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에 필요한 스펙의 가짓수가 늘어나다 못해 이제는 인성도 하나의 스펙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린이의 인격마저 수치화되고 자본화될 것' 이라는 불길한 예측을 가능케 한다.
'인성(人性)'이 가공품처럼 여겨지는 시대의 기조 속, 실력만이 자랑이 되고 도덕성과 인성은 경시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아이들의 바른 인성과 도덕성은 어떻게 길러지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단번에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도덕성은 누구나 같은 순서로 발달하지도, 같은 양만큼 얻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 물론 같은 수준의 양심의 가치를 지니지도 않는다.
오로지 아이가 자라가면서 끊임없이 도덕적 행동을 판단하고 도덕적 행동을 연습하면서 성숙하게 발달시켜 나갈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도덕성은 어떻게 길러지냐에 따라 도덕적 행동의 기준뿐 아니라 전혀 다른 무게감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는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 또 다른 누군가는 대단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2016년, 대한민국은 혼란 그 자체였다. 분노와 울분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거리,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잠재울 수 없는 아우성, 드러난 부정직, 정경유착의 어두움, 고개를 떨구게 하는 무질서함,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했던 그 날들. 다음 세대에게 정직한 양심,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는 것이 어른의 의무이자 책임감이지 않을까. 정의로움과 정직함이 박수받을 수 있도록.
◆아이의 도덕성을 기르는 부모의 매너
결과가 아닌 아이의 의도와 과정을 충분히 칭찬하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육아에 있어서 칭찬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유아동의 경우 칭찬받는 행동은 아동에게 올바른 행동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칭찬은 아동의 올바른 행동을 강화해줄 뿐 아니라 도덕적 행동을 심어주고 키워주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반면, 무분별하게 남발하는 칭찬은 필요악일 수 있다. 부모가 아이의 행동을 어떻게 칭찬하느냐에 따라 아이에게 올바른 도덕관을 심어 줄 수도 있고 혹은 그릇된 도덕관을 심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칭찬은 하는 것보다 칭찬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칭찬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두 가지의 경우의 예를 통해 알아보자.
첫 번째, 아이가 시험에서 100점을 맞아왔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이때 어떻게 칭찬할까? 대개 ‘100점을 맞다니!’,‘역시! 잘했어’ 등과 같이 수준을 평가하는 표현을 아낌없이 할 터. 아이의 수준을 평가하는 칭찬 대신 100점을 맞기 위해 노력한 아이의 과정을 칭찬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어떻게 해서 100점을 맞았니? 귀찮지만 그런데도 매일 성실하게 숙제를 했더니 100점을 맞았구나. 수고했어. 노력한 너를 생각하니 기쁘구나’와 처럼 아이의 노력했던 과정을 구체적으로 칭찬해주자.
두 번째, 몇 해 전 모 광고가 기억이 난다. 회사에 간 엄마를 기다리며 아이들이 엄마를 위해 요리하는 장면이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기뻐했을 모습을 상상했을 테지만 엄마는 들어오자마자 난장판이 된 식탁을 가리키며 대뜸 ‘누가 이렇게 어지르래’하고는 윽박지른다. 나중에 아이들이 장난치며 어지른 것이 아니라 엄마를 위해서 요리했다는 사실을 알며 광고 속에서는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떨까? 아이들의 선한 의도를 알 리 없다. 그래서 늘 아이는 억울하고 엄마는 속 터진다.
앞서 제시된 상황처럼 선(先) 꾸중, 후(後) 알아차림이 되지 않도록, 상황을 불문하고 먼저 아이에게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된 건지 언제나 물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실제로 물어야 한다.
아이의 의도와 과정을 먼저 파악한 후, 칭찬할지 꾸중할지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 어른들의 성급함으로 아이들의 선한 의중을 간과한 채 모든 가치를 결과로만 평가하는 것은 주의하자.
오유정 키즈맘 기자 imou@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