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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살림과 육아의 굴레서 벗어날 수 없다면 즐겨라

입력 2016-01-07 09:52:00 수정 2016-01-07 17: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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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이는 내 옆에서 자고 있다. 어제부터 열이 39도까지 오르기 시작해서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고 나와 하루종일 함께하는 중이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후에 늘 달고 살던 감기였는데 요 두어달 용케 감기에 안걸리고 잘 버티다 싶었다. 얼마전 성탄전야제를 치르고 마침내 뿅갹이는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이 될 열감기를 치르고 있었다.

하루종일 집에 같이 있다가 낮잠을 좀 재울까하고 산책가자고 꼬셨다. 경비 아저씨가 나무에 물주는 걸 한참 구경하고 흉내내보기도 하고 유모차에 타네, 안타네 실갱이를 하다가 결국 태워서 좀 밀어주니 잠에 들었다. 곧바로 동네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에 들려 챙겨온 노트북을 꺼내들고 자리에 앉았다. 아,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오늘 나는 뿅갹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침에 일어나서 우유를 일단 데워서 대령하고, 고장난 케이블 티비를 수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하고, 고양이 털을 빗기고, 요리를 해서 뿅갹이와 아점을 먹고, 틈틈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캐롤을 불러주고, 변신 놀이를 해주었다. 이 모든 것을 다 했는데 아직 오후 3시 19분이다. 이 곳에서 칼럼을 쓰다가 아이가 깨서 집에 돌아가면 걸레질을 하고 저녁밥을 차리고, 집 정리를 마저하고, 기타 아이가 요구하는 여러가지 것들을 해주어야한다. 오늘은 초미세먼지가 심하다고 하니 보글보글 미역국을 끓여야겠다.

나의 일상은 결고 특별한 것이 아니다. 주부라면 누구나 겪고 있을 일상 그 자체다. 매일매일 쓸고 닦고 정리하고. 새로운 메뉴를 구상해서 밥상을 차려낸다. 대학시절, 친구의 어머니는 말했다. 하면 티 안나고, 안하면 티 나는 것이 집안일이라고. 어느덧 주부 5년차에 접어들고 있고 일상이 반복될 때마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혼자 되새기고는 한다.

물론 가사가 혼자만의 일은 아니다. 남편도 함께 가사를 하지만 남편은 밖에 있는 시간이 많고 나는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주로 가사는 나의 몫이고 남편은 보조라고 여기고 있다. 남편은 가끔 고양이의 똥을 치우거나 설거지를 하곤 한다. 아침잠이 많은 나를 배려해서 뿅갹이의 아침을 차려주고 준비시켜서 등원을 시켜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매주하는 분리수거만큼은 꼭 함께한다. 설거지를 하고 난 이후에는 “여보, 내가 설거지도 싹하고 수채통 비우고 음식물쓰레기까지 버렸는데 봤어??” 라며 메시지가 온다.

“응! 너무 깔끔해져서 기분이 정말 좋았어! 당신 최고야!!”

일터에서 칭찬을 기대하며 콧구멍을 벌름거릴 남편의 모습이 상상되서 한껏 칭찬의 말을 늘어놓는다. 왜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들은 그대로 인지 주변에 튄 기름자국들과 고인 물은 보이지 않는지 묻지 않는다.

남편과 살기 전엔 내가 관리해야할 영역은 내 방 뿐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내가 관리해야할 영역이 온 집안으로 확장되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이 집의 베란다에 결로로 핀 곰팡이 하나까지 관리해야할 사람은 나인 것이다. 나에게는 미루다보면 언젠가는 정리해줄 ‘엄마’가 없다. 친정엄마는 따로 살고 있고 이 집에서는 내가 ‘엄마’다. 그게 이토록 고달플수가 없다. 자리에는 언제나 책임이 뒤따른다. 집안일은 대체 매일 매일 반복되는 것도 모자라 계절별로 또 챙겨야할 게 왜이리도 많단 말인가.

