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그림자에 허덕이던 1980년대, 불현듯 들이닥치는 마피아의 밤처럼 예고 없이 찾아온 경제적 어려움에 예외란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벅찬 하루살이 생활이다. 세금은 고사하고 집세도 밀린지 오래. 어린이집 원비 지출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결국 집을 떠난다. 그렇게 아들과 둘이 남은 크리스 가드너. 싱글대디로서 녹록지 않은 인생 2막을 마주한다.
2006년 개봉된 영화<행복을 찾아서>의 이야기로 21달러가 전 재산이었던 노숙자에서 주식 중개인 인턴을 거쳐 '가드너 앤 리치 컴퍼니'라는 투자사를 설립한 '크리스 가드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탈리아 감독 가브리엘 무치노가 메가폰을 잡고 윌 스미스와 그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가 주연을 해, 주목을 받았다.
싱글대디 크리스 가드너는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허상이 아닌 주변에서 언제든 볼 수 있는 우리 이웃, 친구 혹은 가족일지도 모르는 실존 인물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한부모 가정은 약 180만 가구에 육박하며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자녀를 키우는 ‘미혼부’가 1만여 명을 넘어서며, 더불어 자녀와 아빠가 함께 사는 부자 가족 역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은 여전히 육아계에서 성 소수자임이 자명하다. 각종 육아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는 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쉽사리 끼기 어려운 상황. 상황과 환경을 불문하고 소수자가 된다는 것은 필히 외롭고 서럽고 서글프다. 아이 키우기에 좋은 나라,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 등에서 최하위권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아빠 혼자 아이 키우기라고 쉽겠냐만 나라에 국한된 어려움의 종류로 치부하기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이 키우기에 적당한 시대와 나라는 역사 그 어디에도 없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이 키우기 적당한 시대가 도래한다면 아빠에게도 기회가 주어지는 걸까. 아빠 혼자서도 아이 키우기 좋은 그런 때.
마주한 실질적 어려움
집세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아들 크리스토퍼(제이든 스미스)와 함께 모텔에서 지내게 된다. 숫자에 강하다는 장점을 발휘하여 어렵게 증권회사에 들어가게 되면서 모텔에서 지내는 상황마저도 여의치 않게 된다. 무보수 인턴십 과정이라 주요 수입원이 단절된 상황. 하는 수 없이 주말에는 의료기 외판원으로 주중에는 인턴 업무를 수행하며 부랑자를 위한 보호소에 자리를 얻기 위해 매일 줄을 선다.
실제, 한부모 가정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를 꼽는다. 보건복지부에서 조사한 ‘2011년 기초생활보장 수급 가정’을 살펴보면 부자 가정보다 모자 가정이 3배 가까이 되지만 부자 가정 역시 2만 479가정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모자 가정의 경우, 모의 취업을 지원, 생계유지 비용 등 제도적 차원의 도움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싱글맘을 도울 수 있는 후원 단체와 더불어 다양한 네트워크가 유기적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에 부자 가정의 경우, 싱글대디를 후원하는 단체를 찾아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경제적 곤란함을 겪을 시, 싱글대디를 후원하고 돕는 도움의 손길과 네트워크가 미비한 상황. 더욱이 제도적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미혼부와 싱글대디라는 단어만큼 낯설고 생소한 부자 가정이야말로 눈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육아계 성 소수자, 싱글대디
가계의 곤란함도 곤란함이지만 싱글대디의 실질적 고충은 따로 존재한다. 자녀의 연령이 어릴수록 엄마의 친구가 곧 자녀의 친구가 되기 마련.
아이에게 또래 친구를 사귀게 하려고 잦은 모임과 각종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하는 모에 반면에 일과 양육을 혼자 도맡아 하고 있는 싱글대디에게는 올려다보지도 못할 나무 같은 것이다.
자녀가 입학하면 사정은 좀 달라질까? 전업주부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학부모 브런치 모임 역시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온라인 커뮤니티 카톡방 및 밴드 역시 쉽사리 끼기도 쉽지 않다. 필히, 청일점일 부가 자리에 끼게 되면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다반사. 사회 구조와 커뮤니티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보니, 육아계에서 싱글대디로 살아남기란 현실적인 애로사항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짙은 부성애
오갈 곳 없이 거리로 나앉는 신세가 된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는 되자, 아들과 함께 공동화장실에서 밤을 지새운다. 이내, 잠근 문 사이로 들려오는 노크 소리가 유난히 크다. 부자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을 곧이라도 빼앗을 것만 같다. 아들을 깊숙이 껴안아 보지만 절망과 두려움은 가실지 모른다. 혹여라도 슬픔을 들킬까, 소리 내지 못한 깊은 울음을,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애써 삼켜내는 장면은 대사 한마디 없이 그의 복합적인 심정을 가장 잘 드러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온 신경과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가 겪고 있는 생활의 비참함보다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겪어내고 있는 외로움이다.
한부모 가정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에는 가사와 직장생활의 병행, 사회의 왜곡된 인식과 뒤따르는 사회적 낙인에 대한 고충 등이 있겠지만 상대 배우자 없이 자녀를 오롯이 혼자서 양육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언제나 손에 꼽힌다. 싱글대디 역시, 홀로 상대 배우자 즉 어머니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을 수반한다. 아빠라는 게 본래 외로운 건지 싱글대디라 외로운 건지 이유는 불문하고 외로움과 고군분투하는 싱글대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견디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속, 크리스가 낮이나 밤이나 매일 들고 다니는 무거운 의료기계만큼 무거운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은 아닐까. 자식을 지켜내려는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우리는 ‘부성애’라 부른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무관심한 이야기. 일관된 외면과 침묵은 오늘날 1만여 명이 넘는 미혼부와 싱글대디를 철저히 소외시킨다. 자연은 진공을 허용하지 않고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처럼 자녀의 심리적 공간에 부재한 모의 자리를 부가 완연히 채울 수 있도록 사회적, 개인적 차원의 변화의 바람은 필요하다. 관심과 인식의 변화가 불 때, 싱글대디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아이 키우기 좋은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사진: 네이버 영화
오유정 키즈맘 기자 imou@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