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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이색적인 체류의 꿈

입력 2016-02-24 19:55:00 수정 2016-02-24 1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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뿅갹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 정리를 하다 무심결에 티비를 틀면 종종 홈스토리라는 채널에서 하는 '이색적인 이사'라는 프로그램을 마주하게 되곤 한다. 이런 걸 즐겨 보는 걸 보면 나도 이제 뼈주부가 다 되었나보다.

'이색적인 이사'는 미국 혹은 캐나다에 사는 중산층 가정의 의뢰를 받아 그들의 예산과 요구사항에 맞춘 집을 전 세계에서 구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추위에 지친 미국 북부 가정들이 따뜻한 기후를 찾아 의뢰하기도 하고 비싼 미국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나라의 넓은 주택을 원하기도 한다.

시계태엽이 두 세배쯤 세차게 감겨있는 대도시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는 층간소음에 매우 민감한 아랫집을 두었다. 늘 마주치면 눈썹을 八자 모양으로 만들며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뿅갹이의 친구라도 놀러 올라 치면 30분 내로 인터폰이 울린다.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경비아저씨의 음성이 스피커 너머로 울린다. 그렇게 뿅갹이의 친구들은 이내 쫓겨나가곤 했다. 한국 나이로 네 살, 이제 한참 발산하기 시작할 뿅갹이의 활동성이 겁난다.

인터폰을 받고 집에서 먹을 것을 조금 챙겨서 아랫집에 내려갔다.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죄스럽게 초인종을 울렸다.

“저희 아이가 너무 시끄럽게 했죠? 죄송해요.”

여전히 八자 눈썹을 드리우는 아랫집 아주머니 뒤로 초등학교 저학년인 그 집 아들이 옆에서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안 시끄러웠는데?” 라며 소위 요즘 말로 팀킬을 한다. 언제나 적은 내부에 있다.

“뿅갹아, 뛰면 안돼. 뛰면 아랫집에서 시끄러워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하는 이 말에 아이는 살금살금 걷는 모양새를 하며 “이렇게?” 라고 답한다. 요즘엔 새로운 곳에 가면 여기에서는 뛰어도 되는지부터 묻는다. 잘 길들여진 사회인이 되어가는 건지 아이의 본성을 억압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다. 날이 따뜻할 때는 해가 질 때까지 놀이터에서 아이의 기운을 빼고 집에 들어오고는 하는데 외출이 힘든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나 추운 겨울엔 날씨가 원망스럽다.

'이색적인 이사'에 소개 나오는 집들은 대부분 연중 따뜻한 기후에 넓은 부지에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춰진 개인주택들이 나온다. 멋진 경관과 수영장을 비롯한 야외 공간, 홈파티를 열어도 끄떡없을 정도의 주방공간을 갖춘 집들이 4억, 7억, 10억 등의 다양한 예산에 맞춰 선보인다.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그 예산으로는 꿈도 꿀 수 없을 집들이다. 입을 떡 벌리고 내가 이사 간다면 어떨까 집중하여 보게 된다.

영상에 비춰진 플로리다나 뉴질랜드, 에콰도르의 삶은 행복해 보이기만 한다. 그 곳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고 늦은 아침을 해먹고 한적한 바닷가에서 산책을 하고 싶다. 오후에는 책을 좀 읽다가 해가 지면 한국 예능을 다운받아서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보며 낄낄대는 한적한 삶을 살고 싶다. 주말엔 그 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바베큐 파티를 열어 어른들은 둘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아이들과 둘러 앉아 재미있는 만화 영화를 보아도 좋겠다.

단지 한적한 삶에 대한 환상 때문에 이색적인 이사가 끌리는 것은 아니다. 내 나름대로 몇 가지의 이유가 있다.

기후는 사람의 기질을 만든다. 봄이면 불어 닥치는 미세먼지에 창문도 못 여는 날이 지속되다보면 어느새 땡볕 더위가 찾아온다. 게다가 습하기 까지 하니 여름에는 도통 정신을 못 차리겠다. 가장 좋아하는 가을은 너무도 반짝 찾아왔다가 이내 강추위가 들이닥친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겨울을 견뎌내고 나면 다시 미세먼지가 덮쳐오는 꼬여버린 알고리즘의 무한 루프에 갇혀 있다. 한국 사람의 빠른 성미에는 혹독한 사계절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늘 온난한 곳에서 느긋한 삶을 살고 싶다.

‘진짜’ 행복을 마음껏 느끼고 싶다. 복잡한 도시에서 서로 비교하면서 내가 아주 조금 남보다 더 나음에 지나치게 만족하고 남이 잘 풀리면 배 아파하고 안 되면 고소해하는 ‘왜곡된 행복’ 속에 사는 것이 싫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나니 집에서 여유 있게 해먹는 집 밥, 쓸고 닦으며 집을 꾸미는 재미, 가족이 모여서 함께 웃는 순간,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글을 쓰는 것들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와 내가 타는 차와 내 자식의 성적이 나의 행복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순 없다.

손님을 초대해 넓은 주방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야외 테이블에서 수다를 떨며 즐기는 식사는 나에게 이상적인 이미지이다. 그런 집에서는 아이도 마음껏 쿵쿵거리며 뛰어다닐 수 있겠지. 이렇게 생생하게 상상하는데 온 우주가 도와주지 않을까.

평소 여행을 좋아해 언젠가 온가족이 다 같이 일상을 접고 1년간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키즈까페와 TV에 길들여져 새로운 장난감이 있어야만 놀 수 있는 아이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자연에서 뛰어놀며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다.

현실적으로 서울에서의 모든 것을 접고 다른 나라로 집을 사서 이민을 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가서 뭐해서 먹고 살지조차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어떤 이는 막상 그 과정을 모두 겪고 이민을 가도 또 그 생활이 너무 심심해서 복작거리는 한국이 그리워 돌아오고 싶어진다는데 그건 사실 내가 안 살아봐서 모르겠다. 이색적인 이사가 안 된다면 ‘이색적인 체류’라도 해보고 싶다. 여행 중에 좋았던 곳에서 단 1, 2년 씩이라도 장기렌트를 해서 이색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꾼다. 뜬 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삶의 활력이 된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더나은심리계발센터 교육팀장,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입력 2016-02-24 19:55:00 수정 2016-02-24 19:55:00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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