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관악구 난곡동에 위치한 국내 1호 '베이비박스'
2007년 12월, 어느 새벽녘 고요한 침묵을 깨우는 전화벨이 집안 가득 울려 퍼진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서둘러 대문 밖으로 뛰어 나가보니 종이박스에서 울리는 아기 울음소리. 허름한 종이박스에 가까이 다가 가보니 갓 태어난 아이가 뉘어져 있었다. 그 날, 걸려온 전화 한 통, 대문 밖에 놓인 아이가 오늘날 국내에 베이비박스(baby box)가 처음 세워지게 되는 도화선이 된다.
“불가피하게 키울 수 없는 장애로 태어난 아기와 미혼모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아래 손잡이를 열고 놓아주세요”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는 폭 25cm, 길이 60cm의 베이비박스. 건물 외벽에 설치된 베이비박스는 아이를 아무 곳에나 버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아 보호 시설물이다.
2009년,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님이 설치한 신생아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크기의 박스에는 현재까지 약 1237명의 아이가 들어왔다. 아무 곳에나 유기돼 죽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역설적으로 유기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존엄한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힘써 지켜온 베이비박스.
지난 10월 11일, 임산부의 날을 맞아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님을 만났다. 햇수로 9년, 베이비박스를 지켜내기까지 쉽지 않았던 지난날, 켜켜이 쌓아둔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영유아들이 쓰레기장이나 화장실에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했지만 처음 아이가 진짜 놓여 있었을 때, 그 문을 열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아이를 맞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왜 두렵지 않았겠는가. 베이비박스가 설치되고 이듬해 3월, 베이비박스에 첫 아이가 들어왔다. 벨이 울리고 아이를 데리러 바깥에 나왔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더라. 순간,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다리에 힘까지 풀렸다. 마음을 가다듬고 베이비박스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탯줄도 채, 자르지 못하고 핏덩어리 상태로 들어온 아이였다. 그 아이를 안는데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베이비박스가 없었더라면 이 아이가 아무 데나 버렸을 것을 생각하니깐 말이다. 다른 곳에 버려지지 않고 이 곳에 놓여진 것이.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아내와 함께 아이를 놓고 기도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2009년 이후로 현재까지 1237명의 아이가 들어왔다. 아이를 두고 가는 미혼모들을 볼 때는 어떤 심정인가?
이곳에 오는 이들은 대부분 자가분만이다. 공중화장실에서, 친구 자취방, 이사하고 없는 빈집에서 몰래 출산한 후, 아이를 안고 급히 달려온다. 영아는 탯줄을 달고 핏덩어리인 경우가 대부분, 엄마들은 출산 하자마자 정신없이 급히 달려온 터라 하혈해 피가 흥건하더라.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처참한 광경과 혼자 몰래 그 힘든 출산을 혼자 한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지. 안타깝고 안쓰럽고 마음이 아린다.
베이비박스가 설립된 목적과 반대로 영아 유기를 조장하는 것은 아니냐는 뭇매를 맞는다. 선한 일 하면서 욕먹는 셈이었는데 억울하지는 않았나. 예상했던 세간의 반응은 아니었을 것 같다.
내가 돕지 않으면 어떤 아이는 죽을 수 있다. 옳고 그름을 논쟁하는 문제보다 내 앞에 한시를 다투며 신음하는 아이를 당장 살리는 것이 내게 가장 다급한 일이고 중요한 문제였다. 주변의 반응은 살필 겨를도 없었을뿐더러 개의치 않았다.
온당치 못한 비난을 감내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아직 탯줄도 자르지 못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생사를 다투고 있는 아이 대문 앞에 놓여있었다. 그때 그 아이를 품 안에 끌어안았는데 ‘조금만 늦게 발견했으면’ 이라는 섬뜩한 생각에 온몸을 떨었다. 아이들을 마땅히 살리는 것이 내 몫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베이비박스가 시작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혹은 죽어가고 있는 영아들을 떠올리면 두렵고 떨린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다.
수차례의 어려움과 논란 속, 베이비박스는 올해, 햇수로 9년이 됐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어 왔는지.
처음에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영아를 수탁하고 보호를 했다. 그러다 영아를 버린 생모를 보는데 십대 미혼모가 대부분이더라. 그때부터 미혼모를 만나기 시작했다. 현재는 십대 아이들이 임신해서 전화 오면 낙태하지 않고 안전하게 아기를 출산할 수 있도록 익명 출산을 도와주고 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데려온 경우, 아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생모의 의사에 따라 아이를 맡아서 돌봐주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기 원할 경우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도록 양육 및 주거 부분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자립할 수 없는 상태의 생모에게는 자립할 때 까지 돌봐주는 것은 물론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이를 키우기를 포기한 경우엔 경찰청 및 입양기관과의 연계를 통한 9단계를 절차를 통해 입양을 보내고 있다.
미혼모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시스템 중 상담도 있다고 들었다.
임신한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임신 사실을 숨겨야겠다는 압박을 받으며 열 달을 보낸다. 그러다보니 미혼모 대부분은 우울증을 겪고 있더라.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의 축하와 축복을 받으며 출산을 해도 산후 우울증에 시달린다는데 임신한 순간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미혼모에게 우울증은 어찌보면 당연하지 않겠는가. 상담은 마음이 무너져 있는 이 아이들을 격려하고 마음을 다독인다. 임신한 열 달 동안 두렸원던 마음, 아무데나 말 못하고 혼자 알고 있어야 했던 이야기, 마음 속 응어리진 원망, 외로웠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내내 들어준다. 상담 할 때, 뿅망치와 배게를 갔다 놓곤 하는데, 마음 속에 얼마나 맺힌게 많던지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뿅망치를 두드리며 소리내어 우는데 이 광경을 지켜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미혼모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 것 같다.
사회가 보내는 편견어린 시선과 무시 속에 미혼모는 늘 소외된다. 아이를 낳는 것 자체를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여기는 사회의 태도가 미혼모들이 아이를 혼자서 키우는 것을 어렵게 한다. 낙태하지 않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엄마로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미혼모들을 보면 아무 데나 버리지 않음이 기특하다. 그러나 사회는 이들에게 미혼모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질타와 결시를 일삼는데 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플 뿐이다.
마지막으로 세간을 향한 바램은 무엇이 있는지
법이라는 것이 양날의 검이다. 무분별한 입양을 줄이기 위해, 아동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적 장치 ‘입양특례법’이 미혼모에게는 폭력이 된다. 미혼모의 절반가량이 십 대 아이들이다. 네가 낳았으니 알아서 책임지라 하지만 십 대 미혼모 역시 아직은 사회에서 돌봐주어야 할 청소년 아니겠는가. 미혼모들을 외면해하고 비난해야할 것이 아니라 엄마로서 준비할 수 있도록 함께 도와주어야한다. 양육의 일차적 책임을 쥐어주기 전에, 아동과 태아 그리고 미혼모까지 권익을 인정받을 수 있는 법이 개정되길 바란다.
누군가는 외면하고 남의 일이라 미루었던 책임을 기꺼이 지며, 수많은 논란 속에서 지켜온 베이비박스. 9년이 지난 지금, 세월이 변하고 제도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좁은 편견의 시선. 편견의 시선에서 벗어나 책임의 범주를 넓게 바라볼 때, 소외되는 사람 없이 사회로부터 온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오유정 키즈맘 기자 imou@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