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회로TV(CCTV) 영상을 보여달라'는 학부모의 요구를 받고 컴퓨터 하드디스크 기록을 삭제한 어린이집 원장에게 영유아보육법을 적용해 죄를 물을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 법은 영상 정보를 안전하게 관리 못해 훼손당한 경우를 처벌하는 것이지 스스로 훼손한 자를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영유아보육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어린이집 원장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한 원생(당시 5세)의 부모로부터 '담임교사가 아이를 방치한 것 같으니 CCTV 녹화 내용을 보여 달라'는 요구를 받은 뒤 공공형 어린이집 지정 취소를 우려해 영상 녹화를 삭제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수리업자를 불러 CCTV 영상이 녹화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교체했으며 수사기관에는 "하드디스크를 버렸다"며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1심은 현행법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처벌이 불가능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A씨에게 적용한 영유아보육법 15조의5 3항은 어린이집 운영자가 설치한 CCTV의 영상 정보 분실·훼손을 막기 위한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 의무를 규정한다. 처벌 조항인 같은 법 54조 3항은 이런 안전성 확보 조치를 하지 않아 영상정보를 분실·도난·유출·변조 또는 훼손'당한' 사람을 벌하도록 한다.
1심 재판부는 "영유아보육법은 주의 의무 위반으로 결과적으로 영상 정보를 훼손당한 어린이집 운영자를 처벌한다는 취지로 해석해야지, 이 사건처럼 운영자가 스스로 영상 정보를 훼손하거나 분실한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2심은 "'영상정보를 훼손당한 자'라 함은 '영상정보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은 자'를 의미한다"며 '훼손당한 자'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유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영유아보호법 54조 3항의 '훼손당하는'이란 말에서 훼손을 '당하는' 주체는 어린이집 운영자가 아니라 '영상 정보'이므로, 하드디스크를 숨기거나 버려 의무를 위반한 운영자 처벌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법조문을 확장 해석한 것이라고 보고 판결을 파기했다.
재판부는 "'당한 자'라는 문언은 타인이 어떤 행위를 해 위해 등을 입는 것을 뜻하고 스스로 어떤 행위를 한 자를 포함하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폐쇄회로 영상 정보를 직접 훼손한 어린이집 설치·운영자가 '영상 정보를 훼손당한 자'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문언의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유아보호법과 유사한 형태인 개인정보보호법에는 '안전성 확보 조치를 하지 않아 개인정보를 훼손당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과 함께 '훼손한 자'를 처벌하는 별도 조항도 있지만, 영유아보호법은 CCTV 설치·관리 의무를 위반한 사람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게 할 뿐 '훼손한 자'를 처벌하는 명시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대법원은 두 법령을 대조해 설명한 뒤 "영유아보육법의 규정 태도는 '영상 정보를 스스로 훼손·멸실·변경·위조 또는 유출한 자'를 형사처벌을 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주미 키즈맘 기자 mikim@kizmom.com