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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텃밭가꾸기의 즐거움

입력 2016-06-08 09:43:00 수정 2016-06-08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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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전형적인 도시의 아이로 자랐다. 흙과 나무보다는 게임기와 놀이동산이 더 익숙한 환경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어렸을 적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차며 한참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학원에서 학원으로 오가는 우리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그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내가 뿅갹이의 부모가 되자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가 안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미세먼지까지 더해져 우리 때보다도 더 환경이 열악하다.
공원이라도 자주 데려나가고 수족관이나 동물원도 가면서 최대한 아이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만 어쩐지 결국은 인공적인 환경에만 노출되는 것이 아쉽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길을 가다가 보이는 들꽃과 작은 공충에도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엄마, 이 꽃은 이름이 뭐야?”

아이의 느닷없는 질문에 미쳐 똑 부러진 대답을 못 해준 적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의 지식적인 한계를 체감하곤 한다. 자동차에만 관심이 많던 시기가 지나 공룡과 풀, 곤충에게까지 관심이 확장된 뿅갹이의 질문은 광범위하며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그냥 ‘벌레’라고만 생각했던 것에도 아이는 곤충의 이름이 무엇인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어디 사는지, 이 곤충의 엄마는 지금 어디있는지까지 궁금해한다.

그런 아이와 함께 생명의 기쁨을 느껴볼 방법으로 생각한 것이 ‘베란다 텃밭’이다.

아파트 베란다 한 켠에 텃밭을 마련해서 비록 화분 속이지만 깻잎이나 방울토마토를 키워보며 씨앗이 자라나 열매를 맺는 경이로운 과정을 지켜보는 부모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나 역시 시도해볼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으나 선인장도 죽이는 나에게 베란다 텃밭이란건 어마어마한 도전이었다. 머릿속으로 몇 번 상상해보았으나 실천으로는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혹시 방울토마토가 채 열매도 맺지 못하고 시들어 버렸을 경우 아이가 느낄 상실감에 대해서도 조금은 우려가 되었다.

고민만 하는 엄마와 달리 뿅갹이는 어린이집에서 방울토마토 모종도 심어보고 텃밭 견학도 가면서 먼저 실천에 나섰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갈 때마다 부쩍 자라난 아이의 방울토마토를 함께 관찰하곤 했다. 새빨간 방울토마토가 우리 입에 들어오기까지 줄기가 자라나고 꽃이 피고 초록색 열매가 맺히고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빠알갛게 여무는 과정을 함께 지켜볼 생각에 신이 났다. 그 엄마가 미처 시도하지 못한 부분을 어린이집에서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새삼 다행스러웠다.

“너희 가족 텃밭 한 번 가꿔보지 않을래?”

그러던 어느 날, 친정엄마가 텃밭을 가꿔보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아는 분의 밭에 한 부분을 우리 가족이 일궈볼 수 있도록 부탁해서 자리를 마련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모종을 잔뜩 사 들고 밭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이미 우리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돌을 골라내고 밭을 일구어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비닐을 덮고 구멍을 뚫으며 조심스레 모종을 옮겨 심었다. 뿅갹이는 어린이집에서 해보았다며 제법 아는 체를 했다. 부끄럽지만 서른 넘은 나는 모종을 처음 심어보았다. 뿅갹이는 자기 몸집만 한 물뿌리개를 들고 모종을 심은 자리마다 물을 주며 잘 자라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흙이 여기저기 묻어 얼굴까지 갈색으로 물든 채 열중하는 뿅갹이를 보고 있자니 이제야 제대로 된 경험을 시켜주는 것 같아 뿌듯했다.

방울토마토와 단호박, 피망, 고추를 차례로 심어주고 막대를 꽂아 고추 모종이 쓰러지지 않고 잘 자라도록 단단하게 고정시켜주었다. 남편도 어릴적 농사를 지으시던 외갓집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며 아이마냥 신났다. 고작 밭이랑 한 줄 심어 놓고는 “우리 귀농할까?” 하며 설레발을 치는 모습이었다.

앞으로 주말에 친정을 들릴 때면 종종 텃밭에 들려서 물도 주고 상추도 따가라고 하시는 배려에 감사의 인사가 절로 나왔다. 여름이 오면 감자밭에서 몽글몽글하게 맺혀 있을 감자들을 캐보기로 했다. 고사리손으로 땅속에서 보물을 찾듯 헤집으며 즐거워할 뿅갹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웃음이 난다. 갓 캐낸 감자를 포슬포슬하게 쪄서 호호 불어 한 입 베어 물어야지.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더나은심리계발센터 교육팀장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입력 2016-06-08 09:43:00 수정 2016-06-08 09:43:00

#키즈맘 ,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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