야 하다니.

이 모든 것들은 어쩌면 진정으로 나를 걱정해서 해주는 소리일 수도 있고 본심은 그런게 아닌데 말주변이 없어서 자칫 상처를 주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상황이 열악할수록 그런 말들은 유독 비수가 되어 꽂히고 만다.

앞으로 애를 키우면서 우리가 마주해야할 오지랖들은 끝도 없을 것이다. 아이가 잘 생기거나 예쁜지, 키가 작지 않은지, 너무 살찌거나 마르지 않았는지, 기저귀는 뗐는지, 말은 빨리 하는지,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부모는 뭐하는지, 집은 몇 평인지, 공부는 잘하는지, 영어는 좀 하는지, 엄마의 정보력은 뛰어난지.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나면 나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에서 다들 사교육을 시키는 바람에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 애만 너무 뒤쳐지지 않을까 싶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사교육 시장에 적금을 붓게 되기도 한다.

이에 앞서서 엄마들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 오지랖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우선은 무방비하게 공격을 당했을 때 자연스레 튕겨낼 수 있는 강철 고막이 필요하다.

나의 사촌언니는 얼른 둘째 낳으라는 말에 “네~ 얼른 낳아야죠.” 라고 대답한다고 했다. 연년생으로 둘째를 낳고나니 셋째까지 낳으라는 말이 시작되자 여전히 똑같이 대답하고 있다고 했다.

“뉘에 뉘에~ 생기면 낳을게요.”

그 말을 하던 언니의 표정은 열반에 이른 보살의 표정이다. 도저히 그렇게는 못넘기겠다면 본인만의 적절한 대처메뉴얼을 준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노후 준비는 잘 하셨어요?”와 같은. 물론 우락부락하게 얼굴을 붉히는 어른과 마주하는 불편한 상황이 싫다면 진심어리고 공손한 표정도 함께 연습해야할 것이지만. 여기에 주변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육아주관까지 바로 세운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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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 <육아 칼럼리스트>
남편과 아들,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살림과 꽃꽂이를 좋아하고 기록을 할 때 정신이 가지런해진다고 믿는 5년차 주부. 글쓰는게 제일 꾸준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틈틈이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있다.
입력 2015-12-21 09:44:01 수정 2015-12-21 09:44:01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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