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심의 조치를 학교 생활기록부에 즉각 기재하도록 한 규정이 실제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3일 교육부의 '학교폭력 사안 처리 가이드북'을 보면 개별 학교는 학폭 가해 학생에 대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조치 사항을 통보하는 교육지원청의 공문을 받는 대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해야 한다.
메뉴얼에는 가해 학생이 조치 사항에 대해 행정심판, 행정소송을 청구해도 기재된 조치 사항은 삭제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으로 향후 조치가 변경되거나 취소되면 그 때 수정할 수 있다.
예외는 1호(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2호(피해 학생 및 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3호(학교에서의 봉사)에 해당한다.
메뉴얼은 가해 학생이 1~3호 조치를 처음 받았을 때 기재를 한 차례 유보하고 재차 학폭위 조치를 받을 시 기재하도록 했다.
4호(사회봉사), 5호(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 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 8호(전학), 9호(퇴학) 등 상대적으로 중대한 학폭의 경우 한 차례만 저질러도 바로 생활기록부에 기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장에선 메뉴얼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빈번한 것으로 확인됐다.
충청권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폭 업무를 담당하는 A 교사는 "가해 학생 쪽에서 불복 절차에 들어가면 절차상 하자를 따지기 때문에 처벌 수위가 낮아져 수정 사항이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일단 불복 절차를 예고하면 실무적으로는 (학폭위 조치를) 기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A 교사는 "일단 생활기록부에 기재한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것은 학교 학업 관리위원회 개최 등 절차가 복잡하다"며 "(불복 절차에서 학폭위 조치가 변경될 경우) 생활기록부에 흔적 자체도 남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수도권 지역에서 학폭 소송을 주로 맡는 교사 출신 B 변호사 역시 "학부모의 민원 소지를 예상해 학교별로 학폭위 조치의 생활기록부 기재를 보류하는 경우가 있다"며 "매뉴얼에 불복 여부와 관련 없이 학폭위 조치를 기재하도록 했지만, 언제까지 기재해야 한다는 기한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맡은 사건 중에 중3 학생이 학폭위 처분을 받았는데 (학폭위 조치 기재 처분이 미뤄져) 자율형사립고를 준비하는 데 문제가 없던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학폭위 생기부 기재 문제가 드러난 것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곧바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논란이 계기가 됐다.
정 변호사 아들은 고교 시절 학폭위 조치 8호에 해당하는 강제 전학 처분을 받았으나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가 결국 대법원에 가서 최종 패소했다.
이를 두고 학폭 피해 학생의 법률 대리인을 주로 맡아온 박상수 변호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학폭위 결정이 나오면 가해자나 그 부모가 이 방법(집행정지와 시간 끌기 소송)을 잘 써주는 로펌에 사건을 맡긴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면 학폭 기록 하나 없는 깨끗한 학생부로 가해자는 상급 학교에 진학하고, 이것만 성공해도 변호사에게 꽤 두둑한 성공 보수가 주어진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학폭 생활기록부 기재 매뉴얼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터라 학폭위 조치에 대한 생활기록부 기재 강화나 대입 정시 반영은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A 교사는 "가해 학생 입장에선 학폭을 하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사소한 학폭위 조치라도 끝까지 가서 시간을 더 끌려고 할 것"이라며 "역작용이 더 많은 조치"라고 꼬집었다.
김주미 키즈맘 기자 mikim@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