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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산후조리원을 찾아서

입력 2016-03-31 09:47:00 수정 2016-03-31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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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임신하게 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 제일 먼저 챙겼던 것은 태어날 아이의 배냇저고리가 아닌 나 자신의 안위였다. 둘째는 첫째 아이가 쓰던 물건으로 어느 정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이 둘을 키워내느라 고생할 내 몸이 더 걱정이었다. 뼛 속까지 이기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우선 넉넉한 사이즈의 수유브라를 장만해야겠고 산후조리원도 예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뿅갹이를 낳았을 때는 산후조리원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 안 갔다가 신생아를 다루는 노하우가 하나도 없어 고생을 많이 했다. 가슴은 부풀어 올라 딱딱해져서 욱신거리는데 제대로 물릴 줄 몰라 유두에서는 계속 피가 났고 그래도 밤새 수유는 계속 해야 했다. 당시 내가 한 고생을 비용으로 환산했다면 산후조리원에 가는 것보다 훨씬 더 들었을 것이다. 애를 많이 낳았던 시대에는 구전으로 산후 회복이나 신생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 가능했겠지만 나의 친정엄마도 20여 년 전에 딸 한 명을 출산한 것이 전부인지라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실질적인 노하우는 없었다.

둘째의 경우에는 신생아 다루는 법은 이제 알고 있지만 2주의 기간 동안 온전하게 쉬기 위해서라도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동네에 산후조리원 현황 파악을 위해 뿅갹이의 친구 엄마들에게도 물어보고 지역 까페에 검색도 해보았다. 집 근처의 세 군데 정도가 있었고 옆 동네에 한 곳을 추천받았다. 그 중 제일 인기가 좋은 곳은 산부인과 병원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서둘러 예약해야 한다는 말에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바로 방문했다. 워낙 인기 있는 곳이여서일까 실장의 퉁명스러운 설명에 기분이 조금 상했다.

"VIP실이나 특실은 이미 예약 끝났고요, 일반실도 몇 자리 안 남아있어요. 예약하시려면 이번 주 안에 정하셔야 돼요."

이제 겨우 임신 7주인데도 예정일 즈음에 자리가 몇 개 없다는 말에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럼 VIP실에서 조리하려면 임신 전에 예약부터 해야 가능한 것인가.

"저 5월에 임신 예정인데요, VIP실 예약 좀 해두려고요."

우스꽝스러운 전화를 거는 상상을 하면서 병원을 나섰다.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적다고 매년 난리이면서 왜 이토록 산후조리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육아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것인지 아이러니하다.

다음 날, 옆 동네 산후조리원 한 곳에 투어를 갔다. 마스크를 쓰고 가운을 입고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유리 너머로 꼬물거리는 신생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저 작고 빠알간 생명체를 나도 몇 달 후엔 안아볼 수 있겠구나.'

그토록 힘들었으면서도 한없이 작기만 한 신생아들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나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는 느낌이었다. 식당과 객실까지 탐방을 마치고 상담실에서 프로그램과 가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래도 이 곳은 사설 조리원이라 예약이 많이 차있지는 않아서 선택의 폭이 넓었다. 동네의 다른 곳은 인터넷으로 후기를 찾아보았는데 온 조리원을 감싸고 있는 휘황찬란한 꽃무늬 벽지가 정신 사나운 느낌이라 편히 쉬지 못할 것 같아서 후보에 넣지 않았다.

산후조리원을 선택할 때 초보 엄마들은 보통 프로그램과 마사지 등을 선택의 기준에 많이 반영한다. 하지만 한 번 다녀와본 엄마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프로그램은 어차피 다 비슷하고 마사지는 해주시는 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받아보기 전엔 알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한다. 오히려 엄마들의 성향에 따라 얼마나 독립적인지, 교류가 잦은지 여부와 음식이 맛있게 잘 나오는지가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조용히 혼자 쉬고 싶은 산모의 경우에는 외부인 출입도 전혀 되지 않고 식사도 방으로 가져다주는 산후조리원을 택하는 것이 좋다. 활달하고 사교적인 성격이라면 식당에서 식사도 함께 하고 거실에 모여 앉아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곳을 택하는 것이 좋다.

산모들끼리 교류하면서 산후우울증 예방에도 도움이 되고 산후조리원 동기들끼리 육아하면서 계속 끈끈하게 지내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둘째 이상 출산한 산모들을 위해 가족실의 개념으로 첫째 아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도 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상의 끝에 처음 보았던 곳으로 예약하기로 했다. 질문 하나 편하게 못하게 만들던 실장의 말투가 생각나서 망설여졌지만 병원과 같은 건물에 있어서 퇴원하면서 외부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소아과 의사가 매일 회진을 돌고 간호사가 아이를 직접 돌본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활달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다시는 없을 고요한 휴식기간이라는 걸 알기에 오롯이 고독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먹고, 자고, 수유하고, 먹고, 자고, 수유하겠지. 후기를 찾아보니 음식이 잘 나온다는 평이 많아서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내 손으로 그렇게 호사스러운 밥상은 절대 차려먹지 못할 걸 아니까 매끼 경건한 마음으로 싹 싹 비울 것이다.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방문했던 심효진입니다. 예약하려고요."

전화를 하고 예약금을 넣었더니 둘째 출산을 앞두고 큰 준비 하나를 끝낸 느낌이었다. 빠져나간 예약금을 보면서 연이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마도 둘째도 제왕절개를 할 테니까 수술비만 해도 꽤 될테고 산후조리원도 가고 혹시 산후도우미까지 오신다고 하면 출산하는 데만 돈이 상당히 많이 들겠구나.'

둘째 내복 한 장 안 사 입혀도 그 정도 돈이 든다는 생각에 갑자기 현실이 다가왔다. 내년부터 뿅갹이가 유치원을 다녀야 해서 알아보고 있는데 보통 한 달에 몇 십만 원 가량 낸다는 이야길 들었다. 대단한 영어 유치원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무난한 동네 유치원도 그 정도는 매달 추가금이 있는 모양이었다. 월급은 오르지 않고 일자리는 점점 줄어가는 마당에 다들 어떻게 애를 낳고 살아갈 수 있는 건지 놀랍게 느껴졌다. 애가 둘이면 모든 비용이 두 배로 들겠다는 생각에 내가 앞으로 감당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쓸데없이 사들였던 물건들이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앞으로 그런 정신 나간 소비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지점까지 생각이 발전하자 자연스럽게 산후조리원 예약 미션을 끝낸 나의 다음 준비는 집 정리가 되었다. 매일 밤 뿅갹이를 재우고 임부복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직구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임부복을 사기 전에 옷장에 안 입는 옷부터 비워내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보 엄마들이 처음엔 광고에 휘둘려 이것저것 사다가 나중에 애가 불안정한 몸짓으로 집을 휘젖기 시작하면 그냥 집 안의 모든 게 다 사라지고 놀이매트 깔린 바닥과 벽만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무언가를 더 사들이는 것보다는 최대한 비워 놓는 것이 식구가 한 명 더 늘었을 때를 위한 가장 좋은 준비다. 사놓고 한 번도 안 입은 옷들을 내놓으며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더나은심리계발센터 교육팀장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입력 2016-03-31 09:47:00 수정 2016-03-31 09:47:00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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