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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일상으로의 초대 '語찌나 아름다운지'

입력 2016-01-11 15:42:01 수정 2016-01-11 15: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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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 못이겨 지인들과의 술자리에 끼어 새로운 남자를 소개받고 성의껏 대화를 하다 돌아오던 밤이 있었다. 못마시는 술을 앞에 놓고 열심히 그 남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장단을 맞춰줬건만 그도 역시 내 남자가 아님을 깨닫고 집에 돌아오면서 허탈했던 날의 무거웠던 발걸음을 기억한다.

맛있다는 레스토랑을 가보아도 예쁘게 차려입고 멋진 곳에 놀러가도 다 순간의 즐거움일 뿐 왠지 마음 속에서는 허무함이 가시질 않았다. 그즈음에 나는 회사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남미의 어딘가로 떠나서 탱고를 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허무맹랑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때의 나는 진지했었다. 나의 마음은 사막과도 같았다.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보아도 다 그 놈이 그 놈같고 뭘해도 감흥이 없었던 20대 후반의 가을, 나는 남편을 만났다. 그의 따뜻한 성품에 그가 내민 손을 선뜻 잡았다. 우리는 이내 결혼했고 얼마 안 있어 뿅갹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의 삶은 송두리째 달라졌다. 어디부터 달라졌냐고 묻는다면 그냥 안달라진게 없다고 대답하고 싶다. 삶이 지루하고 따분하고 같은 고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1차적인 생존의 차원에서 버텨내야했다. 하루하루 일상에 집중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내게 놀라운 변화도 찾아왔다.

갓 태어난 아이는 똥을 누는 법을 몰라서 온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울면서 힘을 주어 겨우겨우 응가를 한다. 아이들은 천장의 네모난 모양조차 멋없는 둥근 등조차 정말 신기하다는 듯이 최선을 다하여 눈을 부릅뜨고 쳐다본다. 대체 얼마나 신기하길래 싶어서 나도 함께 누워서 천장을 보았다. 이 네모난 천장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것인지 상상해보았다.

어두컴컴한 엄마의 뱃속에 있다가 가끔 세상이 조금 밝아지고 때로는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또 웅얼웅얼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곤두세우고 궁금했을 세상. 그 안락함을 뚫고 나온 처음 만난 세상은 천장의 모서리조차 신기한 것이다. 나에게 가장 익숙한 냄새가 나는 엄마의 얼굴은 그 자체로 가슴 벅차게 반갑고 자꾸만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뿅갹이는 '설현' 사진을 보고 엄마사진이라고 하고 '김태희'사진을 보고는 엄마 닮았다고 말해준다. 이 세상 어느 누가 나를 당대 최고 미녀인 그들과 견주어 줄까. 뿅갹이는 잠들기 전이면 나에게 "엄마, 예뻐요. 정말 예뻐요. 사랑해요"라고 말하며 안긴다.

아이에게는 낮이 밤이 되는 기적도 다시 밤이 낮이 되는 세상의 이치도 너무도 신기한 것이고 기차의 경적소리도, 사람들이 모두 멈춰서는 신호등의 빨간불의 마법도 모두모두 처음보는 것이다. 하늘에서 때로는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기도 하고 바람이 쌩쌩 불어오기도 한다. 매일매일이 흥미 진진한 ‘처음’으로 가득하다. 사실 나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아이에게는 특별함 그 자체로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나역시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처음 접하는 그 사소한 것들에 대해 감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접했던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이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 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



아이에게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한없는 사랑 아닐까. 나는 오늘도 뿅갹이와 함께 하루를 보내며 인생의 '즐거운 편지'를 한 장 더 써내려갔다. 이런 일상의 특별함은 아이가 말을 시작하면서 더욱 반짝이기 시작했다.

"엄마, 깜깜해졌어요. 왜 깜깜해졌지?"
"응, 햇님이 집에 들어갔나봐"
"왜 햇님이 들어갔어요?"
"햇님도 밤에는 쉬어야지. 그래서 밤에는 달님이 대신 나오는 거야"
"왜 달님이 나와요?"
"저기 봐. 달님이 뿅갹이한테 안녕~ 인사하네"
"우와, 멋져요"

"엄마, 비가 와요. 왜 비가 오지?"
"구름이 너무너무 커져서 이제 너무 무거워서 비가 되어 내리나봐"
"구름이 왜 무거워요?"

"엄마, 눈이 내려요. 왜 눈이 오지?"
"구름이 너무너무 무거워졌는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꽁꽁 얼어서 눈이 되서 내리나봐"
"왜 추워요?"
"응, 지구가 햇님한테서 멀리 있어서 그래"
"지구가 왜 멀리 있어요?"

