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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가장 방심했을 때 둘째는 찾아온다

입력 2016-03-15 11:46:00 수정 2016-03-15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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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머릿속엔 너무 많은 생각들이 차올라서 그것들을 여기에 다 적었다가는 ‘펑!’하고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지난 2월 한 달간, 거의 뿅갹이를 데리고 있었다. 여행을 가기도 했고 구정이 있었고 함께 친정, 시댁에도 가며 내내 함께였다. 그런데 생각도 못했던 끝판왕 봄방학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그만 어린이집을 좀 보내고 싶었는데 내 의지와 달리 뿅갹이와 열흘 간 더 함께 해야 했던 봄방학의 어느 날, 나는 키즈 까페 한 구석에 앉아 눈물을 닦고 있었다.

볼풀에 들어가 공놀이를 해드리고 함께 트램펄린에서 뛰어 드리고 온갖 요구사항을 들어드린 지 두 시간이 되어갈 즈음, 그날따라 낮잠이 오는지 별거 아닌 걸로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 뿅갹이는 좀처럼 달래지질 않았다. 뽕갹이는 처음 보는 여자아이와 같은 장난감을 서로 갖고 놀겠다며 낑낑대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침착하게 다시 한 번 타일렀을 텐데 그 날은 나도 참아 지질 않았다.

"으으으으으, 정말!!"

둘을 겨우 떼어 놓고 나니 내 안에서 솟구치는 짜증에 애 달래기를 그만 둔 나는 알 수 없는 괴성을 냈다. 뿅갹이도 엄마가 화가 많이 났다는 걸 눈치 챘는지 행동을 멈추고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내가 지금 왜 여기에서 애를 달래고 있어야 하는 거지? 나는 원래 육아 친화적인 인간도 아니잖아!'

그동안 '둘째는 생기면 갖자'는 미필적 고의쯤으로다가 피임을 안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애 하나 돌보기도 이렇게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데 나는 절대 둘은 안 되겠어. 내가 미쳤지'

조금 이따 남편을 만나면 '우리 이제 피임을 하자'는 말을 하리라 다짐했다. 자녀 계획에 이토록 확신을 가진 순간도 없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났냐는 남편 말에 '나는 애를 못 키우겠다'고 말하던 중 난데없이 눈물이 또 주르륵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 날 저녁, 털레털레 화장실로 걸어가던 나의 손목을 잡고 남편이 말했다.

"여보, 당신 그런데 생리할 때 지나지 않았어? 테스트 좀 해봐"

뿅갹이 때도 임신을 정확하게 맞췄던 남편이라 반신반의하면서 테스트를 해보았다. 결과는 선명한 두 줄이었다. 그동안 남편과 하늘 딱 한 번 보았을 뿐인데 임신 같다며 머리가 아프네 어쩌네 유세를 떨 때는 죄다 헛다리더니 하필 마음을 접은 바로 그 날, 둘째가 찾아왔다. 그 날 밤, 앞으로 고생하게 될 내가 너무 불쌍해서 평소 아껴 바르던 팩도 두 배로 두툼하게 발랐다. 아끼면 뭐하나.

나는 첫째 때 유도분만을 하다 결국 제왕절개를 한터라 아마 둘째도 제왕절개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내 인생에 마지막이길 바랐던 수술과 회복과정을 또 거칠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아찔하다. 알아서 더 괴롭다. 뿅갹이를 낳고 나서 내 생애 출산은 다시는 없다고, 둘째 얘기 는 먼저 꺼내지도 말라며 남편에게 으르렁거린 게 3년 전인데 다시 그 전철을 밟고 있다니.

임신을 확인한 날부터 잠이 쏟아지고 이내 입덧이 시작됐다. 첫째 때는 가벼운 먹는 입덧이어서 뭐라도 먹으면 속이 한결 편했는데 둘째는 그 양상이 또 달라서 남편과 아이가 먹을 볶음밥을 만들고는 결국 변기통을 붙잡고 말았다. 낮에는 내내 울렁이다가 밤이 되면 좀 괜찮아져 요즘은 강제로 1일 1식 하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원래도 많았던 잠이지만 자고 또 자도 졸린 나를 보면서 아마 둘째를 낳으면 잠을 못잘 걸 생각해 지금 미리 잠을 축적해두는 건가보다 싶다.

그동안 다른 집 첫째와 둘째가 서로를 챙겨가며 노는 모습을 보면 좋아보였다가 애 하나에도 기진맥진할 때가 있는 나를 보면 정신 차리자고 생각했다. 남편과 내가 모두 외동으로 자라온 터라 우리 아이에게는 형제나 남매를 만들어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사실 둘째가 뱃속에 생겨버리면 받아들이는 일만이 있으니 차라리 고민하지 않아서 편하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막상 둘째가 생기고 나니 아직 채 빠지지 않은 살과 다시 시작한 사회적인 커리어가 더 걱정되는 나는 뼛속까지 이기주의적인 인간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남편은 둘째는 딸이라는 확신이 온다고 호들갑이지만 나는 내가 편하고 싶어서 성별에 상관없이 유순한 아이가 태어나길 바라고 있다.

요즘 내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들로 뒤덮여 체계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은 뿅갹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낮잠을 잔다든가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온전한 '내 시간'이 주어졌는데 둘째가 생기면 이제 적어도 2년간은 그것도 끝이다. 그리고 언제 젖몸살이 올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가슴을 안고 다니면서 수유를 해야 하겠지. 또 잠도 못 잘 거다. 아마 나는 전에 없이 날카로워져 하루 종일 아이들과 남편을 짜증 섞인 표정으로 대할지도 몰라. 지금은 남편이 애를 안으면 나는 짐을 들고 어디든 갈 수 있는데 애가 둘이면 이제 그런 건 꿈도 못 꾸겠지. 올 여름에 온가족이 함께 길게 여행 가려고 했던 계획은 어찌되는 거지.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더 큰 서재방을 아이방과 바꿔야 하나. 둘째까지 함께 자려면 안방의 침대 틀도 빼버리고 이제 매트리스만 두 개 깔고 생활해야겠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는 멋도 모르고 임부용 팬티 한 장 사지 않고 산후조리원도 가지 않았다. 젖이 가득 돌아 젖몸살이 시작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수유 브라도 주문해서 입었다. 하지만 둘째는 가진 걸 알자마자 나는 산후조리원도 갈 거고 허락한다면 산후 마사지도 받을 것이며 당장은 괜찮은 임부복 매장에 가서 배가 편안한 옷들을 장만해야겠다며 내가 조금이라도 더 편할 계획을 잔뜩 늘어놓고 있다. 이런 내가 둘을 잘 키워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아기는 어디 있냐고 묻기에 엄마 뱃속에 있다고 했더니 내 옷을 들추며 "에이 없잖아, 아기 어딜 간거야아"라고 되묻는 아이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내 배 위에서 겅중겅중 뛰는 걸 좋아하던 뿅갹이가 "엄마, 뱃속에 아기 있으니까 이제 뛰면 안 되는 거예요? 아기가 아파?"라고 묻는 걸 볼 때면 오히려 나보다 더 성숙해보일 지경이다. 아기는 때리면 안 되는 존재이며 예뻐하고 꼭 안아줄 거라고 하루에도 몇 번 씩 말한다. 둘이 노는 걸 보면서 그래도 낳길 잘했다며 뿌듯해하는 날이 오긴 할는지 현재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온다면 나의 뱃살이 어느 정도는 납득 가능한 정도였으면 한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더나은심리계발센터 교육팀장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입력 2016-03-15 11:46:00 수정 2016-03-15 11:46:00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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