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맘이 2017 임산부의 날을 맞이해 독자들에게 임신부 수기를 공모했다. 소중한 생명을 얻는 과정에서 울고 웃었던 진솔한 이야기들이 접수되었고 그중 수상작 5명의 작품을 본지에 소개한다.<편집자주>
① 행복한 아빠- 김종헌
② 마흔 하나 엄마, 셋째 낳다-김현정
③ 난 4명을 원한다고!-안현준
④ 나의 행복 출산기-임순애
⑤ 당신은 나의 서포터즈-최주희
당신은 나의 서포터즈-최주희
아이와 함께하는 엄마 vs 아이를 상상하는 아빠
"여보 지금지금! 꼬물 꼬물! 느껴졌어?”
"…아 나 진짜 잘 모르겠어…. 그냥 자기 배에서 꾸르륵 거리는 거 아냐?"
결국 남편은 슬그머니 내 배에서 손을 떼 리모컨을 집는다.
임신 20주, 태동은 예비엄마가 온몸으로 아이를 느끼는 짜릿한 순간이다. 하지만 예비아빠에게는 아직은 어색하고 솔직히 잘 모르겠는 아주 찰나의 순간인 것 같다.
결혼만 하면 임신과 출산, 육아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여겼던 무지한 엄마에게 반성하라는 의미였을까. 지난해 1월, 임신 9주차 초음파 화면에서 데구르르 굴러다니는 수정란을 보았고, 멈춰버린 심장소리에 나와 남편의 심장도 멈춰버리는 줄 알았다.
그리고 찾아온 우울증. 남편이 출근만 하면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매일 울다 지쳐 잠들기를 반복했다. 그 마음을 보듬어 주듯 남편은 매일 내가 잠들었다 깰 때까지 손을 꼭 잡고 있어줬다. 그런 따뜻한 손이었는데 태동을 느끼는 손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사실 이런 낯섦은 처음이 아니었다.
혹독한 입덧으로 친정에서 59박 60일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 신혼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친정에서 가져온 갖가지 반찬을 냉장고에 넣으려는 순간, 우리 집 냉장고는 김치냉장고가 돼 있었다. 양파와 마늘냄새만 맡아도 울면서 토하는 나인걸 알면서도 냉장고를 방치한 남편에게 서운했다. 뚜껑을 잘못 닫은 김치통 때문에 냉장고 바닥에는 빨간 김칫국물이 말라있었고 냉장고 근처만 가도 김치냄새가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끝내 나는 반나절 냉장고 청소를 하자마자 다음날 병원 진료를 받고 다시 친정 신세를 져야 했다.
남편은 냉장고 속 모든 음식을 먹어치우겠노라 다짐하고 나를 데리러 왔지만 매번 화장실 청소, 부엌 정리, 이불 빨래 등 끝없는 집안일 후 다시 친정에서 쉬기를 반복하고서야 입덧이 끝났다.
사실 아기를 20주 동안 품으며 주변 사람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순산하세요~"
"아휴, 딱 좋은 시기에 태어나네"
등 다양한 좋은 이야기를 듣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최측근인 신랑은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건지 불평이 쌓여가기 시작할 즈음, 서운하고 낯선 순간 뒤에 가려진 배려의 시간이 슬며시 보이기 시작했다.
40년 동안 물휴지로만 청소하던 남자가, 꼼꼼히 스팀청소기로 걸레질을 하는 아저씨로 변했다. 같은 건물에 사는 부모님은 챙겨본 적 없는 남자가, 장모님 반찬이 감사하다며 슬쩍 용돈을 전하는 사위가 됐다. 쌀 씻는 법도 모르던 남자가, 쿠쿠 전기밥솥과 대화를 하면서 잡곡밥을 하는 주부가 됐다.
물론 남편에게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고, 내게도 더 많은 서운함을 이겨낼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아기를 통해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고, 고민하는 모든 하루하루에 당신만이 나의 유일한 서포터즈이며 가장 따듯한 손이라는 걸 꼭 전하고 싶다.
"여보! 지금까지 참 잘했어요. 고마워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키즈맘 생각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진다는 예비 엄마의 기분. 오전까지만 해도 분명 맑음이었는데 오후에 갑자기 우박이 떨어지는 비바람으로 변했다. 호르몬 변화로 나타나는 예비 엄마의 고뇌를 예비 아빠가 1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100%에 근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런 그의 노력을 알고 고마워하는 예비 엄마의 미소가 인상적이다.
김경림 키즈맘 기자 limkim@kizmom.com
입력 2018-01-04 16:11:09
수정 2018-01-29 11:3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