아이의 끝없는 "왜?"가 이어지면서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당연시 여겨왔던 수많은 일상들에 왜인지 대답해 주어야했다. 아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세상의 개념에 대해 듣다보면 웃음이 절로 나는 순간이 많다.

"뿅갹아, 아빠는 남자고 엄마는 여자야. 그럼 뿅갹이는 뭘까?"
"나는 사람이잖아!"

"뿅갹아, 아빠 이름은 뭐야?"
"갹갹오빠 (아마도 내 주변 사람들이 갹갹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그러는 모양이다)"
"푸하하, 그럼 엄마 이름은 뭔지 알아?"
"여보!"

나 대답 잘하지 않았냐는 표정을 짓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아이가 '밥, 빵, 물'과 같은 사물을 가르키는 정도를 넘어서서 '맛있다, 졸려, 멋있다, 예뻐'와 같은 추상적인 감정을 표현할 줄 알게 되면서 경이로움과 함께 나의 고민은 깊어졌다. 이 아이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멋지다'고 느낄까. 그 기준을 만드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미쳤을 '엄마'로서 나는 과연 잘해왔을까. 이 아이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기준에 나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얼마 전, 집을 나서는 내게 뿅갹이가 물었다.
"엄마, 어디가요?"
"응, 엄마 운동하러 가"
"어디 아파요?" (내가 디스크가 있어서 운동을 한다는 걸 뿅갹이도 알고 있다)
"그럼 이제 안아파요?"
"응, 엄마가 운동 열심히 했더니 이제 튼튼해져서 안 아파!"
"그럼 운동 왜 가요? 아~ 더 예뻐지려고?!"

어린이집에서 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교육프로그램이 따로 있는 건지 잠시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껏 화장을 하고 힐까지 신은 나를 보고 뿅갹이는 말했다.

"우와, 엄마 예뻐요"
"정말? 꺄하하하"
"엄마, 기분 좋아?"

아이에게 한방 먹었다. 내가 '예쁘다'는 칭찬을 어지간히 좋아하긴했나보다.

아이와 쌍방 의사소통의 깊이가 더해지면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말 못하는 아이와 '놀아주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함께 노는' 기분이다. 함께 저녁 메뉴를 고르고 집에 돌아와서 함께 요리를 하고 함께 맛본다. 주말에는 함께 아쿠아리움에 가서 신기한 바다생물에 함께 감동한다. 이런 보잘 것 없는 일상들이 함께함으로 인해서 특별해졌다. 뿅갹이가 고르고 새롭게 요리한 밑반찬 하나가 가족이 둘러 앉아 튀겨먹는 팝콘이 요즘엔 그 하나하나가 새롭고 소중하다.

뿅갹이는 3월이면 세돌이 된다. 보호만 받았던 존재에서 어느새 까페에서 커피 한 잔, 주스 한 잔씩 시켜놓고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괴물로부터 엄마를 지켜주겠다며 기합을 넣어보기도 하고 엄마의 가방이 무겁다며 자기가 들어준다. 아빠와 함께 엄마 심부름을 다녀오기도 하고 고장난 가전을 직접 고쳐주겠다고 장난감 드라이버를 찾아 들고 오기도 한다. 아빠가 부르는 동요가사의 틀린 부분을 어설픈 발음으로 교정해주기도 한다. 방금 전 밤길에 출근하는 아빠에게 밖이 깜깜하다며 걱정해주어서 감수성이 풍부한 아빠는 눈시울을 붉히며 뿅갹이가 잠들길 기다렸다가 집을 나섰다. 사실 아빠는 혼자 심야영화를 보러 간다는 말을 폭로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뿅갹이에게는 세상이 너무 금방 시시한 것이 되버리지 않길 바란다. 세상에 대해서 궁금해 죽겠어서 사는게 너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직도 알지 못하는 분야들이 너무 많고 그것들을 알아가느라 나이가 80이 넘어도 세상이 너무 재미있어 죽겠길 바란다.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거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에 이렇게 대입하고 싶다.

'내 일상이 특별해서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여겨서 특별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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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 <육아 칼럼리스트>
남편과 아들,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살림과 꽃꽂이를 좋아하고 기록을 할 때 정신이 가지런해진다고 믿는 5년차 주부. 글쓰는게 제일 꾸준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틈틈이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있다.
입력 2016-01-11 15:42:01 수정 2016-01-11 15:42:01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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