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아역스타 전성시대다. 아역배우들의 롤모델로 꼽히는 문근영과 유승호를 비롯해 여진구, 김유정, 김새론 등 성인 연기자 못지않은 인지도와 탄탄한 연기력으로 차세대 스타로 거듭난 아역배우들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설문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할 만큼 만인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 그렇다면 유난히 끼가 많은 우리 아이도 차세대 아역스타로 만들 순 없는 걸까?
아역배우로 데뷔해 대중에게 각인되기까지의 길은 쉽지만은 않다. 성인 연기자의 보조 역할에 불과했던 아역배우는 그야말로 옛말, 주인공의 아역을 뽑는 오디션 현장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수백대 1의 경쟁률은 물론, 수 차례에 걸친 캐스팅 과정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배역을 거머쥘 수 있다.
아역배우의 1차 캐스팅을 담당하는 정수연 씨앤에이에이전시 팀장과 아역배우의 실적적인 연기 연습과 데뷔 준비를 돕는 서은혜 씨앤씨스쿨 원장을 만나 아역배우의 캐스팅 과정과 오디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역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되나.
- 시나리오가 나오면 감독이 캐스팅 에이전시에 오디션을 치를 아역배우 모집을 의뢰한다. 캐스팅 디렉터는 먼저 시나리오를 읽고서 이미지와 연기력 가운데 어떤 부분이 비중이 큰지 판단하고, 1차로 아역배우의 프로필 사진이나 기 확보해 둔 영상 자료를 검토한다. 이중 배역에 걸맞은 배우를 추린 뒤 부모에게 오디션을 제안하는 시스템이다. 오디션은 보통 2~3차로 진행되고 대게 한 달 이내에 캐스팅이 마무리된다.
연기학원에 다녀야 캐스팅이 되나.
-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캐스팅이 되려면 디렉터의 눈에 띄어야 하는데 연기학원을 다니거나 모델 활동 등을 하지 않으면 캐치하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요즘은 sns를 통해 아이들을 홍보하는 부모들도 있지만 오디션을 보려면 어느 정도 연기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아이가 끼가 많지 않는 한 제약은 있다.
아역배우들의 오디션 현장이 궁금하다. 성인과 다른가.
- 아역이라고 해서 오디션 현장에 부모와 함께 들어가진 않는다. 최소 3~5명 정도 한 그룹으로 묶여서 오디션을 보고 부모들은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에서 아역의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오디션을 따로 볼 정도면 주인공의 아역이거나 주인공의 아들, 딸인 경우가 많다. 이럴 땐 국내 모든 아역배우들이 오디션을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작품의 경우 경쟁률이 수백대 1에 달한다.
몇 살 때부터 오디션을 볼 수 있나.
- 광고모델은 나이에 상관이 없지만, 연기자의 경우 대본을 읽을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최소 6세 이상은 돼야 한다. 아역배우들은 보통 나이보다 2~3살 어린 역할을 맡는데, 실제로 9~10살의 아역배우가 극중 7살의 역할을 맡는 식이다. 아주 어린 아이가 연기력을 갖추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어떤 아이들이 최종 캐스팅되나.
- 배역에 맞는 외모와 연기력을 동시에 겸한 아역이 캐스팅 1순위이지만, 현실적으로 이 두 가지를 갖춘 아역이 드물다. 비주얼은 좋지만 연기력이 못 미치는 아이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기력이나 표현력이 좋으면 오디션에서 확실히 강점이 된다. 특히 아이가 짧은 시간 안에 눈물연기를 소화하는 건 플러스 요인이다. 최근에는 이미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광고에서도 연기력을 가진 모델을 원한다. 연기를 잘한다는 건 아이가 그만큼 감정 표현이 풍부하다는 얘기이고 이러한 부분이 화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감독들이 판단하는 것 같다.
반대로 오디션 때 마이너스 요인도 있을 것 같다.
- 아이들은 아이다운 모습을 보일 때 가장 예쁘다. 그러나 일부 아이들은 부모에 의해 짜여진 각본대로, 인위적으로, 기계처럼 연기한다. 평소 부모가 아이들의 연기에 직접 개입하고 다그치는 경우다. 이런 아이들은 암기는 잘하지만 연기가 부자연스러워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러움이 가장 중요하다.
소속사 계약이 이뤄지는 시기는?
- 남자아이는 중학교 때부터 2차 성징과 변성기가 오고, 여자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을 기준으로 사춘기가 오면서 외모와 음성 등이 많이 달라진다. 이 부분을 우려해 소속사들이 중학교 시기를 거친 후 계약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계약 전까지는 부모가 매니지먼트 역할을 한다. 어릴 때 예쁘다고 커서도 예쁘다는 보장도 없더라(웃음).
출연료 및 모델료는 어느 수준인가.
- 배우마다 천차만별이다. 적게는 몇 십만원부터 많게는 수 백, 수 천만원에 달한다. 인지도가 높아지고 경력이 쌓일수록 출연료가 높아진다. 요새는 아역배우 시절의 인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어이지는 경우도 많다. 인기 아역배우인 김유정, 김소현의 경우 성인 연기자 못지않은 인기는 물론 출연료와 광고료도 높다.
