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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자녀가 행정청의 실수로 무국적자가 될 뻔했지만, 5년간 소송 끝에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는 대법원판결을 받았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A씨 남매가 법무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적 비보유 판정 취소 소송에서 지난달 12일 원심의 원고패소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 남매는 1998년, 2000년 사실혼 관계에 있던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국적법에 따르면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자녀가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서는 부모가 법적으로 혼인 신고를 마친 상태여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부모가 따로 '인지 신고'를 하거나, 부모가 귀화할 때 함께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모두 미성년자일 때 가능하고, 성인이 되면 따로 귀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남매의 부모는 1997년 혼인 신고를 하려고 했으나 읍사무소에서 모친의 호구부 원본을 분실했고, 중국 대사관이 호구부 재발급을 거부해 혼인신고를 제 시기에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모가 중국에도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아 남매는 무국적 상태였다.
이후 2001년 남매의 부친이 출생신고를 했고 행정청은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했다. 2008년에는 가족관계등록부도 작성해줬고 남매가 17세가 된 해에는 주민등록증도 발급했다. 남매에게 한국 국적이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2013년과 2017년 남매의 부모에게 '국적법에 따른 인지(신고)에 의한 국적 취득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안내했고 부모는 이행하지 않았다. 2017년 모친이 귀화했지만, 그때도 부모는 자녀들의 국적 취득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2019년 10월 법무부는 A씨 남매가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 그리고 남매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남매는 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에서 패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2심 결과가 뒤집혔다.
대법원은 행정청이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등 '공적인 견해 표명'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남매는 이를 신뢰했다가 중대한 불이익을 입었고, 그 과정에서 남매의 과실이 없기 때문에 '신뢰 보호의 원칙'에 따라 한국 국적을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주민등록증 발급 등 행위가 없었다면 남매가 진작에 취득 절차를 밟았을 것이나, 행정청을 믿은 바람에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미성년자일 때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는 신뢰를 부여하다가 성인이 되자 그에 반하는 처분이 이루어진 결과, 갓 성인이 된 원고들은 간편하게 국적을 취득할 기회를 상실했다"며 "이들은 중대한 불이익을 입었다"고 밝혔다.
김주미 키즈맘 기자 mikim@kiz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