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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의 육아사생활] 갑자기 찾아온 둘째 출산, 그 생생한 후기 (1)

입력 2016-10-26 16:05:01 수정 2016-10-26 1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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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출산을 한 주 앞둔 금요일, 마지막 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그동안 모든 검사를 무리 없이 통과했기에 약간은 귀찮은 마음으로 마지막 소변 검사를 했다. 검사지를 본 간호사의 표정이 살짝 머뭇거렸다.

“단백뇨가 보이시네요.”

그동안 붓기가 심해 몇 번인가 임신성 당뇨는 아닐까 의심을 해보았지만 매번 나의 의심에 그칠 뿐 검사결과는 정상이었다.

하지만 출산을 일주일가량 앞둔 마지막 검사에서 나의 혈압은 최고 150 정도로 꽤 높고 단백뇨도 보인다고 했다. 의사는 임신 중독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내일 다시 한 번 더 소변검사를 해볼 것을 권유했다. 증상이 호전되어 있지 않으면 내일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혹시라도 눈이 침침하거나 두통이 심하거나 복통이 심하면 언제라도 병원에 와서 응급수술을 해야 한다는 유의사항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 아직 며칠 더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출산 준비도 최후까지 미뤄놓은 것이 많고 출산 가방조차 준비해놓지 않았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게다가 당장 내일은 주말이어서 어린이집도 쉬는 데다가 남편이 일이 있어 뿅갹이를 혼자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한다. 최악의 경우 뿅갹이를 데리고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양가 부모님께 내일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음을 알렸다. 괜히 눈앞도 잘 안 보이는 것 같고 속도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어 호흡도 크게 내쉬어보고 눈을 껌벅거려 보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전날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수술 전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샤워를 마쳤다. 혹시 모르니 금식을 하고 오라는 의사의 말에 뿅갹이만 서둘러서 아침밥을 먹였다. 아이들은 원래 산만하게 밥을 먹기 마련이건만 초조한 마음에 자꾸만 아이를 채근하게 되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역시 임산부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만원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주말이라 부쩍 사람이 많은 병원에서 큰 아이와 나는 두 손을 꼭 잡았다. 소변검사와 혈압을 잰 뒤, 의사는 오늘 수술해야겠다는 말을 남겼다.

아이와 함께 위층 분만대기실로 이동했다. 남편과 나는 이곳을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고 부른다. 뿅갹이를 낳기 위해 30시간 동안 갇혀 있었던 창문도 없는 이곳에서의 시간은 낮도 밤도 어제도 오늘도 무의미한 곳이었다. 3년여의 세월이 흘러 다시 그곳에 발을 들였다. 여전히 멋없고 음침하며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다. 이런 공간에 아이와 둘만 있다니 없던 용기까지 단전에서 끌어올려야 할 판이었다. 병원에서 주는 가운으로 갈아입자 아이가 눈이 똥그래졌다.

“엄마, 왜 옷 갈아입어? 근데 그 꽃무늬 옷 예뻐. 엄마한테 잘 어울려.”

순간 아이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왜 이제껏 내가 보호자라고 생각했을까. 아이는 어느새 나의 동반자이자 보호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성장해있었다. 이런 펑퍼짐하고 빛바랜 병원 가운을 입은 모습조차 진심으로 예쁘다고 말해줄 수 있는 아이가 내 옆에 있는데 무엇이 겁이 나 떨었던 걸까. 간호사는 웃으며 “엄마 잠깐 수술 준비하고 올 거니까 보호자분은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잘할 수 있죠?” 라는 말을 남기고 나를 수술방으로 데려갔다. 임산부의 3대 굴욕 중의 2개라는 제모와 관장을 당하고 돌아오자 아이는 씨익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엄마, 나 혼자 잘 있었어.”

물론 관장 후에 화장실에 있는 동안 나의 보호자는 문밖에서 “엄마, 어디 있어?”, “엄마, 얼른 나와.”라는 말을 스물세 번 정도 한 것 같다. 시간이 지나 남편과 친정엄마가 도착하고 나니 새삼 코앞에 닥친 수술에 대한 공포가 다시 밀려왔다. 손목을 찌르고 척추에 바늘을 꽂고 배를 가르고 다시 꿰매고 괴로운 회복의 과정까지 그 모든 절차를 알면서 다시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심효진 산모님, 수술하러 가실 시간입니다.”

휠체어를 가지고 온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이제는 정말 피할 수 없는 정면대결의 시간이다. 수술실에 눕자마자 등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척추에 무통 주사를 맞았다. 다리가 약간 저린듯이 묵직해져 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양팔이 묶였고 한쪽 팔에는 수액 바늘이 꼽히고 반대쪽 팔에는 혈압계가 달렸다. 벌써 얼굴이 긁고 싶었다. 마취과 의사는 수술 부위를 꼬집어가며 아픈지 물었다. 자꾸만 세게 꼬집으며 어떠냐는 그의 말에 “화가 난다.”라고 대답하자 수술방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이래 보여도 내가 아주 떨고 있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겠지.

“자, 이제 마취 들어갑니다. 몽롱해질 거에요.”

주사약이 들어가고 눈앞이 몽글몽글해지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
입력 2016-10-26 16:05:01 수정 2016-10-26 16:05:01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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