아역배우의 촬영환경은 어떤가.
- 성인연기자와 아역이 함께 연기할 때는 대기시간이 천차만별이지만, 아역들끼리 연기하는 경우엔 대체적으로 밤 촬영을 피해주거나 오래 대기하지 않도록 배려해준다. 아이들의 집중력이 짧기 때문이다. 또 아이가 연기할 때 긴장하지 않고 시선을 똑바로 맞출 수 있도록 카메라 바로 옆에 엄마를 서 있도록 하고, 아이가 엄마를 쳐다보면서 연기하는 경우도 있다. 감독에 따라서는, 아이에게 연기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아이가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아역배우에게 엄마의 존재는 상상 이상이다. 실제론 어떤가.
- 처음엔 아이가 연기하는 걸 좋아해서 시작하지만 아이가 오디션을 보고 작품에 출연하는 등 활동이 늘어나면 부모가 욕심을 내게 된다. 오디션장 대기실에서 아이에게 집중하라고 다그치거나 소리를 지르는 부모도 있고, 아이의 수익에 집착하는 부모도 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줘야 하는데, 결국 아이에게 스트레스만 주다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부모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가장 안타깝다. 여담이지만 업계에서도 아역배우의 엄마가 일일이 간섭하거나 제작사 등에 극성을 부리는 경우 아이 캐스팅을 주저하는 분위기다.
◇ '배우 등용문'은 옛말. 연기학원서 재능 발굴하는 아이들
지난 3월, 취재차 방문한 압구정동의 한 연기 아카데미 로비에는 주말 연기수업을 듣기 위해 모여든 아이들과 부모들로 빼곡했다. 수업이 진행 중인 각각의 교실에서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선생님의 동작 연기를 따라해 보는 아이들과 직접 만든 가면으로 실감나는 가면극을 펼치는 아이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영어 토론을 하는 아이들로 열기가 뜨거웠다.
과거에는 아역배우 데뷔를 위한 등용문으로 연기 아카데미를 찾았다면, 최근엔 아이들의 재능발굴을 이유로 연기에 발을 들이는 사례도 많아졌다. 협업과정인 연기를 통해 사회성을 향상시키고 표현력과 발표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이미 유럽에서는 연극을 정규과목으로 편성할 만큼 연기를 통한 정서적 발달 효과를 크게 보고 있다. 우리나라도 오는 2018학년도부터 초중고 연극수업을 교양과목의 하나로 편성해 인문학적 소양을 기른다.
서은혜 cnc스쿨 원장은 "과거에는 연예인을 준비하는 일부 아이들이 많이 찾았지만 최근엔 아이들에게 다양한 재능발굴의 기회를 주고,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을 바꾸기 위한 방편으로 연기에 입문한다"면서 "중요한 것은 아이가 연기에 흥미를 느끼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때 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기학원의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 기초연기반, 캐스팅반, 리더십반이 있다. 기초연기반은 아이들이 재미있게 연기를 접할 수 있도록 놀이와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연극을 가르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상황설정을 주고 아이들이 자작시, 동화극 등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캐스팅반은 연기를 1~2년 이상 배운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준비하는 반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대본 중 일부를 발췌해서 독백연기 및 자유연기를 하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자신의 모습을 직접 모니터링하기도 한다. 발성 발음 연습은 기본이다. 리더십 반은 아이의 사회성 발달과 표현력 등을 향상시키기 위해 영어연극, 토론 등의 수업을 진행한다.
데뷔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드나.
- 아역배우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대게 (연기)학원비, 연 1회의 프로필 촬영비,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위한 교통비가 전부다. 아이들은 오디션에서 분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메이크업 등 부대비용이 들지 않는다. 부모가 사실상 매니저 역할을 하는 만큼, 부모가 얼마나 케어해주는 가에 달렸다. 워킹맘 보다 전업주부가 수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통 어떤 계기로 배우러 오나
- 예전에는 엄마들의 의지로 아이를 데려왔다면 요즘에는 아이들이 먼저 하고 싶다고 해서 데려오는 경우다 대부분이다. 꼭 아역배우로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접하게 해주고 그 속에서 아이의 재능을 찾으려는 분위기다.
연기를 배우면 어떤 점이 가장 좋은가
-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고 남 앞에 서는 것을 즐기게 되는 과정을 많이 봐왔다. 어느 사회에 가도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인데, 연기를 배우면서 아이의 성향이 변하는 것은 물론이고 협업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타협과 배려를 배우게 된다.
엄마들에게 조언 한마디
- 절대 억지로 시켜서는 안 된다. 아이가 연기에 관심을 갖고 재미를 느낄 때 기회를 주는 것이 결과도 좋다. 오랜 시간 배우로 데뷔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엄마가 욕심을 내서 아이를 채근하고 다른 배우들과 비교하며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있다. 아이가 즐거워서 시작한 일인데 엄마 때문에 아이가 힘들어하고 결국 포기하게 되더라. 일단 시작했으면 인내심 갖고 기다려야 한다.
키즈맘 구채희 기자 chae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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