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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입력 2016-04-12 19:54:00 수정 2016-04-12 1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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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DB



봄은 언제나 그렇듯 끝날 듯 안 끝날 듯한 추위의 끝자락에 불현듯 찾아온다. 아파트 단지에 볕이 잘 드는 곳 나무들은 벌써 만개한 벚꽃 잎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분명 며칠 전까지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열심히 봄을 준비했나 보다.

오랜만에 따뜻했던 지난 주말, 거리는 온통 봄나들이 나온 차들로 가득했다. 올림픽대로 너머로 보이는 한강공원에는 텐트와 사람, 차들로 빽빽했다. 모두 이토록 한마음으로 봄을 기다렸나 싶었다. 뿅갹이는 노오랗게 핀 개나리가 인상적인지 계속 개나리의 이름을 되물으며 개나리 동요를 몇 십 번씩 반복해서 들었다.

우리도 친구네 개와 함께 산책하려고 올림픽 공원에서 만났다. 콘서트를 보러온 10대 청소년들, 가족들과 연인들로 올림픽 공원은 이전보다 활기를 띤 모습이었다. 평소에도 개를 좋아하는 남편과 뿅갹이는 반려견 '찌부'와 함께 낙엽 위를 뒹굴며 봄을 만끽했다.

나는 그 사이 첫째 아이를 임신 중인 친구와 함께 돗자리에 앉아 입덧에 관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눴다. 앞으로 닥칠 어마 무시한 육아에 대해 말을 해줘야 하나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내가 키워보니 육아란 직접 내 앞에 애가 나타나기 전에는 이해가 가지 않을만한 상황의 연속이라 일단은 말을 아끼기로 했다. 친구의 관심은 출산과정에 더 맞춰져 있었고 나는 나의 경험을 친구와 나눴다.

이렇게 하나둘씩 엄마가 되어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새삼스러울 때가 많다. 많은 주변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나면 한층 깊어진 눈빛으로 나를 찾곤 한다. 때로는 연락이 끊겼던 옛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오기도 한다. 육아가 힘들어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다가 우연히 내 칼럼을 발견한 친구들이다. 내가 육아 선배로서 친구들을 위로해주고 있는 모습이라니, 사람의 인연이란 이토록 신기하다.

며칠 전 오랜만에 시원한 봄비가 내리고 간만에 미세먼지가 없는 화창한 날이 찾아왔다. 문을 박차고 나가 청명한 하늘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계획대로 옷장 정리를 하기로 했다. 베란다 너머로 올려다본 하늘이 거짓말처럼 파랬다. 온 집안의 창문을 활짝 열고 옷장 안의 묵은 겨울옷들을 전부 꺼냈다. 발 디딜 곳 없이 널브러진 옷들 사이에 앉아 하나씩 선별하기 시작했다.

하얀 옷은 매번 그때그때 빨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얼룩이 져있다. 두 아이가 입고 난 뒤 물려받은 옷들은 뿅갹이까지 입고 나니 목이 한껏 늘어나 후줄근해졌다. 그런 옷들을 추슬러서 내어 놓으려고 그 동안 모아놓았다. 이번 겨울도 입을까 싶어서 옷장에 넣어뒀지만 한 번도 뿅갹이에게 입히지 않은 옷들도 있었다. 바지를 펼치고 이렇게 짧을 수가 있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이 바지도 처음엔 길어서 몇 번 씩 접어 입히곤 했었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에도 뿅갹이에게 입힌 봄 바지가 껑충 짧아져 발목이 나오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이들은 눈 깜짝할 새에 큰다더니 놀이터에 가도 제법 형님 소리를 듣곤 한다.

아직 입을 만한 옷은 둘째도 입히려고 추려서 생활용품 상자에 넣어 놓았다. 둘째가 이 옷들이 맞을 때쯤이면 다시 새삼스러운 감정이 들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옷들과 씨름을 하고 나니 옷장에 빈 곳이 많이 생겼다. 겨우내 입었던 패딩들만 드라이를 맡기면 뿅갹이의 옷 정리는 어느 정도 끝이 날 것 같다.

어느새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 할 시간이 되자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뿅갹이는 오늘 식목일을 맞아 어린이집에서 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었다고 했다. 아이도 나름대로 봄맞이를 한 모양이다. 내가 미처 챙기지 못했던 활동들을 어린이집에서 해서 다행이란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우리 집엔 식물을 들이면 죄다 죽어 나가는지라 생각만 하면서도 한 번도 실천해보지 못했다. 베란다 텃밭을 가꾸고 아이와 함께 방울토마토와 깻잎, 각종 허브를 키우면서 생명의 변화를 관찰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상상만 하고 있다.

'엄마가 도시 여자라 미안해'

사과 아닌 사과가 마음에서 우러나왔다. 서울에서 태어나 아파트 생활만 해온 엄마는 자연에 관해 묻는 아이의 질문에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할 때가 많다. 단지 조경으로 많이 심어져 있는 동그란 초록 풀조차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아니 사실 그것이 나무인지 풀인지 분류조차 하지 못하겠다. 그동안 수없이 봐왔으면서 왜 이름 한 번 궁금해 하지 않았는지 오히려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다. 막상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에게 인공적인 놀이시설보다는 자연을 많이 접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런데 옷 살 때는 뷔스티에와 탱크탑까지 세세하게 분류할 줄 알면서 이게 풀인지 나무인지도 선뜻 대답을 못해주는 엄마라고 생각하니 자식 앞에 부끄러울 지경이다.

아이의 옷장 정리는 마쳤지만 아직 내 옷장 정리가 남아있다. 출산 전의 나와 몸매가 비슷한 후배 두 명에게 옷과 구두를 잔뜩 들려 보냈다. 첫째를 낳고서도 높은 힐과 신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빡빡한 원피스. 스키니진을 처분했는데 아직도 옷장을 열어보니 꽤 남아있었다. 그때는 시간이 좀 지나고 살이 빠지면 입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둘째까지 가지고 보니 이젠 정말 옷장에 모셔 두기만 할 뿐 입을 일이 절대 없을 것 같아서 과감히 다 꺼냈다. 그중에는 사놓고 상표도 떼지 않은 옷들도 꽤 있었다. 나는 그동안 누구를 위한 쇼핑을 한 것인지 황당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허리가 쫄려서 숨도 못 쉬는 치마를 정녕 입을 생각이었어? 지퍼가 다 올라가지도 않는 옷은 대체 왜 산 거야?'

옷 정리를 하며 스스로 연신 물었다. 앞으로는 당장 입을 수 있는 현실성 있는 옷만 사야겠다고도 다짐했다. 이런 새 옷들을 받아가도 되냐고 되묻는 후배들을 배웅하고 돌아서니 옷장이 꽤 여유가 생긴 것 같아 흐뭇했다. 보풀이 잔뜩 일고 늘어난 낡은 옷들은 가방에 따로 모아 담았다. 집정리를 할 때 마다 내가 이렇게 쓸 데 없는 물건을 많이 안고 살았나 싶다. 최대한 물건을 사들이지 않는 게 답이라는 걸 매번 깨닫지만 그럼에도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주부생활 5년차, 이제는 지혜가 조금 자라날 때도 된 것 같은데, 꼭 필요한 것만 조금씩 사서 쓰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리를 하면서 보니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어서 옷장 정리를 끝내고 미세먼지의 습격을 피해서 아이와 꽃구경을 많이 다녀야겠다. 봄은 정말 짧으니까.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더나은심리계발센터 교육팀장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입력 2016-04-12 19:54:00 수정 2016-04-12 19:54:00

#산업 , #생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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