아니 그 마저도 괜찮다. 아이가 생긴 이후에 늘 하는 생각은 아이가 없었을 때 살림에 지금 노력의 절반만 들였어도 집이 호텔 수준으로 깨끗했을거란 것이다. 아이들이란 어마무시한 존재여서 내가 두 시간동안 집정리를 해놓으면 그 모든 것을 이전 상태로 돌려놓는데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등너머로 아이의 방에서 우르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주워담아야할 장난감들이 바닥에 흩어지는 소리다. 정확히 4분전쯤 정리했을 것이다. 아이의 놀이매트는 정말이지 수천번 닦았다. 천 번을 닦아야 엄마가 된다면 나는 그 엄마 서너번이고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살림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털! 고양이의 털! 털!털!정말이지 징글징글한 그 놈의 털이다. 화이트페르시안 장모종인 우리집 고양이는 정말이지 털을 뿜어내다 못해 그 털을 모으면 하루에 작은 고양이 한마리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을 지경이다. 털이 새하얘서 그 웅크린 모습이 우유 한 잔 같다고 이름도 ‘우유’라고 지었다. 그 새하얀 털은 온 옷가지에서 커튼, 밥상 위까지 정말 모든 곳에 존재한다. 아무리 쓸고 닦아도 돌아보면 집 안에 털이 굴러다니고 있다. 남편과 아이를 두고 혼자 방콕에 갔을 때도 호텔에 도착해서 캐리어를 여니 그 안에 우리집 고양이의 털이 들어 있었다. 네가 뭔데 내 애보다 더 끈질기냐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우리집 고양이 우유의 외모는 정말 도도하고 고상하다. 그 몸짓 하나하나가 그렇게 우아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외모에 대한 대가는 정말 어마무시하다. 너 덕분에 내가 차라리 집안일을 열심히 해서 집이 더 깨끗한 것 같다고 자조하고는 한다. 요즘 자꾸 강아지도 한 마리 더 키우자는 은근한 신호를 보내오는 남편과 뿅갹이에게 눈을 흘기며 코웃음 쳤다. 이쁜건 니들 몫이고 뒤치닥거리는 다 내가 하라고?!

주부의 연차가 쌓일수록 나름 집안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노하우가 늘어간다. 밥이나 국을 한 번 하면 한숨 식혀서 소분해 냉동실에 얼려둔다든가, 최소한의 조리도구를 사용해서 여러가지 밑반찬을 만든다든가, 동선이 가장 효율적일 수 있도록 집안 가구나 소품들을 배치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날씨가 좋으면 무조건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간다. 아이가 집 안에 오래 머물수록 집은 더 초토화가 된다. 원인을 제거하면 살림거리도 줄어든다. 그러니 미세먼지 가득한 날과 너무 덥고 추운 날은 자연스레 살림거리도 늘어난다. 나가면 돈이 들고 집에 있으면 살림거리가 느는 무한궤도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

집안일의 부담을 줄이는 법은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조금만 검색해도 프로주부들이 알려주는 기상천외한 방법들에 내가 왜 지금까지 이걸 몰랐을까 무릎을 탁치게 만든다. 그런 류의 책을 돈주고 사서 본다고 남편은 비웃었지만 나는 그 중에서 서너가지 방법만 건져도 남은 나의 주부인생에 기가막힌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란 생각으로 정독했다. 실제로 지금도 나는 그 책들을 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대단한 문학작품이건 실용서적이건 나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그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거니까.

