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면 멋스러움을 더하는 빈티지(Vintage). ‘변하는 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 유일한 예일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통념적 사랑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불같은 사랑’, ‘변함없는 사랑’을 불문율처럼 생각하기에 여전히 첫 만남과 같은 뜨거운 사랑을 갈망하게 한다. 변해가는 사랑의 모습 따라 그 모습 그대로 멋스러움이 깃든 사랑으로 각인될 수는 없을까.
첫눈에 서로에게 끌린 남녀 역시 앞뒤 안 가리는 시기도 있고, 갈등의 시간을 겪기도 하며, 권태로운 시기도 마주한다. 사랑에도 뒤돌아 서면 보고 싶은 격정적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하기 마련.
이런 사랑의 순간과 시기를 충실하게 보낸 이에게는 사랑을 넘어 부부라는 이름안에 깊은 유대 관계를 맺는다. 손만 잡아도 좋을 시기는 지나쳤겠지만, 눈만 마주쳐도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 늘어난 것. 이 역시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이다.
따라서 부부 관계 속 찾아오는 권태기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배우자에 대한 당연함과 익숙함이 만들어낸 권태로움은 서로에게 단련되고 맞춰가며 농익어가는 사랑의 시간으로 기억될 것. 인고의 시간을 거친 부부는 건강한 관계 안에 마침내 굳건히 세워진다. 부부에게 찾아온 권태로운 시간이 결코 부부 관계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사랑의 또 다른 얼굴, 권태로움
‘난 우리 미래를 꿈꿨고 그 꿈을 멈출 수 없어요. 떠날 수도 없고, 머물 수도 없어요’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여자 주인공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의 대사다. 영화 속, 남녀 주인공 프랭크(레오나르도 기카프리오)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은 서로에게 이끌려 결혼했지만 결혼하는 순간 현실을 마주한다. 현실과 이상과 괴리는 휠러 부부를 권태로 이끌며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이상적인 결혼 생활은 과연 없는 것일까. 이 사람 아니면 안 되겠다는 120%의 확신을 가지고 결혼을 해도 결혼생활 과정 중, 서로에게 실망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게 기혼자들의 이야기다. ‘이 사람 아니면 죽을 것 같아서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난 뒤에는 이 사람 때문에 죽겠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꿈꾸던 사랑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사랑의 형태로 발전적인 진전을 이뤄가고 있는 것. 사랑에도 과정이 있기 마련이니깐 말이다.
◆에로스(eros)를 넘어선 사랑
부부가 결혼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권태를 느끼는 시기를 흔히 ‘권태기’라 부른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무아지경의 시기에서 벗어난 것. 상대방만 보면 가슴 떨려 요동치던 심장이 제 맥박을 되찾았으니 축하할 일이지만 부부 사이의 드리운 권태는 일상 속,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은 생활 속에 점차 묻혀 잊혀지곤 한다.
조금씩 침식되어 가는 부부 관계는 어느 날 문득, 무미건조한 삶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고 ‘공허’한 삶으로 여겨지기도 할 터. 서로에게 점차 익숙해지면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부부에게 수면위로 올라온 권태로움의 문제는 부부의 삶을 흔들고 위협한다. 그러나 이 시기를 잘 견뎌낸 부부에게는 호르몬의 유효기간에 크게 좌우되는 에로스(eros) 사랑을 넘어서 서로에게 가장 좋은 지지자가 된다.
◆대화의 시작, 관계의 회복
그렇다면 권태로움을 다른 부부는 어떻게 감지하고 있을까? 바로 말 수다. 사랑을 이제 막 키워나가기 시작하는 시기에는 할 말이 어찌나 많은지 끊임없이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오래된 부부일수록 할 말은 줄어들고 침묵이 흐르기도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권태로움을 이겨내는 뾰족한 묘수가 있을까.
상담센터에서 심리치료사로 근무하는 이 씨는 권태로움의 고리를 끊는 제1의 방법으로 ‘대화를 늘려가고 침묵의 시간을 줄여가는 것’을 추천했다. ‘처음부터 말 수가 다시 늘어날 수 없지만 조금씩 늘려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꺼내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는 자꾸 평가하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얘기해 결국 다툼으로 이어진다’고 전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취미 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영화, 드라마, 직장 상사에 대한 뒷담화 이야기 등의 이야기를 소재로 말을 이어갈 것’을 당부했다.
실제,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한 결혼은 생각지도 않았지만, 서로의 공통된 관심사와 비슷한 가치관을 지녔기에 큰 갈등은 예상치 못했다는 40대 주부 A씨 역시 대화를 시작으로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전했다. 대화의 시작으로 권태로운 시간을 극복하고 사랑의 다음 단계, 성숙한 사랑을 마주할 차례다.
사진 : 셔터스톡
오유정 키즈맘 기자 imou@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