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육아를 적극적으로 함께 했던 남편이 여름부터 바빠지게 됐다. 우리에겐 함께 할 수 있는 열흘가량의 시간이 있었다. 주어진 소중한 기회를 가장 알차게 쓸 방법은 바로 여행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 게. 조만간 펼쳐질 독박육아에 대한 걱정은 일단 뒤로 미룬 채 여행을 떠날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어디로 떠날까? 이탈리아 남부 쪽으로 갈까? 아니면 하와이? LA에 가서 디즈니랜드를 갈까?”
미리 떠난 마음은 아시아를 찍고 유럽을 건너고 있었다. 하지만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이제 겨우 8개월을 갓 채운 막내 샤인이었다. 멀리 떠나자니 긴 비행시간이 마음에 걸리고 아이를 종일 메고 관광을 하는 것은 아이에게도 내게도 힘든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큰 아이와 함께라면 마추픽추도 다녀올 수 있을 것만 같은데 현실은 역시 동남아시아의 휴양지로 떠나는 것이 모두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 우리 가족은 푸켓의 한 리조트로 향했다. 넷이 된 뒤 함께 떠나는 첫 여행이었다. 새벽에 도착해 얼마 못 잤지만 신난 뿅갹이는 7시부터 깨어 어서 나가자고 성화였다.
“엄마! 저기 봐! 사람들이 벌써 산책을 하고 있어! 우리도 아침 먹으러 가야지!”
창문 밖을 내다보며 엉덩이를 들썩이는 첫째 아이 덕분에 아직 자는 남편과 둘째를 놓고 일단 둘이 밖을 나섰다.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이 멀다며 업어달라는 뿅갹이를 등에 업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다 보도블록의 움푹 팬 곳에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몸이 기우뚱하며 기울었고 아이와 나는 바닥에 뒹굴었다.
“아야야야야!”
내 무릎을 바닥에 먼저 딛는 바람에 무릎이 까졌지만 아이가 혹시 다쳤을까 싶어 아이를 먼저 살피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양 팔꿈치와 무릎을 훑었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이내 아이는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 나 다친 데 없어? 나 괜찮은 거야? 으앙~”
처음엔 아이가 다친 곳이 없다는 생각에 안도했지만 계속해서 자신만 걱정하는 아이가 슬그머니 얄미웠다.
“야! 엄마는 지금 다쳐서 피가 나고 있는데 너무 네 걱정만 하는 거 아니니?!”
아이는 그제야 엄마는 좀 괜찮은지 병원을 가야 하는 건 아닌지 물었다. 굉장히 형식적인 물음이었다. 그동안 딸과 아들의 공감 능력은 너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아들은 다를 거라 여긴 것이 나의 오만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우여곡절 끝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리조트 내에 있는 미니클럽을 찾았다. 이 곳에서는 생후 4개월부터 12살까지 나잇대별로 아이들을 맡길 수 있다. 단순한 보육의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신나게 놀 수 있어 부모도 아이도 모두 즐거운 곳이다.
예상외로 흔쾌히 미니클럽에 가겠다는 아이 둘을 모두 맡기고 남편과 둘이 나왔다. 느긋하게 리조트를 둘러보며 점심식사도 하고 마사지도 받으며 실로 간만의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즐겼다. 6년 전, 서로 알지 못했던 두 개의 점이 만나 가족이라는 선을 이룬 이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행복했다.
심효진 육아칼럼니스트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전)넥슨모바일 마케팅팀 근무
(전)EMSM 카피라이터
(현)M1 정진학원 교육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