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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네 살 아이 키우는 재미

입력 2016-08-12 13:58:29 수정 2016-08-12 13: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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뿅갹이는 만 40개월, 미운 네 살이다. 조잘조잘 온종일 쉴 새 없이 말을 해대는 뿅갹이는 잠잘 때 빼고는 입을 쉬는 법이 없다. 고집을 부리기가 일상이고 말대답은 덤이다. 하도 말을 안 들어 “뿅갹이 너어~!”하고 눈썹에 힘이라도 줄라치면 “엄마는 나한테 왜 그래애! 맨날 화만 내고! 엄마가 그러면 안돼지이~ 자꾸 그러면 엄마한테 화낸다아. 그러면 엄마는 후회할걸!”이러면서 먼저 선수를 치곤 한다.

저녁밥을 차려놓으면 돌연 ‘면’이 먹고 싶다고 국수를 내놓으라고 하고 뮤지컬이 보고 싶다고 해서 예매해놓았는데 갑자기 집에서 놀겠다며 가기 싫다고 버티고 하루에도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 수십개씩 바뀌는 미칠듯한 일상 속에도 네 살이 주는 매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세 돌부터 시작한 배변훈련의 성과로 이제 기저귀를 하지 않지만, 종종 오줌을 참을 대로 참아서 나오기 직전에야 쉬가 마렵다고 다급하게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뿅갹이를 변기에 미처 앉히기도 전에 변기 밖에 줄줄 오줌을 다 누어버렸다.

“으이그~ 그러니까 엄마가 좀 미리 말하랬잖아. 옷도 다 다시 갈아입어야겠네.”
아랫도리를 물로 씻겨서 아이를 먼저 화장실 밖으로 내보냈다. 그 때 거실에 있던 남편의 까르르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뿅갹이가 방금 뭐라고 했는지 들었어?”
“아니, 뭐라고 했는데.”
“엄마가 생각보다 별로 안혼내네? 라고 말하면서 걸어가더라. 하하하”
저 나이에도 ‘이크, 이제 엄마가 잔뜩 혼내겠구나.’하고 잔뜩 긴장했다가 의외의 모습에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게 새삼 놀라웠다.

어느 날은 또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우며 징징거리는 뿅갹이를 혼내려고 하는 찰나였다. 뿅갹이가 선제 방어에 나섰다.
“엄마! 엄마는 예쁘게 생겨가지고 이렇게 예쁜 옷까지 입고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
순간적으로 입꼬리가 씰룩꺼리는 것을 억지로 참고 다시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꾸했다.
“그게 지금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그동안 뿅갹이가 예쁘다는 칭찬을 할 때면 늘 함박웃음으로 반응했던 것이 아이에게는 엄마의 화도 단번에 풀 수 있는 만능단어쯤으로 받아 들여졌나 보다. 한편으로는 혹시 어린이집에서 ‘엄마의 화를 한 번에 푸는 비법’이란 특강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하루는 남편이 체해서 저녁 내내 밥도 먹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뿅갹이는 연신 아빠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평소라면 온몸으로 스킨십을 해대고 ‘싸움 놀이’를 하자며 아빠에게 달려드는 뿅갹이었지만 이날 만큼은 아빠가 몸이 안좋으니 너무 기대지 말라는 말에 아빠의 이마만을 짚어줄 뿐이었다.

가만히 아빠의 이마를 짚어보던 뿅갹이는 진지한 얼굴로 “음, 미열이 조금 있네”라며 아빠의 상태를 진단했다. 다음 날 아침까지도 컨디션이 안 좋은 아빠를 보며 뿅갹이는 안되겠다는 듯이 자신의 왕진 가방을 챙겨 나와 아빠를 진찰해주기 시작했다. 혈압을 재고 청진기를 들이대며 아빠를 치료해주겠다고 장난감 주사기를 들고 구멍마다 찔러대는 통에 아빠는 죽을 노릇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를 치료해주겠다고 열심인 아들의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한다.

며칠 전, 모교를 방문했을 적이다. 수많은 후배 속에 뿅갹이는 ‘이모들’이라며 그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이모, 안녕하세요!”
“뿅갹이는 몇 살이야?”
“네 살이요.”
이제 갓 대학생이 된 20대 초반의 ‘이모들’은 이모라는 호칭에 조금은 어색해하면서도 뿅갹이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보였다. 그중에 한 ‘이모’가 뿅갹이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뿅갹아, 사탕 줄까? 사탕 먹을래?”
그렇게 다가온 이모에게 뿅갹이는 한송이의 꽃이 되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네, 누나.”

뿅갹이의 어린이집 선생님은 뿅갹이와 대화하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기분이 종종 든다고 하셨다.
가족여행을 앞둔 뿅갹이에게 선생님은 물었다.
“뿅갹아, 여행 가서 좋겠다.”
“네, 선생님”
“선생님도 데려가~”
뿅갹이는 고개를 살짝 빼며 대답했다고 한다.
“아직 바닷물이 차.”
그 여행에서 뿅갹이는 파도에 백사장 모래가 휩쓸려가는 모습을 보고 “바다는 모래를 먹고 사나 봐”라는 시적 표현을 남겼다.

어떤 날은 주말에 헬로카봇 뮤지컬을 보고 온 뿅갹이는 선생님께 자랑했다고 한다.
“우와, 뿅갹이 헬로카봇 뮤지컬 보고 왔어요? 정말 재미있었겠네?”
“네, 그런데 선생님은 로봇 안 좋아해요?”
“선생님도 로봇 좋아하지. 그런데 몇 개 없어, 선생님은.”
“왜요? 엄마아빠가 안사줘요?”
“아아니, 선생님은 어른이라 선생님이 직접 사야하는 거에요.”
“그럼 돈이 없어서 못 사요?”
뿅갹이의 대답에 선생님은 크게 웃었고 뿅갹이는 자기가 로봇을 하나 사드리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고 한다. 뿅갹이가 예정에 없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를 때면 오늘은 장난감을 살 계획이 없어서 장난감 살 돈을 안 들고 나와서 못산다고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했다가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뿅갹이의 말대답은 점점 구체적이고 거세지며 무섭도록 논리를 갖춰가고 있다. 아이는 시간이 갈수록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자기주장이 강해져 간다. 아이의 자존감이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는 있지만 나 역시 사람인지라 때로는 아이에게 다그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내 겁을 먹고 울상이 되는 아이를 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반성하고는 한다.

미운 네 살, 제멋대로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들을 상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아이와 기싸움을 해야하고 왜 엄마의 뒷통수를 손으로 세게 내리치면 안되는지까지 일일히 설명을 해주고 훈육을 해야하는 피곤한 일상이다. 하지만 그만큼 아이들은 주체적인 생각을 많이 하기 시작한 것이고 어른들이 생각하지 못한 깜찍한 행동을 하곤 한다. 이 맛이 네 살 키우는 재미인가 보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현)더나은심리계발센터 교육팀장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입력 2016-08-12 13:58:29 수정 2016-08-12 13:58:29

#3-5살 ,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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