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들이 모인 예비부모 수업에 종종 강의를 갑니다. 그곳에 모인 부부들은 아이에 대한 바람이 가득한 것이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모두 그런 것 같지는 않다는 거죠. 그 자리에 있는 일부 남편들은 아내의 부탁에 그냥 끌려온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남편들은 졸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아직 출산, 육아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와 닿지 않는 거죠. 어쩌면 대부분의 남자가 그렇습니다. 남자들은 아이가 눈에 보여야 아빠가 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여자들이 왜 남자들보다 육아를 더 잘할까요? 저는 임신을 하면 아내가 먼저 육아레이스를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신이 되는 순간부터 태아를 위해 몸조심을 하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곳만 가죠. 이때 남편들이 임신한 아내를 응원하기만 하고 육아레이스를 함께 시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해서 열 달이 지나고 눈앞에 아이가 태어난 순간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육아레이스가 시작됩니다. 자연스럽게 아내와 남편 사이에는 열 달이라는 거리 차가 생겨나고 쉽게 좁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육아레이스에서 낙오되는 경우도 발생하죠.
육아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육아레이스를 아내와 함께 시작하세요. 우선, 병원은 어떻게든 함께 가세요. 병원에 함께 가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효과가 있습니다. 일단 의사를 통해 태아의 상태를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둘이서 태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죠. 아내의 기분도 좋아집니다. 병원에 어쩔 수 없이 혼자 온 산모와 부부가 함께 온 산모는 표정부터 다릅니다.
두 번째는 임신한 아내를 혼자 두지 마세요. 일 때문에 떨어져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다면 빨리 아내 곁으로 돌아가세요. 임신한 순간부터 아내는 상당한 자유를 속박 당하는데, 남편만 충분히 자유를 누린다면 아내가 많이 억울하겠죠. 그러니 우울증도 오는 겁니다.
아내가 임신해서 좋아하는 술을 못 마셨을 때는 저도 함께 열 달 동안 술을 끊었습니다. 회식도 거의 하지 않았고요. 물론 동료들에게 핀잔은 들었지만, ‘아내가 현재 임신 중이며 혼자 집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회식자리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술친구와 진짜 친구를 구별해 내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지요.
마지막으로 육아레이스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주세요. 페이스메이커는 마라톤에서 다른 러너보다 앞에서 뛰면서 페이스를 조절해주는 러너를 말합니다. 임신을 하게 되면 감정도 롤러코스터가 되고 살찐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우울해집니다. “임신하면 살찌는 게 당연하지”라며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기분을 컨트롤해 주세요. “너무 귀엽다! 사랑스러워! 대단하다 임신하면 몸이 진짜 힘들 텐데, 잘 견디네. 나라면 못 할 것 같아. 멋지다” 등 좋은 이야기들을 옆에서 해주는 거죠. 진심이면 좋겠지만, 설령 진심이 아니라 해도 진심처럼 느껴지도록 메소드 연기를 보여 주세요. 말만으로 기분이 컨트롤되지 않으면 공연이라든가 나들이라든가 문화생활을 하면서 아내가 신이 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서프라이즈 선물도 좋은 방법이 되겠네요. 아무튼 아내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이 최고의 태교니까요.
임신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육아레이스를 할 준비를 먼저 하셔야 합니다. 같이 레이스를 할 것이 아니라면, 아이를 낳자고 하지 마세요. 육아는 여자의 몫이 아니라 부모의 몫입니다.
이정수
방송인
2010년까지 다수의 연애
2011년 나쁜 남자 졸업
2013년 행복한 결혼
(現) 행복한 결혼에 대해 이야기 중
위 기사는 <매거진 키즈맘> 5-6월호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