물리적인 살림의 양을 줄이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부담을 줄이려는 것 역시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뿅갹이도 여느 아이들처럼 온 몸으로 음식을 먹고 뱉고 던지고 그 위에서 헤엄쳤다. 국을 엎고 그 위에서 퍼덕이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수영을 식탁 위에서 가르치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 아이에게 못하게 막으면 애도 울고 이내 나도 울고 싶어진다. 다 먹고 치우자는 생각으로 내버려두기 시작하면서 한결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비록 밥알은 후방 2m까지 날라가 있지만 한 번에 닦으면 되니 튈 때마다 닦는 것보다는 한결 일이 적다. 포도 같은 과일을 줄 때도 깨끗하게 닦아서 껍질째 주었다. 씨까지 다 발라주기 귀찮은 마음이 크지만 껍질을 만져보고 입에 넣어서 굴려보고 껍질을 먹기도 하고 씨를 뱉어보기도 하면서 감각적인 부분에도 도움이 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놀이매트 위는 온통 포도껍질과 과즙으로 뒤범벅이 되고 방울토마토를 깨물 때마다 과즙을 발사했지만 그것도 그냥 다 먹고 나면 한번에 닦았다.

우리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아이를 안낳은 친구들은 애를 키운다는 건 이런거냐며 혀를 내둘렀고 아이엄마들은 어떻게 이렇게 난장판이 되도록 내버려두냐는 것이었다. 무엇이 더 편한지는 엄마가 결정할 문제지만 나는 그냥 어지르도록 두고 한번에 치우는 것을 택했다. 밤에 아이가 잠들고 나면 난장판이 된 집을 치우다가 어차피 내일 오전이면 같은 꼴이 될 걸 내가 왜 치우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어지를 땐 어지르더라도 정돈된 환경에서 키우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자꾸 생각나서 어찌어찌 주워담았다. 물론 미처 치우지 못하고 쓰러져 잠든 날도 많다.

아이는 30개월이 넘어서자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정확하게 입으로 넣고 이제는 심지어 젓가락질도 한다. 팩에 담긴 음료를 주어도 새어나오지 않도록 살살 받아들고는 재빨리 빨대 부분을 입으로 가져간다. 손힘조절이 가능해진 것이다. 음식으로 장난치는 것은 현저하게 줄었고 오히려 먹다가 손이나 입에 묻으면 물티슈를 달라고 해서 입과 손을 직접 닦는다. 다 닦고 먹은 자리까지 물티슈로 훔칠 때는 너무 신통방통해서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아직도 우유를 마시고 아무렇게나 놓아서 소파 틈새로 우유가 질질 흘러들고는 하지만 전보단 아이의 조심성이 늘어서 흩어진 음식을 주워 담는 일은 현저히 줄었다. 남편이 육아의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아이와 잘 놀아주기 시작하면서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면 육아를 남편에게 넘기고 나는 살림을 한다. 저녁 준비할 동안 집 앞의 레고방을 다녀오라며 둘을 내보내고 혼자만의 고요한 저녁준비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고 따라 부르기도 하고 마음이 소란한 날에는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애를 키우니까 그 별거없는 살림조차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요즘엔 자기 전에 아이와 함께 장난감을 정리해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누가 더 빨리 담는지 시합해보자고 승부욕을 자극해보기도 하고 고작 세 개쯤 담고 다 정리했다며 다시 어지르기 시작하는 수준이지만 언젠가는 이마저도 습관이 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즐겁게 놀고 있는 남편과 아이에게 빨래 널기 미션이라며 젖은 빨래를 한 짐 쥐어주기도 한다. 아이가 성인이 되서 온전한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었을 때 혹은 누군가의 남편이 되었을 때 바른 생활습관을 형성하도록 길들이는 것은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과정이 번거롭더라도 살림을 혼자서도 거뜬히 해나갈 수 있고 언젠가 타인과 만나 둘이 되어서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정돈된 환경이 주는 기쁨을 알고 부엌에 들어가도 불알이 안떨어지는 성인으로 키우고 싶다.



심효진 <육아 칼럼리스트>
남편과 아들,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살림과 꽃꽂이를 좋아하고 기록을 할 때 정신이 가지런해진다고 믿는 5년차 주부. 글쓰는게 제일 꾸준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틈틈이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있다.
입력 2016-01-07 09:52:00 수정 2016-01-07 17:52:00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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